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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
ⓒ 창비
이 시집은 도종환 시인이 1년간 E-mail로 시배달한 시들이다. 매주 한 편씩 네티즌들에게 띄운 시들이다. 목차는 일월에서 십이월까지 모두 12개로 분류하였다. 책뿐만이 아니라 CD로도 시를 감상할 수 있다.

책에는 시 전문을 싣고 엮은이의 감상을 덧붙였으며 시 안에서 인상적인 시구는 따로 추구(抽句)하여 한 번 더 읽게 한다.

'만남'을 이야기하는 시구 한 개.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시구 몇 개.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좋다"(이준관 '구부러진 길'),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자는'), "한겨울 홍매화 가지 어루만지던 당신 꽃만 피었다 갈뿐 열매 같은 건 맺을 생각도 않는다는데"(최영철 '홍매화 겨울나기')

조향미의 '온돌방'은 옛 기억을 찬찬히 되살려주는 것이 좋다. 시고랑 사이사이에서 만나게 되는 시행들, 이를테면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손으로 만질라치면 쩍쩍 소리 내던 '문고리', 불기운에 얼굴 얼얼하고 몸을 비틀어도 등을 돌려도 화끈거리기만 하던 '아궁이', 이미 체험한 것임에도 기억 속 어딘가에 분명 있는 것임에도 어느새 먼 기억들이다. 시는 그러고 보면 삶을 복원하고 삶이 재생되는 묘처(妙處)이다.

시에서 일상을 만나는 일은 특별한 만남이다. 이때의 만남은 남의 얘기 같지 않아 귀 기울여 듣게 되고 먼 얘기가 아니라 또 듣게 된다.

▲ 플래시 동영상의 한 장면 캡처.
ⓒ 창비
김명인의 '조이미용실'은 CD를 넣고 들어본다. 플래시 동영상으로 제작한 '보는 시'요 '듣는 시'다. 시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플래시 동영상은 '시적 상황의 연출'이라거나 '시극(詩劇)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용실의 회전등 불빛이 돌아가고 늦은 귀갓길 한 사내가 거뭇거뭇 걸어가고 있다. 주인은 느릿느릿 비질을 하고 시적 상상은 상황을 유추하여 거룻배를 젓고 있는 미용실 주인을 보여준다. 그녀는 파고를 머릿결삼아 빗질하고 빗질하듯 삶을 노 저어간다. 시는 시간의 하품을 보인다.

플래시가 연출하는 시적 상황은 시행을 선명하게 한다. "저 배는 변화무쌍한 유행을 머릿결로 타고 넘으며"는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또 미용실이 거룻배로 환치되는 과정은 시의 흐름을 저절로 감지하게 한다.

엮은이는 이 시에 '이웃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달아서 다음과 같이 감상하며 끝을 맺는다. "아날로그 여자. 혼자 노 젓는 늙은 뱃사공 같은 여자. 변화무쌍한 세상에 유행의 머릿결을 타고 넘으며 고단하게 인생을 저어가는 여자. 어느새 이웃이 되어 있는 여자. 그 여자 건재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 엮은이: 도종환 / 펴낸날: 2007년 5월 21일 / 펴낸곳: 창비 / 책값: 1만원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

도종환 엮음, 창비(2007)


태그:#도종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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