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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정부종합청사내 제1청사에 정보공개민원접수처가 마련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근 기자실폐지 문제와 더불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정보공개청구 제도이다. 매일 아침 검색창에 '정보공개'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치는 것이 필자의 버릇인데 최근에는 다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기사들이 생산되고 있다. 바야흐로 정보공개청구의 전성시대이다.

정부에서는 기자실을 폐지하면서 브리핑제도를 내실화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활성화해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정보공개법을 취재에 쓰라고 하는 것은 무리이고 현재의 법안도 대단히 부실하고 개정 방향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정보공개법에 기자실을 두는 방안을 개정안에 포함시켜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정보공개법에 기자실을 마련하라는 조항을 둔다?"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두고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정보공개법 개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지 내용을 조금만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정보공개법 개정 논의가 이렇게 엉뚱하게는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가끔 이렇게 엉뚱하게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지난 6년여 간 정보공개청구 제도 확산을 위해서 활동해 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 한미FTA저지 시청각 미디어분야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9월 외교통상부 앞에서 한미FTA 서비스 투자 분과 개방요구목록 정보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보공개법'은 언론을 위한 법이 아니다

먼저 한 가지만 말해 두면 '정보공개법'은 언론을 위한 법이 아니다. 다만 언론도 대상에 포함될 뿐이다. 정보공개법 1조에서 "이 법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공개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정보공개법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법이고 공무원들의 공개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법이다. 언론도 국민이기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지만 국민의 일부인 언론을 위해 정보공개법에 기자실 설치 규정을 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현재 정보공개청구의 근간이 되는 법안인 정보공개법에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바로 법조항의 강제성이 없다는 것과 신속한 공개처리 절차가 미흡하다는 데 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핵심적인 논점이라는 말이다.

정보공개청구를 많이 하다보면 온갖 일이 다 생긴다. 정말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하다보면 그 믿음은 처참하게 깨질 때가 많다.

그 중 가장 많은 유형이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 별다른 이유 없이 "답변 못하겠다"라는 반응과 고의적으로 '부실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용감하게 이렇게 말하면 정말 대책이 없다. 무슨 처벌조항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근거로 고발이라도 하겠지만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별다른 대책이 없다. 기껏해야 처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직무유기'로 고발할 수밖에 없다.

▲ 지난 2005년 시장 업무추진비 공개 청구에 대해 포항시가 보내온 '결정기간 연장통지서'(왼쪽)과 이후 2개월 이내에 청구한 정보를 모두 공개하겠다며 보내온 '정보공개 결정통지서'. 그러나 포항시는 80여일이 지나도록 단 한건의 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임기현
공무원들 사명감을 믿고 싶지만....

심지어 법에서는 그것을 부추기기도 한다. 정보공개법 11조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날부터 20일(일반적으로 10일내에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내에 공공기관이 공개여부를 결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비공개의 결정이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정상적인 법이면 아무런 이유 없이 20일내에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처벌하거나 징계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런데 답변이 없으면 그냥 비공개 한 것으로 보라고 강요하고 있다. 법 자체가 매우 권위적이다.

그로 인해 공무원들은 이런 조항들을 교묘히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보공개법에 처벌조항을 둬야 하며 최소한 징계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정보공개법의 모법인 기록물관리법에도 기록물무단파기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이 기록물무단파기에 대해서 고발한 사례도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보공개법은 일종의 절차법이다. 정보를 신속하게 중립적인 절차에 의해 공개되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법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보공개를 자의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자의적으로 비공개된 것을 공개로 뒤집는 것도 매우 어렵다.

현재 중앙행정기관을 중심으로 '온나라 시스템(업무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기록을 생산할 때마다 공개 및 비공개를 설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자의적으로 지정하고 있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정보공개법에 비공개 세부기준을 각 기관마다 만들도록 하고 있지만 그 수준은 매우 낮아 여전히 모호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자의적 비공개에 대한 대안은 존재 하나 논의가 복잡하므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이로 인해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자의적 비공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같은 내용으로 여러 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그 답변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어떻게 정부에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는데 기관마다 그 기준이 다를 수 있는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이 정보공개청구를 했을 때 공공기관에서 임의적으로 비공개 처분을 내렸을 경우 이의신청을 하게 되어 있다. 이의신청도 비공개 처분이 나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같은 내용으로 청구해도 답변은 천차만별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의신청을 심의하는 정보공개심의회는 일반 행정기관인 경우에는, 심의위원으로 외부전문가를 50% 선임해야 한다. 따라서 외부전문가가 객관적 인사로 구성된다면 중립적으로 정보공개심의회를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민감한 정보를 생산 하는 '국방' '외교' '통일' '검찰' '경찰'과 관련 기관들은 외부전문가를 1인만 구성하면 되도록 하고 있다. 정보공개심의회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이다.

게다가 정보공개에 대해 행정심판을 제기해도 청구인의 승소률이 20%를 넘지 않는 형편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사법부에 행정소송을 제기 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소송을 제기 한다는 것은 비용 및 전문성 문제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송을 제기해 본 사람은 안다. 일반인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가를…. 그것은 언론인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들이야 담당 변호사를 선임해서 천천히 처리하면 되겠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소송은 최소한 1~2년, 길면 4~5년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 정보가 필요할 때 즉시 취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몇 년씩 훌쩍 까먹으면서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로 인해 대부분 그냥 포기하고 만다.

공무원이 정보를 못 준다고 끈질기게 버티기만 해도 최소한 95% 이상은 공무원의 승리인 것이다.

행정소송시 길면 4~5년... 대부분은 포기

▲ 지난 2002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조선시대 관복을 입고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 정보공개"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최한수 참여연대 간사. 최 간사는 몇분 후 청와대 202 경비대에 의해 강제연행됐다.
ⓒ 참여연대 제공
이런 설움을 당해보지 않고서 어찌 정보공개법을 논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기자들에게 정보공개청구를 이용해서 취재에 이용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시민사회에서는 현재 대통령산하 비상설위원회로 있는 '정보공개위원회'에 특별 행정심판기능을 부여해서 신속히 정보공개에 판결을 내리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안은 기획예산처와 법제처가 예산 및 정부조직상의 문제로 반대하고 있어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악의적 비공개에 대한 처벌 조항 및 정보공개위원회에 행정심판 기능 부여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 논의를 접어두고 현재 정부에서 도입하겠다고 하는 공익검증제도 같은 것은 아무런 필요성이 없다.

기자실 폐지 문제로 정보공개법이 논의에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매우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의 본질을 직시하면서 법을 개정해야지, 아이디어로 법을 개정하면 더욱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앞으로 정보공개법 개정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국민적 입장에서 접근하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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