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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밤10시 57분. 한강에 누군가 투신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곧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이 밤중에 도대체 무슨 가슴 퍽퍽한 사연이 있어 자살을 할까'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출동 차에 몸을 실었다.

늦은 밤 사고 현장으로 가다

▲ 탐색활동을 하고있는 일부 대원들
ⓒ 권영민
서울 영등포 소방서에서 진압팀장을 맡고 있는 나는 신고자에게 보다 자세한 정황을 알아보도록 무전으로 지시하고 양화대교로 달렸다. 최초 신고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두 번째 신고가 왔다고 한다. 신고자로 하여금 가능한 현장에 남아 줄 것을 당부하도록 했다. 구급대와 구조대, 지휘대 등 3개대 15명이 현장으로 향했다.

사고 현장은 양화대교 북단에서 남단 방향 중간 지점. 다리 아래서는 벌써 수난구조대가 도착해 탐색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신고자가 현장에 있어 초기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늦은 밤에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강에 투신한 경우, 무엇보다 투신한 위치가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넓은 강에서 탐색 범위를 좁힐 수 있고, 그 만큼 구조 가능성이 높다. 최소 5분 이내에 구조하지 못하면 생명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수난구조다.

신고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투신 지점 범위에 대해 개략적으로 구조대에 알렸다. 신고자는 "남자친구와 함께 다리 위를 산책하다 우연히 다리 난간 사이를 보는 순간 뭔가 수면 위에서 허우적댔다"면서 "예감이 이상해 자세히 살펴보았고, 분명히 사람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신고자는 "119 신고를 하는 사이 빠진 사람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투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강을 보다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도록 다리 난간을 원형 베란다처럼 넓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같은 장소에서 누구는 도도히 흐르는 강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세상 이치의 부당함을 탓하며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신고자가 지적해 준 위치에서 탐색 활동을 지속하도록 벌였다.

시간은 점점 흘러 어느새 5분을 넘기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칠흑 같은 어둠에 수중 시야 상태도 좋지 않았다. 조마조마한 심정을 가다듬는 사이, 잠시 후 물 속에서 투신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노트가 발견되었다는 무전 보고가 들려온다.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노트 내용으로 보아 고등학생인 것 같다는 보고였다. 그런데 이름까지는 알 수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학교명은 나와 있지 않다고 했다.

한강에 투신한 17세 학생

▲ 구조장면
ⓒ 권영민
그로부터 다시 15분이라는 시간이 경과했다. 구조한다 해도 생명은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 생명을 구하는 입장에서 이때가 가장 안타깝고 난감하다. 살아 있는 생명을 구하는 보람과 죽은 시신을 건져 올리는 참담함의 차이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수면 위로 갑자기 수중 전등 빛이 올라왔다. 그리고 세 사람이 한꺼번에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구조완료'라는 무선 보고가 들려오고 나서도 꽤나 시간이 지체됐다. 안타까웠다.

나는 대원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를 하도록 지시했다. 선유도 앞 선착장에 대기 중인 구급대로 하여금 물에 빠진 사람을 맞이할 준비와 함께 이송까지 보다 세심한 응급처치를 당부했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이송 중인 구급대원의 무선 내용이 호흡·의식·맥박 없음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나이 17살, 고등학교 2학년이란다.

노트에는 "부모님 먼저 가게 되어 죄송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살아갈 용기를 잃으면 죽을 용기가 그만큼 생기는 것일까? 내 자신도 소방관으로 근무한 24년 동안 위기와 절체절명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어왔다. 하지만 이제 17살 어린 학생이, 그것도 한밤중에 다리 난간에서 17m 아래 검은 강물로 뛰어 내렸다니…. 다리 위에서 구조의 전 과정을 지켜보는 내 자신은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을 17세의 어린 학생이 감행했으니.

추후 그 학생이 중학교 때부터 얼굴에 생긴 여드름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한강에 투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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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하고 서울소방학교 부설 소방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 주로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과거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방전술론' '화재예방론' '화재조사론' 등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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