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학교 공동체가 '성년식'이나 기타의 기회에 학생/교사/학부모 등 모든 구성원이 집중명상을 하는 것에 대해 제 나름대로 그 의의와 취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이는 제게 벅찬 시도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제 짧은 식견과 얕은 수련이 마리학교의 집중명상수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봐 염려합니다. 이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어떤 스승은 말했습니다. '명상과 수련 없이는 의식의 근본적인 향상은 없다'고요. 명상을 통해 도달하는 지점이 뭘까요? 추구하는 바는 또 무엇일까요? 어린 중학생에게 그것도 어렵기로 소문난 간화선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마리학교가 추구하는 '밝은사람'은 전통 선가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온 '밝달'이라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맥이 끊어져 산 속에만 있던 선도가 세상에 처음 나왔다고 일컬어지는 국선도의 창시자 청산선사는 우리 한민족을 '밝달인'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밝음의 상태'로 가는 것이 명상과 수련이라고 봅니다. 어떤 지식과 논리로도 도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여기에는 여러 방편들이 있습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라는 동학의 주문수련은 기독교의 통성기도나 인도의 만트라와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염불선 이라고 합니다. 만트라를 통해 몸의 경혈들이 경락을 통해 다 이어지면서 차크라가 열려 최고의 상태로 되는 수련입니다.
부처께서 직접 하셨다는 위빠싸나 수행법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쉬워서 최근에 많이 보급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법입니다.
이번에 장계분교에서 한 수련은 간화선입니다. 첫날은 제가 '자기 알아채기'와 '느낌 나누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련장은 물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깊고 내밀한 소통을 이루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간화선을 했는데 말 그대로 화두풀기입니다.
제가 해 본 바로는 이 모든 수행들은 결국 가 닿는 곳이 같습니다.
청정한 자기 본성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청정한 자기 본성자리'라는 것은 스승님들에 따라 표현하는 바가 다 다릅니다. 용어에 매이지 마시고 그냥 직관으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존재의 근원자리'라고도 합니다. 동학에서는 '성품자리'라고 하더군요. 숭산스님의 제자 현각스님은 '선의 나침반'에서 참선을 통해서 지혜의 배가 방향을 잃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본성자리는 곧 지혜의자리입니다. 하늘기운과 맞닿는 곳입니다. 한없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모든 지혜의 원천이 되는 자리입니다.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을 가진 오감체로서의 인간이 갖는 격렬하고 역동적인 삶의 연속들이 멈추는 자리입니다. 상상이 되시는지요? 생각과 판단이 멈추는 자리. 반야심경에서 말하듯이 더럽고 깨끗하고,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으며 있고 없고가 없는 자리.
그 자리에 가 닿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은 아주 대단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을 파도처럼 거치면서 오열이 터지기도 하고 회한에 떠밀려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주로 그렇고 아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쌓인 업장이 옅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성품자리는 세상 모든 존재들이 나와 하나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미움도 경쟁도 원한도 욕망도 투명한 빛으로 변하고 아무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되고 무심하되 무관심하지 않게 사물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을 표본삼아 말씀 드리자면 짜증이나 체념, 또는 두려움이나 불안 없이 자기 할 일을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찾아 해 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때 몸에 일어나는 큰 변화는 모든 경락들이 열리고 하늘기운을 받아들여 하늘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병이 낫는다거나 깃털처럼 가벼워진다거나 하는 신비체험도 하게 됩니다. 저는 위빠싸나나 염불선, 일종의 고행, 그리고 간화선 두 차례를 통해 그런 상태를 다 접해 봤습니다.
사실 이 본성자리는 우리 인류가 물질생활과 경쟁생활을 하면서 탐 진 치에 빠져서 잃어버리게 된 것인데 우리 본래의 성품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를 회복한다는 것은 삶의 근원이 되는 지혜를 얻는 것이지요. 우리 마리학교가 이런 수련을 하는 것을 성년이 되는 조건으로 삼는 것은 이 지혜 위에서 세상의 현실적 삶을 꾸려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게 아무나 쉽게 가능하냐고 반문해 볼 수 있습니다. 제 대답은 단 한 가지입니다. 아무나 쉽게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안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제 경험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나 한 만큼 다 된다고요.
물질존재로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이 물질 너머의 세계. 진정한 존재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체험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아주 고귀하게 만듭니다. 이번에 아라 학생과 하은이 학생이 제게 슬며시 다가와 이런 수련을 왜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앞으로 진학이나 연애나 공부 등 삶의 여러 대목에서 만나는 모든 판단과 결정들을 즐겁고 당당하게 해내게 하는 보약을 먹는 거라고 말입니다. 어느 학생이 왜 간화선이냐고 했습니다. 간화선이 그렇게 하는 것이냐고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말로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여 바로 그런 의문덩어리를 붙들고 늘어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너무너무 답답하다고 하기에 단지 그 답답함 한 가지에 집중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간화선은 바로 그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덩어리('의단'이라고 합니다)를 가슴이 답답해 터질 때까지 키워 가는 것입니다. 의문덩어리가 송두리째 뽑혀날 때 온전한 수용과 이해와 감사와 헌신의 삶이 열려집니다.
우리의 중학생 나이에 어려운 공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런 공부를 해 보지 않아서입니다. 우리 옛 선인들에게 인수분해 하라고 하고 영어 하라고 하면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생소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면 한 만큼 익숙해지고 쉬워지는 것은 자명한 진리입니다.
산사 선방에서 하는 간화선이 아니라 마리학교 구성원들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하는 공부여서 훨씬 생동감 있는 공부가 된다고 봅니다. 이번에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불쑥불쑥 화두에 다가가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공부를 해 본다는 경험만으로도 앞으로의 인생에 '밝음'한 덩어리가 굴러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마리학교 누리집(www.mari.or.kr) 회원게시판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