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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과 생면을 넘치도록 넣고 끓여먹는 모리국수, 구룡포 향토음식이다.
해물과 생면을 넘치도록 넣고 끓여먹는 모리국수, 구룡포 향토음식이다. ⓒ 맛객
영일 군수 할래? 구룡포 수협장 할래? 물으면 거개가 수협장 하겠다는 시절이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그물을 들어 올리듯 어업량이 넘치던 시절 이야기다. 천하의 '대게'도 걸리면 그물 망가진다고 해서 발로 밟아 바다에 버렸다고 하니 지천에 널린 게 물고기란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청어가 감당 못할 정도로 많이 잡혀 여기저기 걸어놓았는데 이것이 과메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수산물이 대풍이었다. 그러니 일찌감치 번성할 수밖에 없었고 일제시대에 벌써 인천과 함께 읍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이 천혜의 수산자원을 거두기 위해 수많은 어선들이 바닷길을 냈을 것이다.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들어오는 어선은 사람과 돈을 구룡포로 모이게 했을 테지만 누구보다 힘들었을 선원들이 딴 열매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만선의 깃발을 올렸을까? 어쩌면 삶의 몸부림으로 그리 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몸부림은 선창가 선술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이기에 안식처일수도 있겠다. 독한 술로 지친 몸과 외로움을 달랬을 터. 그렇게 삶도 휴식도 원초적으로 살았을 그들에게 만선의 깃발 따위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미래의 꿈보다 당장 내일 아침 속 풀어 줄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 더 절박했으리라. 그런 그들이 오래전부터 즐겼던 음식이 있다. 큰 냄비에 해산물과 국수를 넘치도록 듬뿍 넣고 팔팔 끓이면 된다. 걸쭉한 국물에 속도 풀고 해산물과 국수로 요기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뱃사람과 안성맞춤인 음식이 어디 있었겠는가? 구룡포 사람들은 이 음식을 '모리국수'라 불렀다.

모리국수는 전통음식?

모리국수 5인분 25,000원. 냄비의 깊이를 보시라. 보기에도 든든한 양이다
모리국수 5인분 25,000원. 냄비의 깊이를 보시라. 보기에도 든든한 양이다 ⓒ 맛객
모리국수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경상도 방언 중에 모디라(모이라)가 있다. 국수에 여러 가시 해물이 모디었다 해서 모디국수였다가 발음상 모리국수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의견이다. 또 처음 모리국수를 접한 사람들이 이 음식이름을 묻자 "내도 모린다"라고 해서 모리국수라고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근거로는 일본식 표기를 들기도 한다. 보통보다 많이 담는다는 뜻으로 모리(もり)가 있는데 이 뜻대로 한다면 모리국수는 보통보다 많은 양의 국수가 된다. 실제로 셋이 가서 2인분 시켜도 3인분 이상의 양이 나오는걸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또 구룡포는 신사가 지어질 정도로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의 근거지였다. 어느 지역보다 일본어가 흔하게 쓰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구룡포에는 일제시대 목조건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구룡포에는 일제시대 목조건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 맛객
만약 모리국수의 어원이 일본식 표기에서 왔다면 모리국수의 역사도 그만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일제시대부터 먹기 시작했다면 어림잡아도 70~80년은 된 음식이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보면 부대찌개와 아귀찜 중에 어떤 게 더 우리 전통음식에 가깝냐고 묻는다. 부대찌개는 만들어진지 반세기가 넘었고 아귀찜은 30~40년밖에 안되었으니 부대찌개가 더 전통음식이라는 해석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모리국수는 구룡포 향토음식이자 전통음식이라 불러도 손색없지 않을까.

모리국수를 팔고 있는 까꾸네. 간판은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편할대로 부를 뿐이다
모리국수를 팔고 있는 까꾸네. 간판은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편할대로 부를 뿐이다 ⓒ 맛객
그런데 구룡포 어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모리국수도 겨우 두 집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외지인에게 많이 알려진 '꿀꿀이식당'과 현지인들이 찾는 비밀식당 '까꾸네'가 마지막남은 집이다. 구룡포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꿀꿀이식당을 염두에 뒀으나 현지인의 안내로 까꾸네로 갔다. 까꾸네는 이 집의 딸이 어렸을 때 하도 귀여워 까꿍~ 부르는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간판이 있을 리도 없고 모르는 사람은 이 집에서 모리국수를 만들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비밀식당이라고 했다.

막걸리를 주문하자 아무런 조미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명태포가 나온다. 고추장에 찍어먹는 이 맛이 또 별미더라
막걸리를 주문하자 아무런 조미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명태포가 나온다. 고추장에 찍어먹는 이 맛이 또 별미더라 ⓒ 맛객
앞서 설명한대로 푸짐하긴 푸짐하나보다. 아주머니께서 알아서 인원수보다 적게 주문하라고 한다. 1인분에 5000원 하지만 세 사람 오면 2인분, 네 사람 오면 3인분만 주문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배부른 사람 셋이 가서 아귀찜 작은 걸 주무하면 양이 작을 거라며 걱정해주는 집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6인)는 그날 푸짐하게 먹으면서 막걸리를 세 주전자나 비웠는데 나온 금액이 3만4000원이다. 저렴하긴 하다. 예전에는 해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에 대게도 들어갔고 했는데 요즘엔 아귀와 미역초(바다메기)가 주로 들어간다. 모리국수는 여럿이 다함께 먹는 음식이다.

모리국수는 국수공장과 풍부한 해산물이 있는 구룡포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음식이다
모리국수는 국수공장과 풍부한 해산물이 있는 구룡포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음식이다 ⓒ 맛객
내륙에 민물고기를 이용한 어죽과 미꾸라지털레기탕이 있다면 구룡포에는 해산물을 이용한 모리국수가 있다
내륙에 민물고기를 이용한 어죽과 미꾸라지털레기탕이 있다면 구룡포에는 해산물을 이용한 모리국수가 있다 ⓒ 맛객
누가 그릇에 담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젓가락 들고 달려들어 쟁탈전 벌이듯 왁자하게 먹어야 제맛이다. 국물 좀 흘린다고 타박할 사람도 없다. 음식 자체가 그렇게 먹지 않고 깔끔 떨면서 먹는다면 맛이 나지 않은 걸 어떡하랴. 국수도 먹고 생선도 먹고 국물도 마시고 그러다 보면 기분 좋게 배가 불러온다. 그 옛날의 뱃사람처럼 속도 풀리고 요기까지 되고나면 더 이상 몇 시간 동안은 다른 음식이 생각나지 않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업소 정보는 블로그 http://blog.daum.net/cartoonist/10401486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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