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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21년 7월 22일 오전 10시 34분]

6월 1일부터 전북 전주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지돋을그림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맑고 청아한 대금연주와 함께 은은함과 단아한 멋이 전시장을 공기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고슬고슬한 촉감의 한지가 뿜어내는 단정한 맛이렷다. 이름하여 한지돋을그림전.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돋을그림이란 무얼까? 생소한 말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최정윤 작가를 지난 5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 작품을 보면 매우 독특한 기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겠어요.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한지로 만드셨죠?
"한지는 한진데 한지로 만들어지기 이전, 풀처럼 풀어져 있는 상태의 것을 사용해요. 거기에 천연연료로 염색해서 말리죠. 그리고 그림을 판에 새긴 다음, 풀처럼 풀어져 있는 한지들을 그 판에 맞춰 찍어냅니다. 한지를 판에 찍을 때는 그 그림의 색깔에 맞는 한지를 넣습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 나무를 표현할 때는 판화에 찍어낸 뒤, 한지 위에 초록색 물감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초록색 한지를 넣어 판화를 찍는 형태로 가죠."

- 그러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텐데요.
"고생스러움은 말로 다 못하죠. 한지가 모양이 잘 갖춰져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처음부터 한지를 채워서 찍어내야 하니 번거롭기는 합니다."

한지의 매력에 푹 빠지다
 
작품 <회귀-월인천강지곡 1>
▲ 작품 <회귀-월인천강지곡 1> 
ⓒ 최정윤

- 왜 하필 한지인가요? 다른 재료도 많았을 텐데요.
"한지에는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어요. 어렸을 적 우리가 살던 한옥집의 창호지를 떠올려보세요. 창호지에 스미는 빛은 너무 밝지도 않고 직접적이지 않고 강렬하지도 않아요. 은은하고 잔잔하죠. 전 그것을 한지의 포용력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지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주하면 아무래도 한지의 고향이잖아요. 제가 전주사람이다보니 아무래도 한지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한 것 같아요. 제 작품에 쓰는 한지도 모두 전주에서 갖다 쓸 만큼요."

- 그래도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색깔이 생각만큼 화사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지공예나 한지에 그린 그림을 떠올리면 색감이 다 비슷비슷하게 여겨지는 까닭도 바로 이런 것이에요. 이 점은 염색공부를 더 해서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 이번 작품에는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 <청산별곡>과 같은 고전문학작품을 모티브로 사용하셨습니다. 왜 하필 한글일까요? 그것도 고어체를요.
"당연히 한국인이니까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요.(웃음) 전부터 한글의 모양새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분들 중에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해체하여 작업하시는 분도 더러 계십니다. 그런데 전 있는 그대로 한글의 모양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자음과 모음을 해체하는 것보다는 무슨 메시지나 내용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가 잘 담긴 고전문학을 떠올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 이번 전시회의 작품 앞에는 '회귀'라는 말이 붙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자연으로의 회귀입니다. 자연이라는 것은 있는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입니다. 제 그림을 보면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위안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이름붙였습니다."

- 전통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네. 전통문화는 다 좋아해요. 판소리, 한옥, 전통공예… 상여 나가는 소리 이런 것도 좋아합니다."

'나의 작품에 사용되는 닥펄프, 자연의 색채인 천연염료 등 모두가 인체에 무해하고 친환경적이다. 거기서 묻어나오는 자연스러움, 소박함, 안식은 나아가서는 복잡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우리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본다' -<작가노트> 중에서-
 
작품 <청산별곡>
▲ 작품 <청산별곡> 
ⓒ 최정윤
  
- 천연 염색은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재료는 어떤 것을 쓰시나요?
"천연 염색은 한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채예요. 화학물감이 흉내낼 수 없는 순수하고 천연스러운 느낌이 살아있거든요. 재료는 소목, 황벽, 치자, 쪽물, 울금, 쑥, 밤껍질, 양파 등 한약재료상이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요."

- 댁이 서울인데 전주까지 와서 전시회를 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그래도 전주가 제 고향이고 한지의 고향인 만큼 전주를 안고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정신적 뿌리는 전주를 향해있어요."

- 오랜만에 오셔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오랜만에 전주에 오신 소감은요?
"많이 변한 듯하면서도 이곳(전시회가 열린 전주의 구도심지역)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주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구요."

- 이 전시회가 끝난 뒤 뭘 하실 예정이신가요?
"10일부터 17일까지 분당에 있는 성남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길 예정입니다. 다음에는 영남지역에서도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파리나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니까요."

#한지돋을그림#최정윤#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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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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