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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민의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사진아카이브연구소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기생의 이미지가 일제에 의해 교묘히 왜곡되고 강제된 근대의 산물임을 사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추적해나간다.

식민지 근대에서 타자로서의 '기생만들기'는 우선 위생담론 속에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기생은 창기와 함께 불결하고 질병과 도덕적 타락을 야기하는 대상으로, 또한 정상 여성을 위협하는 비정상으로 규정되었다.

'조선미인보감'은 위생경찰체제의 확립과 의료위생행정의 집행과정에서 결과된, 기생에 대한 감시 및 억압용 사진아카이브였던 것이다. 이는 기생이 의료위생적 감시망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조선의 모든 여성들이 근대의료체계의 잠재적 규율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책 74쪽)

일제는 기생에 대한 규율권력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 '특수한' 기생과 그 문화를 '일반적' 또는 '보편적' 조선인과 조선의 풍속으로 각인시키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사진엽서 속에 기생이미지를 담아 '기생을 조선 여성의 대표 이미지로 표상화하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또 사진엽서에 재현된 조선의 풍속은 미분화된 조선 사회와 그 풍속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봉건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표상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풍속 중 타자성을 강조하는 이미지만을 선택해서 보여주고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모습은 배제하거나 왜곡하였다.

(일제가) 이렇게 표상함으로써 얻고자 한 효과는 조선의 전통문화예술을 기생문화(물론 이때의 문화란 일제가 이식시킨 매춘문화를 말한다) 하나로 축소하고 나머지는 근대적 오락·유흥(활동사진, 극장, 요정 등)으로 대체함으로써 조선의 전통적 가치체계와 그 문화의 맥을 끊는 것이다(이것은 조선총독부가 일본인 어용학자를 통해 풍속조사를 실시한 목적이기도 하다). (책 117쪽)

이러한 표상조작을 위해 일제는 기생을 의도적으로 대중화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박람회장이었다. 박람회의 공식포스터에 기생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사용되며 전시장 안에는 등신대의 기생사진이 전시된다. 또 기생은 행사장의 이벤트를 채우는 엔터테이너로 동원되며 연예관의 공연에 동원된다.

서구식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인종적·문화적 '차별두기'에 궁색했던 일제가 발견한 대상이 기생이었다. 한번 발견된 기생은 '예단일백인'(매일신보), '조선미인보감'(사진첩), '조선풍속'(사진엽서), '풍속조사'(보고서) 등 다양한 시각적 표상공간을 통해 유포되면서 확대·재생산되어갔다. 특히 박람회는 어떤 표상공간보다도 강력한 재현효과를 낳았으며, 공진회에서 연출된 기생이미지의 효과는 '기생'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조선여성', 나아가 '식민지 조선 전체'로 이어지는 표상의 연쇄들을 만들어냈다. (책 158쪽)

'기생'은 일제에 의해 재현되면서 반복적, 지속적으로 왜곡되었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생'은 성적 대상, 수동적 대상으로 표상조작 되었으며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는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수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하나의 클리셰가 된 기생의 표상을 지우고 그에 대한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이라고. 기생이미지를 감싸고 있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의 감옥을 넘어서 생산적이고 주체적인 기생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하여 다시 묻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덧붙이는 글 | * 글: 이경민 / 사진: 중앙대DCRC / 펴낸날: 2005년 2월 5일 / 펴낸곳: 사진아카이브연구소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근대 기생의 탄생과 표상공간

이경민 글, 중앙대DCRC 사진, 아카이브북스(2005)


태그:#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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