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랜턴을 켜고 등산 시작
때는 지난주 토요일(26일) 저녁. 저녁 하고도 밤 10시 23분 대구역. 두 자매는 간편하게 꾸린 배낭을 메고 밤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밤을 달린 기차는 새벽 1시 조금 넘어 진주역에 도착하였고 다시 택시 타고 중산리 매표소 앞에 이르니 새벽 2시였다. 3시부터 산행을 허락하기에 자판기 커피 뽑아들고 일행이 많아지길 기다렸다.
2년 전엔 관광버스들이 즐비하여 안심이 되었는데 이번엔 그러한 버스들은 안보이고 자가용들만 여남은 대 보일 뿐이었다. 언니는 우리만 산을 타면 어떡하느냐며 내심 불안해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우도 잠시 3시 무렵이 되자 만반의 준비를 한 최정예차림의 등산객들이 꾸역꾸역 올라오고들 있었다.
언니와 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 끼여서 등산을 시작하였다. 2년의 세월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는데 다름 아닌 단체 등산객들이 하고 온 등산복 차림새와 장비에서였다. 즉, 다들 긴 등산지팡이를 두 개씩 들고 두 발이 아닌 네발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배낭과 등산화, 장갑 등엔 다들 야광 빛이 났다.
등산 장비만 잘 빠진 게 아니라 걸음들도 다들 얼마나 빠른지 슬슬 걷는 것 같아도 금세 우리를 따라잡고는 종적 묘연히 사라졌다. 덕분에 두 자매는 낙오해서 길을 잃을까 긴장을 하며 맨 나중 부대가 우리를 따라잡기 전에 날이 밝기를 빌며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나 긴장의 시간도 잠시 5시가 되니 사위가 밝아 와서 더는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었다. 언니는 그래도 무서우니 단체로 온 사람들 꽁무니를 따라가자고 하였으나 걱정을 말라며 손 사레를 쳤다.
나로 말하자면 언제부터인가 무보수의 '지리산 안내자'가 아닌가 말이다. 왠지 저 친구는 나 아니면 끝끝내 지리산을 못 가보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와 한번 오르고 나면 다음 사람이 떠올랐다. 그 다음 사람과 또 한 번 오르고 나면 그 다음 사람이 떠오르고….
때문에 늘 지리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들과 오다 보니 매번 가장 가까우면서도 지리산의 중요 지점들을 고루 거치는 중산리 출발 거림골 도착 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좋은 점은 가야할 지점과 거리, 시간이 눈에 훤하니 갈 길이 막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점은 그러니 저 지리산 다른 굽이 굽이들은 언제 다 가보나 하는 것이었다. 빨리 안내자 역할 끝내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지만 그때가 언제 일는지.
안개 때문에 일출은 못 보고...
매번 지리산을 오를 때마다 이번엔 왠지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하며 주문을 걸지만 이제나저제나 하는 사이 언제나 일출시각은 지나가고 말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일출은 꽝이었다. 지리산 일출 세 번 보면 극락 간다고 했던가. 극락 가기 쉽지 않은가 보았다. 그나마 20대 중반 한번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지.
언니는 꾸준히 등산을 한 탓인지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53세 그 나이대 아줌마들이 다들 그렇게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바. 오히려 딸리는 쪽은 나였다. 혈압에 이상이 있는지 왼쪽 귀며, 목덜미 쪽이 멍해지면서 눈이 가물가물. 그래도 다년간 찾은 '짠밥'이 있으니 천왕봉 정상 오르는 것쯤은 땅 짚고 헤엄치기.
천왕봉 정상은 언제나처럼 사람들도 북적댔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장터목, 세석을 지나 거림골로 내려가기엔 시간이 충분했다. 예전에 오를 때는 천왕봉에 도착하면 대개 10시였는데…. 그래서 하산길이 항상 빠듯하여 풍경을 즐길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내려왔는데 이번엔 다를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내려와도 거림골 시외정류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말하자면 잠 안 자고 11시간을 걸은 것이었다.
"언니, 언니 나이에 이렇게 오래 산길을 걷다니 정말 감사할 일 아냐?"
"그럼, 집에서 뒹굴며 TV 보는 사람들은 이 기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이렇게 지리산 한번 오르면 앞으로 1년 혹은 넉넉잡아 2년은 '면역'이 되어 동네 뒷산 말고는 오르고 싶지 않은데 언니는 정말 대단해."
"나는 저번에 설악산 야간 산행할 때 너무 힘들어서 설악산 빼고는 다 좋아. 설악산은 다시는 안가. 후후."
"지리산은?"
"몰라, 지리산도 지금 심정은 다시는 안 오고 싶다."
"초행길이라 그렇지 '다시 온다'에 10만 원 건다."
"그래 걸어라. 그래도 오십대에 잠도 안 자고 10시간을 넘게 걷는 것은 무리 아니니?"
"일반적으로는 무리인지 몰라도 언니에게는 무리 아닌 것 같아."
언니는 그래도 무리라며 우겼지만 나는 계속 등산 연령으로 봤을 때 언니는 오십 아닌 40대라 주장했다. 내 말을 증명해주듯 언니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벌써 11시간의 고행은 다 잊어버린 듯 정말 흐뭇하고, 시원한 산행이었다며 만족해했다.
이튿날은 자고 나니 더 뿌듯하다며, 근육통을 걱정했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며 혈기왕성한 목소리로 전해 왔다. 그 목소리는 내 주머니에 10만 원(?) 확실하게 굴러들어오는 영상과 겹쳐졌다. 뿐만 아니라 다음번엔 언니 먼저 지리산 가자고 나를 꼬드길 일이 눈에 선했다.
마무리 보너스...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 가장 괄목하고 상대하게 만든 존재는 다름 아닌 파리였다. 아니 파리 떼였다. 웬 '놈'의 파리가 그렇게 많은지. 얼마나 기름지게 잘 먹었으면 이건 숫제 파리가 아니라 잠자리 수준으로 날아다녔다. 로터리, 장터목산장의 절반은 파리들의 군무(?)와 그들을 키워낸 화장실 냄새로 코를 싸쥐게 만들었다.
우리가 쏟고 가는 오물을 완전히 자연적으로 처리하려 하기에 그렇다는데, 아유, 그럴 거면 화장실을 좀 멀리 산장과 떨어지게 지어놓고 그러시지. 세석산장은 그나마 화장실이 좀 떨어져 있어서 덜했는데…. 하여간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또 하나는 반달곰을 주의하라는 안내판이었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장터목과 세석평전 사이의 어느 길목에서 반달곰을 마주쳤을 때의 대피요령을 읽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즉 곰을 만나면 뒤돌아 가지 말고 조용히 뒷걸음질을 해서 피하고 곰이 달려들면 적극 저항하라고 하였는데 적극 저항한다고 사람이 곰을 이길까. 아주 난감한 안내판이었다. 가스총이나 고춧가루를 휴대하라고 했으면 또 모르겠으나.(웃음)
아, 그리고 무엇보다 군침을 흘리면서 산나물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국립공원에서 산나물 체취 금지령이 내려서 그런지 취나물, 곰치 등이 노다지로 보였다. 자연을 많이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그냥 좀 뜯어먹게 내버려두시지. 나물들의 일생에서 봐도 인간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영양이 되어주는 게 보람 있지 그냥 늙어 죽는다는 것은 왠지 허무할 것 같은데. 나물들이 말을 않으니, 우린 법을 따를밖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