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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여러모로 닮은꼴이다.(자료사진)
지난달 5월 10일 블레어 총리의 사임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든 유권자들의 반응은 '열광' 그 자체였다. 영국인들이 '게일(광풍)'이라고 부를 법한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블레어 총리가 사임 일정을 밝히는 연설을 한 잉글랜드 북부 세지필드의 한 작은 클럽에는 블레어를 보기 위해 수백명의 지지자들이 아침나절부터 몰려들었다.

지난 1994년 풋내기 정치인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수 경선에 나서기 위해 선거운동을 처음 시작한 곳이기도 한 이 클럽에 모여든 열광적 지지자들에게 블레어 총리는 한 마디로 '돌아온 영웅'이었다.

"사랑해요, 토니"는 물론, "셰리(블레어 총리 부인), 남편을 빌려줘서 고마워요" 같은 낯간지러운 플래카드들마저 등장했다. 미처 연설장에 들어가지 못한 청중들은 건물 바깥에서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이날 블레어 총리 주변 어디를 봐도, 여론은 물론 당내의 사임 압력에 떠밀리다시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보따리를 싸게 된 힘빠진 총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였다.

블레어 "옳다고 생각한 일들만 해왔다"

연설장 분위기뿐만이 아니었다. 연설 내용 역시 추락하는 자신의 지지율은 아랑곳 없다는 듯 집권 10년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회고가 대부분이었다.

블레어 총리는 자신이 이끌었던 노동당 정부가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률, 의료개혁, 교육지표, 범죄율 등 모든 면에서 2차대전 이후 영국의 어느 집권당도 이루지 못했던 치적을 이뤄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옳다고 생각한 일만을 해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중 여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현실 인식이었지만 블레어 총리는 자신의 소신을 다시 한번 명확히 밝혔다. 반면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쳤던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한다"는 두리뭉실한 언급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언론들로부터 '도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한다는 거냐'는 비판에 휩싸였다. 게다가 총리직 중도 사퇴라는 악몽으로 그를 몰아넣었던 이라크전 참전 문제에 대해서는 정작 별다른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치평가포럼 연설이 또한번의 후폭풍을 일으키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만약 이 날 블레어 총리의 연설 내용과 연설장 분위기를 한국 언론들이 보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원맨쇼', '총선 출정식 방불', '종교집회 같기도', '블레어, 나는 세계적 총리', '부적절, 자아도취, 네 탓뿐' 등 이런 제목들이 신문 헤드라인을 뒤덮지는 않았을까?

노무현의 연설과 블레어의 연설

이런 호기심을 가지면서 지난 5월 중순 영국 신문들을 다시 뒤적거려봤다. 당시 영국 언론들 대부분이 블레어의 사임 연설을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보도한 것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노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듣고 당시 칼럼들을 꼼꼼이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신기하게도 똑같은 표현들이 눈에 쏙 들어왔다.

당시 <더 타임스>의 한 기자는 블레어의 사임 연설 분위기를 묘사하며 "낯선 사람이 봤다면 종교집회(cult meeting)에 참석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비꼬았다. 청중들의 태도 역시 "호의적인 수준을 넘어 가족들이 참석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비아냥도 잊지 않았다.

<가디언>은 현장 스케치 기사에서 블레어가 사임 연설을 한 노동당 클럽을 가리켜 "모든 사람들이 블레어를 사랑하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곳"이라고 비꼬았고 "블레어의 연설은 반전운동을 펴온 인사들에게 구토 봉투를 찾게 할 것"이라고 직설적 비판을 날렸다.

<인디펜던트>의 한 칼럼니스트는 "옳다고 생각한 것만을 해왔다"는 블레어의 자기변명을 걸고 넘어지면서 "무솔리니나 히틀러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공격의 칼날을 세웠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열성적 지지자들 앞에서 자신을 "세계적 대통령"이라 칭하면서 야당의 대통령 후보들을 '정신병자' 수준으로 격하했건 아니면 보수언론들이 노 대통령을 향해 '골목대장'이나 '정신분열증 환자' 수준의 용어를 써가며 독설을 퍼부었건 간에 그것이 참여정부를 둘러싼 2007년 6월의 '한국적'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봐주는 법 없는 영국 언론의 '원투 스트레이트'

▲ 지난달 10일 블레어 영국 총리가 다음달 27일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블레어 총리가 트림던 노동당 클럽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있다.
ⓒ AP·연합뉴스
영국의 블레어 총리와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세계 어느 나라의 정치 지도자라도 정권말에 자신의 재임중 치적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맨날 동네북처럼 얻어맞다가 지지자들 앞에서 한번 폼 좀 쟀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또 상업언론이 지배하는 세계 어느 나라 언론 치고 권력을 향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매질을 해대면서 그걸로 신문 팔고 기자들 봉급주지 않는 회사가 없으니 언론의 속성이려니 생각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이다. 사실 영국 언론들이 블레어 총리의 최근 외교정책이나 교육정책들을 다루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한편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잽과 원투 스트레이트를 동시에 날리는 경우가 많다. 저러다 아예 링에 들어누워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 법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는 법은 없다.

지난해 가을 노동당 전당대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당시 블레어 총리는 시한만 정하지 않았을 뿐 이미 2007년 중 사임을 약속한 바 있었고 당시 전당대회가 노동당수로서 블레어 총리가 참석하는 마지막 전당대회라는 점에서 그의 연설 내용에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연설 중간에 사소한 해프닝이 발생했다. 블레어 총리가 당시 대부분의 영국 언론들이 집요하게 보도하던 블레어 총리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차기 총리 내정자)의 불화설을 부인하며 브라운 장관의 인격과 능력을 한껏 치켜세우고 있던 중이었다. 객석에서 이 대목을 듣고 있던 블레어 총리의 부인 셰리가 혼잣말처럼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 말이 당시 우연히 옆에 있던 미국 블룸버그 통신 햇병아리 PD의 귀에 들어갔고 셰리 블레어의 '거짓말' 발언은 전세계에 타전됐다.

당황한 총리실 측이 발언 사실을 허겁지겁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다음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영국 언론들이었다. 공영방송 BBC는 현장 생중계를 통해 이 블룸버그 통신 햇병아리 PD를 인터뷰 해가며 셰리 블레어의 발언을 비중있게 보도했고 다음날 아침 많은 신문들도 정작 '감동적인' 블레어의 마지막 전당대회 연설은 제쳐둔 채 셰리 블레어의 '거짓말' 발언을 1면 머릿기사로 올린 것이다.

노동당수로서 참석한 마지막 전당대회에서 대미를 장식하려던 블레어 총리가 '죽사발'이 되버린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신문편집

사실 최근 영국 언론들이 블레어 총리를 죽사발로 만들어 버린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블레어의 우경화 노선을 비판하는 데 앞장선 것은 진보언론들이다. 대표적인 신문이 <인디펜던스>다.

잘 알려진대로 <인디펜던스>는 좌파 성향의 진보 매체이다. 지난 1986년 보수성향의 <데일리 텔레그라프> 출신인 3명의 기자들이 당시 영국 신문시장을 집중 공략하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노조말살 정책에 반발해온 젊은 기자들을 규합해 이 언론사를 만들었다.

특히 블레어 총리의 이라크전 정책을 집요하게 비판해온 <인디펜던스>가 미국 중간선거 직후 보여준 편집은 안 그래도 궁지에 몰린 블레어의 약을 바짝 올리기에 충분했다.

중간선거에 패배한 부시 대통령이 네오콘의 핵심인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자 <인디펜던스>는 한 면 전부를 털어 부시·블레어는 물론 미국의 네오콘 등 이라크 전 기획자들의 사진들을 모조리 싣고 한 명 한 명을 빨간 가위표로 지워나간 뒤 블레어와 부시의 사진 위에 "이제 몇 명 안 남았다"는 자극적 제목을 달았다.

블레어 총리에 대한 <인디펜던스>의 집요한 공격은 블레어가 "오는 7월 26일 사임하겠다"며 퇴임 시간표를 제시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블레어의 사임 연설이 있었던 다음날 아침 대부분의 신문이 지지자들을 위해 키스하거나 손을 흔드는 블레어의 사진을 1면에 실은 데 비해 유독 <인디펜던스>만은 블레어 집권 10년동안 발생했던 각종 사건들의 목록을 1면에 촘촘히 채워넣고 이 글자들로 'IRAQ'라는 활자를 모자이크로 만들어 내보냈다.

며칠 뒤에는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인디펜던스>는 1면 머릿기사에서 블레어 총리를 향해 "몇 주 더 버텨봤자 영국에 도움될 것이 하나도 없으니 지금 당장 물러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라크전과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으로 전통적 노동당 지지층으로부터 외면당한 블레어 총리는 대표적 진보언론으로부터 또한번 '죽사발'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블레어 총리가 자신을 비난하는 진보성향의 언론을 향해 섭섭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밝혔다거나 '영국이 진보만 사는 나라냐'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는 말을 들어보지는 못했다.

블레어와 노무현, 그들은 닮았다

▲ 지난달 10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6월 27일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세지필드 선거구의 트림든 노동당 클럽을 떠나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EPA·연합뉴스
사실 몇 가지 점을 제외하면 블레어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면에서 닮은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최고 집권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도 그렇고 진보 성향의 정치적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집권 후 전통적 지지세력으로부터 비난에 시달렸다는 점도 그렇다. 집권 말기에 적지 않은 전직 참모들이 자신의 노선에 반발해 등을 돌렸다는 점까지도 닮은 꼴이라면 닮은 꼴이다.

특히 자신의 지지층을 이반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이라크전 참전 때문이었다는 점만 놓고 보더라도 두 사람이 한번쯤 동병상련의 느낌을 충분히 가졌을 법도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을 떠올릴 때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 분모는 다름 아닌 탁월한 연설 능력이다. 두 사람 모두 즉흥 연설에 능한 것은 물론이고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블레어 총리를 가리켜 영국 언론들은 '소파 대화'에 능하다고 평가한다. 후임자인 고든 브라운 장관의 연설이 '산상설교' 방식인데 비해 블레어 총리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유롭게 참모들과 토론하면서 이들을 설득해나간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나이로 따지면 한참 아래뻘인 386참모들과도 격의없는 토론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모두가 대중과의 직접 접촉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연설, 그리고 설득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흥 연설에 능한 블레어와 노무현

블레어 총리의 연설을 한참 듣고 있다보면 저절로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타카토식으로 끊어지는 명료한 발음과 자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곳에서 치고 빠지는 손동작으로 청중들의 시선이 한가롭게 딴짓을 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블레어 연설의 장점이다.

그런 면에서 블레어의 연설은 지루하고 위태롭게 보이는 부시 대통령이나 아직도 KGB 비밀 요원의 경계심 어린 눈매가 잔뜩 남아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과는 아예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다.

영국 노동당의 많은 의원들이 블레어 총리의 후계자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체제 아래서는 보수당의 40대 당수인 데이빗 캐머런에 맞서 차기 총선을 치루기 힘들다고 '위기론'을 설파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뚝뚝해 보이는 브라운 장관의 인상 뿐만 아니라 블레어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그의 연설 능력 때문이다.

다음 총선 이후 누가 영국의 차기 총리가 되더라도 토니 블레어야말로 몇십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탁월한 연설가라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은 어떨까. 두말할 것도 없이 블레어 총리가 한국말을 배워 노 대통령의 대중 연설을 듣는다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무릎을 꿇을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의 대중 연설은 어찌보면 정보화와 정보 과잉의 시대에 딱 들어맞는 첨단형 무기에 가깝다. 정보가 무한대로 흘러넘치는 시대의 대중은 더 이상 밋밋한 교과서적 연설을 선호하지 않는다.

내용이 아무리 좋고 전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전통적 기승전결 방식의 대중연설은 더 이상 청중들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반전과 역설, 때로는 유머가 연설 중간중간에 강한 액센트를 주는 노 대통령의 연설이야말로 정보화 시대의 청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소수파의 한계를 딛고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노 대통령답게 그의 연설은 다분히 직설적이며 선동적이다. 닫힌 공간보다는 열린 공간이 힘을 더해주고 음악이 흐르는 연회장에서보다 대중들의 직접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길거리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노무현표' 연설의 장점이라고 할 만하다.

블레어의 전진 속공, 노무현의 시간차 공격

그러나 두 사람이 대중연설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리는 목표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블레어 총리의 연설이나 인터뷰를 듣다보면 자신의 치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말소리가 빨라지고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언론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단골로 내놓는 메뉴는 자신이 집권했던 1997년과 비교한 범죄율, 병원대기시간, 교육지표 등이다. 주로 수치를 들어가며 자신의 실적을 홍보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언론으로부터 '수백번도 더 들어본 소리'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공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노 대통령이 중요한 정치적 고빗길마다 '작심하고' 던진 대중 연설의 메시지는 주로 정적이나 적대적 언론에 대한 직설적 공격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노 대통령이 균형발전 정책, 방폐장 문제 해결, 국방개혁 등 참여정부의 정책 성공 사례를 설명하는 데 소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통령에게는 '암묵적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언론, 헌법, 여야 차기 대선 후보 등을 차례로 싸잡아 스스로 잡도리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정책 홍보가 관심을 끌 공간은 없어 보인다. 당장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발언 중 뭐가 뉴스가 되고 뭐가 다음날 아침 신문에 제목으로 등장할 것인지 모를 리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치적을 의욕적으로 설명하는 데 열을 올리는 블레어 총리와 달리 노 대통령은 야당 후보나 언론을 비판할 때 더욱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블레어 총리가 정공법이라면 노 대통령은 변칙 플레이를 펼치는 셈이다. 블레어 총리가 주로 전진 속공을 즐긴다면 노 대통령은 시간차 공격에 더욱 능하다. 물론 변칙 플레이나 시간차 공격이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거나 허를 찌르는 데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블레어 총리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유권자인 영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연설의 품격이다. 영국인들만큼 정치인들의 연설을 중요시하는 나라도 없다. 얼마전 <가디언>이 독자들에게 끼워준 별책부록의 제목은 '20세기의 명연설'시리즈였다. 적어도 50~100년 가까이 된 연설문의 문장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며 시대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다. 이 별책부록의 첫 장은 1940년 6월 영국 의회에서 행한 처칠의 연설로 시작된다.

영국 언론들도 노동당이나 보수당 전당대회 같은 주요 정치집회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연설하고 나면 이를 놓고 무슨 단어가 몇 번 쓰였고 박수는 몇 번 나왔으며 지난해 연설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따지기를 좋아한다. 이러다 보니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 연설에서 아무리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의 수위를 높이더라도 그다지 품격이 떨어지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극히 보기 어렵다.

노 대통령, '죽사발' 된 블레어를 생각하라

▲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으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와 과제에 대한 특강을 하고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2시간 동안 이어진 `21세기 한국,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참여정부 국정 전반에 대한 정책 성과를 설명하고 미래과제 해결 방향을 밝혔다.
ⓒ 연합뉴스 박창기
물론 블레어 영국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역정과 대중 정치 스타일이 가진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정치적 항로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블레어 총리 사임 발표 직전 일부 언론이 '정계 은퇴설'을 보도했듯이 10년 권좌에서 물러난 블레어 총리는 이미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지이자 정적이었던 고든 브라운 장관을 후계자로 지명한 마당에 현실 정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다르다. 이번 참여정치평가포럼 연설만으로도 12월 대선 국면에 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하는지가 분명해졌다.

어찌보면 지금 노 대통령은 그가 청와대를 떠난 뒤 펼칠 '노무현표 정치' 의 제2막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5년을 정치인생의 끝이 아니라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정치'란 국회의원 배지달고 하는 여의도 정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다 보니 앞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 정치에 대한 발언 수위는 높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청와대도 이러한 예상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반한나라당 전선의 단일화가 늦어지고 시간이 없다고 느낄수록 발언의 농도는 더욱 진해질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좀 더 '섹시한' 발언에 대한 유혹이 커질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한국 정치의 흥행을 걱정해야 하는 프로모터가 아닌 이상 스스로 아랫도리를 벗은 이만수 감독의 흉내를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고 블레어 총리의 경우를 한번쯤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영국 언론으로부터 '죽사발'이 되어버린 블레어가 임기말 언론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퇴임을 앞둔 그가 지지자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또 '블레어 10년'이 영국 사회에 남긴 유산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꼴 중의 닮은 꼴'인 블레어 총리를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꿈꾸는 노무현표 정치 제2막의 한 장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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