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화안공주를 신라로 보낸 남부여는 이로 인해 신라의 경계가 한층 약화되자 이를 노리고 대반격을 노렸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떠한가?”
갑주를 차려입은 남부여의 왕은 여섯 좌평과 더불어 높은 단 위에 올라 대장군 가량을 맞이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모두가 신라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으며 어떤 적을 맞이하더라도 일거에 해치울 기세이옵니다.”
왕은 고개를 끄떡이며 가량의 노고를 치하했다. 남부여군의 전력은 왕을 보좌하는 최정예근위기병 3천에 창과 활로 무장한 남부여의 정예병 2만 3천, 갑옷으로 말과 사람을 휘감은 가야의 기병 1천, 바다건너 왜(倭)에서 징집해온 칼 잘 쓰는 왜병 3천으로서 도합 3만의 병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라가 우리의 북쪽을 짓누르고 있는 병력은 각 산성에 흩어진 병사들을 끌어다 모아도 기껏해야 1만도 채 되지 않는다. 서라벌에서 구원병이 오기 전에 재빨리 공격하여 고구려에게 잃었던 고토(古土)를 회복하면 사방이 막히고 앞뒤가 곤궁해진 신라는 저절로 우리에게 손을 벌려 화해를 청해올 것이다.”
여섯 명의 좌평들이 일제히 몸을 숙여 왕의 말에 뜻을 합하였다.
“저희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 대업을 위해 난 신라에 딸을 보내었고 내신좌평은 아들을 보내었다. 그런 굴욕을 감내한 것도 다 이날을 위해서였다.”
왕의 말에 고슬여는 저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옴을 느꼈다.
“대장군 가량!”
“넵!”
“장군은 태자를 보좌해 앞으로 나서 우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신라의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가 이끄는 병력을 철저히 짓밟으시오!”
“반드시 적을 무찔러 폐하의 은덕에 보답 하겠나이다!”
가량은 남부여의 태자 여창과 더불어 정예병 3천과 더불어 가야 연합군과 왜병을 앞세우고 진격해 나아갔다. 관산성을 중심으로 6개의 산성을 총괄하고 있던 신라 각간 우덕은 남부여의 기습에 크게 당황하며 서라벌로 파발을 보내 구원을 청하는 한편 남부여군에 맞서 싸울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산성에 있는 병사들에게 각기 엄중히 지키라고 하면 구원병이 올 때까지는 능히 견딜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우덕의 말에 이찬 탐지는 한숨을 쉬었다.
“그건 적의 병세가 어느 정도일 때나 가당한 말입니다. 얼마 되지 않은 병력을 쪼개어 여러 산성에 나누어 넣은들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각기 고립되었다가 남부여군의 손에 곧 떨어져 나가 버릴 겁니다. 그렇기에 제 생각은 이러하옵니다. 혹시 적이 길을 둘러올지도 모르니 양곡과 무기가 많이 쌓여있는 관산성에 3천의 병력을 두어 지키게 합니다. 다른 산성은 포기한 채 나머지 병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적의 선봉을 쳐서 일단 기세를 꺾고, 적의 본대가 다다르면 관산성이나 다른 산성으로 물러서서 지킨다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탐지의 말에 따라 신라군은 둘로 나뉘었고, 우덕과 탐지가 이끄는 신라군은 경계를 넘어선 남부여 태자 여창과 대장군 가량이 이끄는 남부여의 선봉과 맞부딪히게 되었다.
“적은 어디까지 다다라 있는가?”
태자 여창이 은색 갑주와 투구를 쓰고 말위에 올라 당당한 목소리로 바삐 달려오는 전령에게 보고를 재촉했다.
“아뢰옵니다! 신라군이 각 산성의 병력을 모아 함산성 앞에 진을 치고 있다 합니다! 깃발로 보아 그 수는 오천가량입니다. 기병의 수는 적으며 깃발이 어수선한 걸로 보아 아직 진자가 정돈이 되지 않은 듯 합니다.”
세작의 보고로 이미 주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가량이 자신만만하게 여창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주둔한 주력은 모조리 긁어모았다는 얘기입니다. 나머지 병력은 분명 양곡과 무기가 있는 관산성에 주둔시켜 놓았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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