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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87년 6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외침은 결국 하나가 되어 거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한강 이남에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대부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화염병, 돌, 각목을 동반한 폭력적인 장면이었고, 6월 민주항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사고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 된 나에게 최루탄을 맞아가며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각목을 휘두르는 것은 올바른 국민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깊게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입시 위주, 반공 교육에 철저하게 학습된 나에게 힘들게 돈을 벌어서 대학에 보내줬더니 기껏 데모나 하고 다니는 대학 선배들의 모습이 한심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민주화, 독재타도, 군부독재 철폐를 외쳤지만, 나로서는 당시에 종로를 휩쓸며 행진하던 시민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

당시에 남녀공학을 다니던 나로서는 '민주화', '독재타도' 등의 복잡한 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몇 학년 몇 반의 여학생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정말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학생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나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심각한 고민거리였습니다.

교회에서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동네를 서너바퀴 돌면서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부르면서 괜한 감상에 빠지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모임에서 가르쳐주던 '아침이슬' '친구' 등의 민중가요는 단지 듣기가 좋다는 이유로 즐겨 부르고 있었지만, 역사나 사회를 제대로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친구들 중에 두어 명이 호기심에 명동에 갔다가 '광주 민중항쟁 비디오'를 보고 와서 흥분해서 이야기했지만, 나로서는 잘만 돌아가는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위협적인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래도 나 또한 호기심이 있었기에 시간을 내서 명동에 가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광주 민중항쟁 비디오'를 상영하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비디오를 보면서 7년 전에 신문이나 언론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빨갱이들이 사주해서 폭도가 되어 버린 광주의 시민들은 무고한 시민들이었고, 바로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우리의 군인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충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디오를 본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디오 상영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1987년 6월은 호기심으로 광주 민중항쟁 비디오를 한편 본 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점차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단체 행동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나는 오히려 '이러다가 북한의 김일성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쳐들어와서 나라가 망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하는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발표되자 시민들은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로서는 노태우 대표의 선언이야말로 '구국의 결단'이며 '나라를 구한 위대한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벌어질 대통령 선거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 역사의 현장에 동참했는데, 나 혼자만 그 현장을 비판하고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세상에는 그 당시에 내가 접한 정보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가 있으며 진실이 언제나 왜곡되어 알려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제한적으로 접했던 정보는 너무나 협소했지만, 그렇게 굳어버린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점차 발전하고 있었고, 그 발전으로 인해서 점차 진실된 모습들이 굳어져버린 나의 머릿속 사고를 녹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알 권리를 침해받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국민들을 천재로 만들기도 하고, 투사로 만들기도 하며, 바보로 만들기도 합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는데, 역사의 흐름을 굴절해서 왜곡 보도해온 언론은 아직도 건재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들이 6월 민주항쟁의 주역이었다는 거짓된 이야기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점차 자신의 영역을 잃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소위 '언론 탄압에 항거하는 굳은 의지'를 볼 때마다 청춘의 세월을 속아 살아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왜곡된 정보에 길들여진 한 고등학생은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 변두리를 서성거렸습니다. 훗날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대해서 딸이 물어보면서 '아빠는 그때 뭐했어?'라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제 돌을 바라보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1987년 이후의 역사 속에서 아빠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밖에 해줄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왜곡된 정보를 비판없이 받아들일까요? 6월을 맞이하며 국민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역사를 거스르는 잘못된 언론이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다'고 하면서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역사 앞에 회개하는 날을 그려봅니다.

#6월 민주항쟁#1987년#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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