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이 완공된 것은 교황 식스투스 4세 때인 1481년이다. 로마에 있는 대부분의 성당이 그렇듯이, 이 시스티나 성당도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그리고 교황이 죽으면 전 세계의 언론들이 주목하는 곳도 바로 이 시스티나 성당이다.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 선거회의(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이 시스티나 성당이기 때문이다.
콘클라베는 비밀투표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차례 투표가 끝날 때마다 투표용지를 모두 모아서 불에 태우고, 그 연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하얀 연기를 내보내고, 선출되지 않았을 경우는 검은 연기를 내보낸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기간이 되면 바티칸 광장에는 엄청난 수의 신도, 관광객, 기자가 모여든다.
그런데 시스티나 성당이 유명해진 더 큰 이유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 천장화 <천지창조> 때문일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완성한 것은 교황 율리우스 2세 때인 1512년이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535년, 교황 파울루스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을 주문한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완성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반면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 이때에는 미켈란젤로도 이미 늙어 있었다.
워낙 대작이기 때문에 이 <천지창조>에는 수많은 일화가 있다. 천장 바로 밑에 받침대를 세워두고 미켈란젤로가 그곳에 앉아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거의 하루 종일 받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어느 쪽이건 미켈란젤로에게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한 자세로 오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목과 등이 뻣뻣해지고, 툭하면 눈과 얼굴로 떨어지는 물감도 짜증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리기 시작하던 그해에, 라파엘로도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온화한 성격의 라파엘로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반면에 완고한 미켈란젤로하고는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부터 교황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켈란젤로는 이 일을 하면서 속으로 교황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복원공사 중에 발견된 천장화의 글씨들
어쩌면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로마 교황청에 대한 안 좋은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지 모른다.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소설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에 숨겨놓은 비밀문자를 소재로 한다. 시스티나 천장화가 소재인 만큼, 작품의 무대 또한 로마 교황청이다. <천지창조>를 최신 과학기술에 따라서 복원하기 시작하자 이 그림에서는 정체불명의 문자들이 나타난다.
<천지창조>는 워낙 방대한 그림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이 그림을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천지창조와 구약성서 이야기, 예수의 조상이 되는 인물들, 성경에 등장하는 남자예언자들, 성경 바깥의 여자예언자들.
문제의 장면은 예언자들을 그린 부분이었다. 예언자 요엘의 두루마리에서 'A'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여자예언자 에리트레아의 책에서는 'I-F-A'의 글자배열이 나타난다. 예언자 에제키엘의 두루마리에서는 'L-U'가 드러난다. 페르시아 여예언자의 책에는 'B', 예언자 예레미야의 두루마리 위에는 'A'가 그려져 있다. 이 글자배열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때부터 교황청은 벌집을 쑤신 꼴이 된다. 추기경들은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저마다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를 성토한다.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 학파의 신비주의를 추종했던 인물이고, 카발라 학파와도 교류가 있었던 이단자라고 외친다. 그런가하면 미켈란젤로는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 예술가는 고대의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구약성서의 세계를 기묘하게 혼합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 사실은 당시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이 글자의 발견은 로마 바깥으로도 퍼져나간다. 로마에서 떨어진 한 수도원으로도 이 소식이 전해진다. 이 수도원에는 미켈란젤로를 연구해서 학위를 받은 벤노 수사가 있었다. 벤노 수사는 이 소식을 듣고 나서 곧 기차를 타고 로마 교황청으로 향한다. 그 기차 안에서 벤노 수사는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의 일정한 리듬에 어울리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누가복음 거짓말, 누가복음 거짓말...'
미켈란젤로는 누가복음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시스티나 천장화가 그려질 무렵은, 점성가, 피타고라스 학파, 영지주의자, 카발라 추종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다. 이탈리아의 많은 귀족들이 이교도의 미학에 심취해있던 시절이기도 하다. 아무리 교황의 요구에 의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호기심 왕성한 미켈란젤로도 이런 흐름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기골이 장대한 나체로 그려져 있다. 이 모습을 보고 교황청에서 질겁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아랫도리에 천을 입히는 덧칠을 했다고 한다.
<천지창조>에도 이상한 점은 있다. '해와 달의 창조'를 보면 창조주가 벌거벗은 엉덩이를 드러낸 채 태양의 왼쪽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신약의 12사도 대신에 구약의 일곱예언자, 성서와 연관이 없는 5명의 여예언자들을 그려놓았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카인의 살인', '바벨탑' 대신에 술에 취한 노아가 벌거벗고 잠든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왜 이런 장면과 인물들을 택했을까.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걸작 회화를 남기기는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인식했다고 한다. 물론 미켈란젤로는 단순히 '조각가'라고 하기에는 워낙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한 것도 미켈란젤로이고,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캄피돌리오 언덕 재개발 사업을 총지휘했던 것도 미켈란젤로이다. 마치 혼자서 로마의 한 구역을 르네상스 풍으로 재건축한 느낌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파트 재건축처럼.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르네상스의 로마가 미켈란젤로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의 로마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의 업적과 재능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이자 독설가이기도 했던 미국의 마크 트웨인은 로마를 여행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아침에는 아주 기분이 좋다. 미켈란젤로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제 알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미켈란젤로의 복수>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 안인희 옮김. 한길사 펴냄.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전후로 해서, 로마 가톨릭을 둘러싼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관련 작품들을 소재별로 분류해서 한 편씩 소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