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진경은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와 사상의 변화'란 제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박정희 체제 이래 한국의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분할하고 결집시키던 적대 구도는 이른바 '민주-반민주'의 대립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런 대립 구도는 87년 이후, 혹은 더 뒤로 잡아도 양 김씨의 집권 이후에는 유효성이 소실됐다"고 전제했다.
이진경은 현재 유효한 전선으로 '다수자-소수자'를 꼽고, 이같은 변화가 특히 노동계에서 두드러진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진경의 다수자 개념은 '많은 숫자'가 아니라 "정규적인 일자리를 갖고 높은 임금을 받아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등 확보한 이득이나 이권이 많은 주류(major) 노동자"이며, 소수자는 "낮은 임금, 불안정한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적인(minor)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그는 "이같은 분할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 운동 자체도 경제적 양극화의 선을 따라 분할되며 양극화되고 있다"면서 "이와 같은 다수자-소수자 대립이 점점 더 많은 영역으로 확대되고 그 대립 양상 역시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같은 대립이 현재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주요 모순으로 자리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진경은 노무현의 아이러니를 "집권 기간 내내 진보적이라고 할 만한 어떤 개혁도 이뤄낸 것이 없으면서도 자신을 '진보'라고 믿는 것,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진보적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실제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유효하게 실행된 정책은 모두 진보진영에 반하는 '보수적' 정책 일색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새만금이나 천성산 문제를 뒤집은 것", "국가보안법처럼 거의 다 죽은 악법조차 의회에 과반수를 갖고서도 폐지하지 못한 것", "스스로 공언하던 아파트 원가 공개 포기",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이라크 파병", "한미FTA를 미친 '곤조'로 밀어붙임으로써, 보수 언론이나 보수 정치인으로부터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 받은 것" 등을 이진경은 보수적 정책의 예로 들었다.
그리고 이진경은 "노무현 자신이 선택한 정책이 그렇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진보라고 믿는 이유는, 노무현이 서 있는 곳이 예전과 같은 곳 그대로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독재정권과 투쟁하던 민주진영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싸우던 곳에 그대로 서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노무현이 민주 진영 사람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을 만큼 훌륭한 일원이었음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무엇보다도 노무현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해도(그게 사실인지도 지금은 의문이지만) 사회적 대결의 양상을 규정하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전선이 이동해버렸다는 것"이라며 "양김씨 주변에 있었기에 자동으로 '반독재' 진영에 속했던 사람들 또는 과거 운동권에 속했던 사람들이 보수파가 된 경우가 얼마나 많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이진경은 이같은 분석은 노무현 정권뿐 아니라 대기업 노조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뭔가 의도적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믿는 대기업 노조"를 예로 들고 "한국통신 노조처럼 민주 노동운동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소수자들의 적대세력이 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진경은 "여기서 정말 웃기는 코미디는 전선이 이동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어도 보수파가 될 일군의 사람들이 이제는 진보를 그만두고 보수가 되겠다고 전선 저편 멀리 훌쩍 이동한 것"이라며 "그들은 자신을 '뉴라이트'라고 믿지만, 사실은 '올드 라이트'가 서 있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진경은 "그렇다고 진보적이 되기 위해 '소수자'를 선택하는 것 역시 너무 쉽게 대답을 구하는 것이며, '진보적인 노동운동' 또는 '다수자에 대한 소수자의 투쟁 방법' 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6월 민주항쟁 20년을 기념하여 지난 4월 26일부터 시작한 상상변주곡 대토론회 일정은 이날 토론회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상상변주곡' 대토론회는 문화단체 '풀로엮은집'이 공동 기획 및 진행을 맡았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6월민주항쟁2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