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로부터 꼭 20년이 흘렀다. 생각해 보면 긴 세월이다. 그 사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또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일들이 놀랍도록 빨리 잊혀지고 있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 세월의 간격이 새삼 차갑도록 뚜렷이 인식될 때가 있다. 87년에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에게 6월 항쟁은 그저 막연한 역사거나 아예 모르는 일일 뿐이다.
내게 마치 육신 어느 부분에 남아 있는 생채기마냥 너무나 생생한 기억들이 그들에게는 낯설 뿐 아니라 별다른 감흥도 느낄 수 없는 그저 먼 이야기라는 사실이 가끔은 일종의 절망적 단절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 단절감은 해가 갈수록 깊어진다. 내 속에 숨어 있는 어쩔 수 없는 '꼰대기질'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난 그 단절감이 안타깝고 슬프다. 이 젊은이들이 내가 그만한 나이였던 시절 80년대의 엄혹하고도 치열했던 시간들을 모른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세대간의 차이는 결국 기억의 차이일 수밖에 없다. 역사 교육은 그 기억의 차이를 좁혀주면서 세대간에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너비를 더 넓혀주는 일이다. 그 교육이 그저 교과서 암기식의 교육이 되지 않으려면 역사의 기억을 문화적 코드로 전환시키면서 세대간 차이를 문화적으로 좁혀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80년대, 우리가 추구했던 것들
지난 5월 25일~27일까지 열렸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공연을 보며 노래란 것이 바로 그런 문화적 코드의 가장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그것을 낳은 시대 상황의 산물이다. 노래에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 감수성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모든 문화가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노래의 시대성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노래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동시대적으로 공존하는 거의 유일한 문화이기 때문이다(예컨대 80년대의 드라마나 영화를 지금 보기는 어렵지만 그 시절의 노래를 지금 찾아 듣거나 부르기는 어렵지 않다).
노찾사가 불렀던 노래들은 대부분 80년대적 상황의 산물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과 희망, 삶과 정서가 담겨 있다. 노찾사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그 시절의 노래를 좀 더 새로운 음악적 그릇에 담아 들려주었다. 그 새로움도 좋았지만 내겐 그들의 노래가 여전히 87년의 함성, 나아가 80년대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감동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80년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 시대는 지나간 역사일 뿐 이제는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예컨대 노찾사의 경우도 80년대의 무게감을 벗고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현 세대의 감수성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담겨 있다.
이런 생각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80년대의 의미를 너무 좁게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80년대에 우리가 추구했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어떤 좁은 의미의 정치도 이념도 계급의식도 무슨 무슨 주의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80년대 희망의 기억, 지금의 세대에게 알려주자
지금 생각해 보면 80년대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 어떤 권력이나 자본보다 바로 인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그것이었다.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심지어 목숨을 바치면서 싸워 지키고자 했던 단 하나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뢰의 회복, 좀 더 인간화된 세상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을까.
지난 20년의 세월이 내게 결코 긍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다. 그 20년의 세월을 거쳐 우리가 도달한 지점은 오히려 모든 인간적 가치가 내동댕이쳐진 채 오로지 권력과 자본만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세상이 아닌가. 이른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그 속에서 오직 나의 승리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삶의 불안정성이 날로 커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새롭게 인간의 가치, 인간의 얼굴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히려 지금 80년대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87년 6월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 속에 담겨 있던 인간에 대한 희망을 지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절 우리가 함께 했던 희망의 기억을 지금 새로운 세대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창남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자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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