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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재가 발달한 일본드라마에서는 매 분기별로 서스펜스, 공포, 시대극, 전문직 드라마 등 특화된 장르극들이 꾸준하게 선을 보인다. 10대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학원물도 이중 하나다.

여기서 일본 학원물은 크게 '이상'과 '현실'의 두 종류로 나뉜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로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나카메 유키에 주연의 <고쿠센>시리즈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야쿠자 가문 출신 여선생이 문제아 고등학교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다룬 코믹 명랑물인 이 작품은, 일본에서 후지 TV를 통해 시즌 2까지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도 일드 팬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모은바 있다.

엉뚱하고 엽기적인 신세대 교사가 문제아 학생들을 이끌며 참교육을 실천해간다는 '죽은 시인의 사회'류의 스토리는 일본 학원물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고쿠센> 이외에도 <반항하지마>, <카치바카>등을 비롯하여, 최근 2분기 드라마(일본 드라마는 보통 12화로 분기별로 드라마가 방송됨)에서 방영중인 우치야마 리나 주연의 <학생제군>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나의 미션을 목표로 도전하는 평범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젊음의 열정과 순수성을 예찬하는 '무한도전'류의 스토리들도 있다. 한국영화 <두사부일체>의 리메이크작으로 널리 알려진 <마이보스 마이히어로>를 비롯, 학창시절 특별활동문화가 발달한 일본 학원의 특성을 살린 <워터보이즈>, <에이치 2, 너와 함께했던 날들>, <힘내서 갑시다> 같은 스포츠 드라마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가벼운 코믹명랑물의 느낌이 강한 위 작품들이 학창시절의 낭만과 향수를 자극하는 '양지속 학원상'을 그려내고 있다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학교를 사회나 다름없는 비정한 현실세계의 연장선으로 그려내는 작품들도 있다.

호리키타 마키, 카메나시 카즈야, 야마시타 토모히사 등 일본의 대표적인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며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모았던 <노부타 프로듀스>는, 표면적으로는 코믹 명랑물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상은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 '이지메'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지메와 폭력에 침묵하는 학원 사회,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10대들의 모습은 웃음 속에서도 묘한 충격을 안겼다.

<드래곤 사쿠라>나 <여왕의 교실>은, 아예 생존 경쟁과 성적지상주의만을 내세우는 비정한 교사들을 내세워, 이상적인 학창시절을 포장하는 기존 학원물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작품들이다. <드래곤 사쿠라>의 폭주족 출신 변호사 사쿠라기(아베 히로시)는 전국 최악의 진학률을 자랑하는 류잔고의 열등생들을 일류대학인 도쿄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왕의 교실>의 교사 아쿠츠 마야(아마미 유키)는 한술 더 떠서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철저히 성적에 따라 자리를 차별대우하고, 이간질과 통제를 일삼는 등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고쿠센>의 앙쿠미(나카마 유키에)나 <학생제군>의 기타시로 나오코(우치야마 리나)가 학생들의 권익과 인권보호를 위해서 물불 안가리는 열혈 교사라면, 사쿠라기나 마야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징징대거나 엄살 피우지 마라"고 냉소하거나, "억울하면 실력을 키워서 명령받는 쪽이 아니라 명령하는 쪽에 서라"고 일축해버리는 비정한 교사들이다.

개발독재나 군국주의자의 논리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가치관은, 비록 인간미는 없지만 대책없는 이상론이 아닌 현실논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냥 비판하기만도 어려운 양면성을 지닌다.

최근 후지 TV에서 방영중인 <우리들의 이야기>는 사회적인 이슈가 된 이지메 문제를 좀 더 확대시킨다.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중생의 사연을 추격하는 담당교사와 여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개개인의 왕따 문제를 넘어서 비리를 은폐-축소하려는 일본 교육사회의 폐쇄성까지 파헤친다.

매분기별로 1~2편씩 반드시 제작되곤 하는 학원물은 소재 고갈로 인하여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다소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 그러나 다양한 소재와 범위를 넘나드는 장르적 노하우는 여전히 수준급이다.

한국에서는 주류 장르와는 거리가 먼 학원물이, 일본에서는 황금시간대로 불리는 '게츠쿠'(월요일 밤 9시)나 평일 오후시간대에 편성되어 종종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도 우리와 다른 부분이다. 또한 아이돌 스타들을 비롯하여 일본의 재능 있는 젊은 신예들이 10대 시절부터 일찌감치 다양한 형태의 학원물을 통하여 주목받는 신진 배우로 육성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도 <학교>, <반올림>같은 대표적인 학원물이 있지만, 일본처럼 학원물의 소재와 범위가 폭넓지는 않다. 일본 학원물은 황당한 코믹 명랑물이나 성장드라마에서, 10대의 성과 임신, 이지메와 오타쿠, 교육계의 비리와 학원사회의 폐쇄성 등, 시사적인 이슈와 결합한 사회드라마까지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10대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모습을 몇 가지 정형화된 범주와 캐릭터안에서만 반복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원물의 장르적 취약성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학원물#고쿠센#드래곤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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