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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전사자들의 이름이 5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겨우 전쟁기념관에 새겨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예우에 분노하며 인터넷 자료를 참고해 당시를 재구성하는 기사를 써보았습니다. <기자 주> <편집자주>
내 이름은 한상국, 5년 전 이맘 때 전사한 대한민국 해군 중사다. 그때는 월드컵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이었다. 태극전사들의 연이은 승전보에 나라가 뒤집어졌으며 시합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들도 응원에 동참했다. 미선이와 효순이라는 어린 여학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죽은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지만 그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2함대 사령부의 출격명령이 떨어진 것은 죽기 전날 저녁이었다. 꽃게잡이 어선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에 의해 고속정 함대가 꼭두새벽에 출격했다. 함대는 2척으로 편성된 3개 편대를 합친 6척으로 구성되었다. 256편대는 참수리 327과 365였고 253편대는 참수리 328과 369였다. 내가 속한 참수리 357은 참수리 358과 함께 232편대였다. 우리 편대장은 358의 김찬 소령, 357의 지휘관은 윤영하 대위였다.

"놈들이 왜 NLL을 인정하지 않는지 알고 있나?"

쌍안경으로 바다를 주시하던 정장 윤영하 대위가 말하자 옆에 있던 부관 이희완 중위가 빙긋 웃었다. 북한에게 서해는 생명선이었다. 유사시에 우리가 서해를 차단하면 해상교통로가 막히게 되어 큰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에 북방한계선 NLL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북한 해군이 잊을 만하면 도발을 감행하는 것도 그런 절박한 이유에서였다. 8년 전에 벌어졌던 연평해전 이전에도 도발이 심각한 사태로 발전했던 사례가 드물지 않은 만큼, 오늘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철저히 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이 중위가 경례를 붙이며 나갔다. 24명의 장병들은 이미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40mm 기관포와 20mm 발칸은 물론, 기관총과 소총까지 탄창이 결합된 상태였다. 안전장치를 해제하면 즉시 불을 뿜을 수 있었지만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이럴 때마다 해군이 된 것을 후회하곤 했었다.

"불길해......"

꿈이 너무나 생생했다. 꿈에 나는 아기가 되어 엄마 품에 안겼다. 칭얼거리며 젖을 빠는데 젖꼭지에서 나오는 것은 시뻘건 피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깬 다음 다시 잠들지 못했다. 오늘따라 기계실에서 들리는 소음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이미 2년 이상을 들어와 친숙하기까지 한 엔진소음이 마치 고막에 송곳을 쑤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이를 악물고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낸 다음 조타장치를 감시했다. 작전해역에 접근하자 점점이 떠 있는 어선들이 보였다. 어선들은 더 많은 수확을 올리기 위해 NLL을 넘기 일쑤였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러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번에도 몇 척의 어선들이 NLL에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정지하라!"

윤영하 대위가 경고했다. 그러나 그들은 늘 그렇듯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급히 그쪽으로 키를 돌리는 순간 적함이 출현했다. 이미 레이더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적함이 나타나자 심장이 덜컥이며 멎는 것만 같았다. 두 척의 적함이 똑바로 NLL을 향했다. 함대는 급박하게 무전이 오갔고 상황을 묻는 사령부의 통신이 빗발쳤다. 마침내 적함이 NLL을 넘고야 말았다. 마른 모래를 삼킨 것처럼 입이 바짝 말랐으며 조타장치를 제어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생소하고 두려웠다.

"우리 편대는 저 놈을 맡는다!"

편대장 김찬 소령의 명령에 357과 358이 급격하게 기동했다. 253 편대는 먼저 남하한 388을 가로막았고 우리 232 편대는 북한해군 8전대의 경비함 684를 맡았다. 256편대는 상황에 따라 양쪽을 지원할 임무가 부여되었다. 빠르게 내닫는 고속정들의 뒤에는 칼로 그은 것 같은 흔적이 남겨졌다. 우리의 기세에 질린 듯 388은 곧 되돌아갔지만 684는 거침없이 남하했다. 연평해전에 참가했다가 무참하게 깨졌던 684는 무모할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공포에 질린 어선들이 황급히 돌아섰다.

"이미 3마일이나 남하했습니다!"

이희완 중위가 외치자마자 684와 맞닥뜨렸다. 이쪽으로 포신을 겨눈 684에게서는 적의와 증오가 짙게 풍겼다. 포신을 겨눈 것은 칼을 뽑아든 것과 진배가 없었다. 그것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적대행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였다. 당장 선제공격을 가해도 시원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은 우리의 영해를 침범했으니 즉시 돌아가라"는 경고방송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영해를 침범하고 최고수준의 위협을 가하는 적을 응징하는 것은 나라를 지키는 군대로서 너무나 당연한 주권의 행사인데도 여기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높으신 분들께서 적이 어떻게 도발해도 절대 먼저 사격을 가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 결과였다.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 발포하자 마라!"

윤영하 대위는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외쳤다. 저마다의 무기를 잡고 있는 장병들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적의 포신이 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쏘지 못하는 분함과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반복한다! 당신들은 NLL을 침범했으니 속히 돌아가라! 다시 반복......"

357이 경고방송을 반복하며 684와 엇갈려 나가는데 불길한 것이 번득였다. 40mm 포를 담당하던 황찬규 중사가 반사적으로 포신을 돌리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강타했다. 85mm 철갑탄에 강타당한 357의 좌현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그곳은 바로 내가 근무하는 조타실이었다. 온몸에 불이 붙어 절규하는 병사들의 발에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팔다리가 채였다. 비명과 붉은 피로 그득 찬 조타실은 생지옥이었다. 본능적으로 조타장치를 꽉 잡은 나의 가슴에서도 피가 솟구쳤다. 언뜻 내려다보자 석류처럼 쫙 벌어진 상처 안에서 시뻘건 폐가 불룩거렸다. 그쪽으로 바람이 새어드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입과 코에 피거품이 꾸역거렸다.

"응사해!"

윤영하 대위가 주먹을 휘두르며 외치는 순간,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함교 지휘부에 적중한 포탄은 거기 있던 장병들을 휩쓸어버렸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응사하기 시작했다. 40mm 기관포, 20mm 발칸포, M60 기관총, K2 소총을 가리지 않고 모든 화력을 퍼부었다. 그러나 684는 잔인할 정도로 냉혹했다. 최정예로 구성된 684의 포병들은 또 다시 명중탄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기관실이었다. 동력을 공급하는 배전반이 파괴되자 기관포와 발칸포가 정지했다. 황찬규 중사와 조천형 중사가 자신들의 포를 수동으로 전환하여 사격했다.

'아, 안돼....'

나는 필사적으로 조타기를 조작했다. 어떻게든 적과 떨어져야 했지만 357은 홀린 것처럼 그 자리를 맴돌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조타장치가 파괴되어 어쩔 수 없었다. 조타를 수동으로 전환하여 돌리려 해도 전혀 힘이 모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서 있는 것조차도 힘에 겨웠다. 가슴의 상처에서 피와 생명이 함께 뿜어지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나의 육체는 자신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잠시 후 나는 질척이는 피구덩이에 누웠다. 피거품을 내뱉으며 억지로 숨을 쉴 때마다 공기가 목에 걸리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더니 나는 국외자가 될 수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침착하게 싸워라!"

이희완 중위가 외쳤다. 죽어가는 윤영하 대위를 대신해 지휘하는 이희완 중위는 양 무릎 아래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이 중위가 용맹하게 지휘했지만 용맹만으로는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지휘부와 조타능력을 상실하고 동력마저 파괴된 357은 좋은 표적이었다. 수동으로 응사하던 포탑이 차례로 날아가고 그 안에 있던 장병들이 갈갈이 찢겼다.

그러나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정길 중사는 쓰러진 황찬규 중사를 감싸 안고 싸웠고 M60 사수 박진성 하사가 쓰러지자 기술병 박경수 하사가 대신 기관총을 난사했다. 누군가가 쓰러지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웠고 무기가 없는 장병들은 쓰러진 전우를 몸으로 감쌌다. 실로 무서운 투혼과 전우애였다.

권지현 상병은 단연 발군이었다. 파편을 맞은 왼손이 날아가다시피 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싸웠다. 오른손으로 K2 소총을 난사하며 계속 탄창을 갈아대던 권 상병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 전우들과 함께 근무한 것을 언제나 기쁘게 생각했다.

"이런 개새끼들!"

마침내 358이 달려왔다. 편대장 김찬 소령은 즉각 응징할 것을 명령했다. 358의 모든 화력이 684로 쏟아졌다. 수동조작의 684는 컴퓨터가 통제하는 358을 당해낼 수 없었다. 순식간에 적군들이 폭풍 맞은 개미떼처럼 날아가고 포탑이 침묵했다. 다급해진 684는 357의 뒤로 돌아갔다. 357을 방패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그것을 허락할 358이 아니었다. 684를 따라잡은 358이 무차별로 난타했다. 살아남은 357의 장병들도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총탄을 퍼부었다. 견디지 못한 684가 연기를 뿜으며 달아났다. 포탑을 잃고 3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낸 684는 거의 빈사지경이었다. 684와 함께 도발했던 388이 달려와 684를 예인하려 했다. 사방에서 참수리가 몰려왔고 공군 전투기가 출격했다.

"357의 복수를 하겠다! 즉시 명령을 내려라!"

참수리와 전투기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먼저 도발하고 357을 기습하여 전우들을 죽인 원수가 무사히 돌아가게 놔둘 수 없었다.

"왜 공격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겁니까?"

전우를 잃은 장병들의 눈에 살벌한 핏발이 섰다. 무기를 움켜잡은 그들의 손이 신 내린 무당처럼 덜덜 떨렸다. 그러나 끝내 공격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388에 끌려 무사히 돌아가는 684를 본 장병들이 갑판을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원통하게도 357을 포기해야만 했다. 전우들이 배를 맞대고 건너와 생존자를 구출하고 시신을 수습했다. 머리가 날아가고 내장이 터져 나온 전우들이 발견될 때마다 그들은 무섭게 분노했다.

상황을 수습한 다음 그리 오래지 않아 마침내 357은 바다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나도 함께 바다로 내려갔다. 왜 내가 357에 남겨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신을 수습하러 온 전우들에게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에게 나의 목소리는 흔해 빠진 바람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원귀가 되어버린 것은 함께 죽었던 전우들이 찾아온 다음이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우리가 어떤 대우를 받게 되었는지 알게 된 나는 피를 토하여 절규했다. 우리의 장례식에 높으신 분들이 아무도 찾지 않은 것은 패배의 대가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나의 아내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목숨 값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분노로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아내가 조국을 떠난 것은 지극히 올바른 결정이었다.

군인으로서 가장 명예로운 전사가 개죽음이 되고 마는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침범한 적을 공격하지도 못하게 해 놓고는, 그래서 젊은 우리들을 떼죽음시켜놓고는 선심 쓰듯 몇 푼 던져주는 그들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우리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킨 조국은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코 군인이 되어 목숨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바다 아래를 떠돌았다. 해류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다시 357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나중에 357이 인양되었어도 나는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전우들이 건져내 화장한 것은 바닷물에 불고 썩어버린 육체일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조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야 멸망할 때 조금도 슬프지 않을 테니까.

태그:#서해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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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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