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2년 만의 재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오르세미술관전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이라는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많이 반가웠고 또한 감사했다.
지난 1995년 겨울에 어렵게 파리에 닿아 오르세미술관이 개관한 지 9년이 조금 지났을 시점에 방문한 이래, 유럽 대륙에는 몇 차례에 걸쳐 더 발을 담갔지만 유독 오르세미술관만큼은 다시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미술관이라고 루브르박물관만 인지하던 상황에서, 밀레의 작품 <만종>의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던 터라, 시간을 내어 먼 발걸음을 한 그때 파리 교외의 마르세유 궁전을 살피고 행여나 문 닫을까 정신없이 서둘러 달려와 본 곳이 오르세미술관이다. 결국 오랜 시간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교과서에나 보던 만종을 접하는 당시 마음은 큰 감동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만종>은 물론 오르세미술관의 작품을 인쇄물이나 영상자료가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다시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2000년에는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르세미술관전 '인상파와 근대 미술'이라는 전시회를 하며, 비록 만종은 없지만, 오르세미술관 작품을 국내에 들여왔다. 그때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못 간 것이 올해 5월 말까지 이른 것이다.
[테마 1] 오르세미술관
현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건물은 과거 최고재판소로 쓰였던 오르세궁의 불탄 자리에 1900년에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인 '빅토르 랄로'에 의해 새로 지어진 '오르세역'이었다. 현대적으로 건설된 철도역사였지만 철로의 확장과 기차 객차의 발달을 못 따라간 채 1939년에 파리 근교행 열차만 운행하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된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방치되었다가, 1979년부터 미술관 및 박물관으로의 사용을 위해 건물의 리모델링을 시작하였다. 7년 뒤인 1986년 12월에 마침내 '오르세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 역할을 잠시 쉬던 초대형 건물이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상대적으로 루브르박물관이 궁정미술화가 중심의 작품과 해외에서 수집 혹은 약탈한 작품들이 전시되며, 그 루브르만의 특징적인 작품 배치의 맥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에 비해 오르세미술관은 과거 '인상파 미술관'에 전시하던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어 근대와 현대의 과도기적인 작품들의 느낌이 강하다.
실제 오르세미술관은 2월 혁명이 일어난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시기인 1914년까지 서구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문을 연 국립미술관이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상징주의 회화·조각·공예 명작들이 집대성된 점이 특징이다.
[테마 2] 대한민국의 '오르세미술관전'
이번 대한민국의 오르세미술관전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전시회만이 갖는 특징은 국내 최초로 오르세미술관의 간판격의 작품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레의 <만종>과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작품에 대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전시회 출품작의 상당수가 지난 3월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오르세미술관전 '화가들의 천국' 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이긴 하지만, 두 작품만큼은 한국전시를 위해 특별히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추가로 공수된 작품이다. 물론, 이에 따라 <만종> 한 작품만 하더라도 약 1천억원, 전체적으로는 8천억원 정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큰 액수의 보험료가 책정되었다. 그만큼 귀한 작품임을 반증하는 사례이다.
전시비용 또한 40억원에 달하는 매머드급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돈으로 도배했지만 실속은 별로 없었던' 근래의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외국발 대형 미술전시회와 달리,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충실함이 느껴지는 알짜배기 전시회이다.
그렇다고 넓은 공간에서 엄청나게 많은 전시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말자. 실제 가보면 그다지 넓은 공간에서의 전시는 아니다.
한가람미술관 3층의 5·6전시실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전시면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작은 전시회이다. 하지만, '타이틀 곡 외에는 들을 것 없는' 몇몇 대중가수 음반과 같은 전시가 아닌 '알짜 음악만을 담은 명작' 스타일의 전시회이다. 오히려 관람시간을 길게 가져 볼 가치가 충분하다.
[테마 3] 밀레의 <만종>
밀레의 <만종>이 대한민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먼저 '어떻게 만종이라는 대작을 한국으로 가져왔고, 또 오르세미술관은 어떠한 목적으로 반출을 허락했을까?' 하는 의문점이다.
또 하나의 느낌은 '그렇다면, 현재 파리 오르세미술관에는 만종이 전시되어 있지 않은데 일시적이긴 하지만 만종을 우리 국민이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하는 어딘가 모르게 은근히 느껴져 오는 기쁨이다.
원본이 아닌 무수한 사본을 양산해 낸 서양의 대표적인 작품 <만종>. 그저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조용히 기도하는 이 모습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우리의 일상을 평화로운 농촌을 배경으로 편안하게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편안한 마음으로 (행여나 저녁에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더욱더 편안한 마음으로) 명작을 감상해보도록 하자.
[테마 4]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이번 전시회에서 <만종>에 버금가게 인기 있는 작품은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다. '그냥 소년 하나 덩그러니 그려놓은 것이 왜 명작이자 인기작으로 평가받는가?' 싶은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자세하게 그림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심플하고 깔끔한 화폭의 배치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피리를 부는 소년을 통해 자연스레 느껴지는 은은한 악기소리의 감정은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무언으로 말해준다.
이 그림의 크기는 매우 크다. 모델과 거의 흡사한 크기가 아닐까 싶은 세로 161cm에 가로 97cm. 이 그림의 모델은 마네의 친구인 르조슨 사령관이 데려온, 황제친위대곡예단의 페피니에르라는 소년이다. 단순한 배경과 평면적 묘사가 실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국립미술학교 출신이지만 도발적 화풍을 선보이며 인상주의의 대표주자로 성장한 마네의 대표작 <피리부는 소년>을 살펴보자.
[테마 5] 그 외의 명작들
솔직히 이 전시회가 아니라 다른 전시회에 갔으면 충분히 주연급을 맡았을 법한 명작들이지만, 밀레의 <만종>과 이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등에 밀려, 조연급으로 밀린, 혹은 조연급도 못 맡는 불운(?)의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
대학의 '서양근대미술사', '현대미술사' 등의 강의에서 수업시간마다 이름을 들을 수 있을 법한 작가들인 고흐, 고갱, 드가, 로트레크, 루소, 르누아르, 르동, 모네, 모로, 보나르, 뷔야르, 세잔, 시냐크, 피사로(이상 가나다순) 등의 명작이 바로 그러하다.
작가의 힘든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방을 그린 고흐의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별 꾸밈 없이 그려진 데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고갱의 <타이히의 연인들> <자화상>, 그 외에도 세잔의 <푸른 꽃병>, 시냐크의 <우물가의 여인들> <오르페우스>, 드가의 <오페라좌의 관현악단>, 루소의 < M부인의 초상>, 모로의 <오르페우스> 등도 충분히 주목하고 감상할 만하다.
에필로그
오르세미술관 전시회 주최 측에서는 6월 1일부터 7월 13일을 기준으로 월·화·수·금요일 오전 11시 15분부터 오전 11시 45분까지와 오후 5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전시설명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월·화·수·금요일의 그 외 시간대에는 시청각실에서 교육용 영상 상영 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으니, 시간을 잘 맞춰 간다면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되리라 본다.
예술의 전당으로 올 때 대중교통으로 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3호선 남부터미널(예술의전당) 역에서 내렸을 경우 4번 혹은 5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의 얕은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며, 양재역이나 사당역에서 내렸을 경우 '서초 17번'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5∼10분 정도 추가 이동이 필요하다. 예술의전당에서 직진하여 닿을 수 있는 서초역에서 '서초 11번' 혹은 '서초 12번'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 닿을 수 있지만 배차가 길다.
다만 예술의전당 아래 우면산터널의 개통 이후 인천지역 광역버스를 중심으로 수원 등 많은 광역버스가 우면산터널을 거치고 있어, 인천광역시 대부분의 지역과 부천시 상동·중동지역, 그리고 수원시 서수원지역 등에서 예술의전당을 오가는 데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기사의 한계로 깊은 감동을 전하지 못해 아쉽지만,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하더라도 한 번의 눈으로 보는 개개인의 감동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이번 주말에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