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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각 부처 기자실과 기사송고실을 통폐합한다고 한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단 이 방안은 언론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충남 당진의 <당진시대>라는 지역신문에서 10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그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당진군청에 설치된 기자실로 인해 여러 번 곤욕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취재선진화 방안'이 주는 느낌은 특히 남다르다.

▲ 당진군청 브리핑실. 창가에 소파와 탁자 등이 보인다.
ⓒ 유종준
음습한 밀실, 우여곡절 끝에 폐쇄됐지만

신문사에 입사했던 1998년 당시 처음 접한 당진군청 기자실은 그야말로 '음습한 밀실'이었다. 일부 지방일간지 기자들에 의해 배타적으로 공간이 점유됐고 이들에게는 칸막이와 잠금장치가 된 책상·책꽂이가 지급됐다. 이른바 지방일간지 기자단에 의해 기자실 운영이 결정됐고 당진군은 전담 직원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지방일간지 기자들은 그야말로 기자실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들은 기자실에 상주하며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개인업무도 봤다. 취재원인 담당공무원을 만나고자 할 때에는 해당부서를 직접 찾아가지 않고 기자실로 부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전담 직원에게 통장 입금 등의 개인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당진군청 기자실이 2002년 2월 폐쇄됐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관언유착의 상징으로 기자실이 논란을 빚었기 때문에 누가 보면 '언론개혁'을 위한 당진군의 조치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속사정이 있었다. 지방일간지 기자들끼리 내부 불협화음이 생기면서 기자단이 둘로 쪼개지자 자진해서 기자실 폐쇄를 요청한 것이다.

폐쇄된 기자실은 1년 반 이상 취재기자나 군청 직원들의 휴게실 정도로 이용됐다. 그러나 기자실이 폐쇄된 후 1년 반 동안, 지역사회라는 특성 때문인지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당진군의 공식브리핑은 주로 소회의실이나 상황실에서 진행됐다. 휴게실로 이용되던 공간은 그야말로 잠깐 들러 취재메모를 살펴보고 일정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활용했다. 일부 지방일간지 기자들은 폐쇄된 기자실이 아쉬웠는지 군청 인근에 공동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문제는 2003년 10월, 당진군이 기자실을 브리핑실로 이름을 바꾸고 활용계획을 밝히면서부터 다시 불거졌다. 브리핑실로 이름을 바꿨지만 칸막이가 된 취재활동용 책상 6개를 재배치하는 등 사실상 기자실을 부활시키는 계획이었다.

이에 대해 지역의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당진참여연대와 당진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등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실상의 기자실 운영을 중단하고 개방형 브리핑 실로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과연 브리핑실인가? 기자실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잠금장치가 있는 개인 책상과 인터넷선, 칸막이를 갖춘 공간을 어떻게 브리핑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며 "당진군은 구시대로 역행하는 기자실 운영 시스템을 즉각 중단하고 본래의 취지에 맞는 개방적 브리핑실로 구조를 개편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당진시대>에 시민단체의 성명서를 인용해서 사실상의 기자실 부활에 대해 비판기사를 썼다. 이 기사의 파장은 꽤 컸다. 담당 문화공보과장과 언쟁을 벌여야 했으며, 지방일간지 한 기자의 고압적인 항의를 받기도 했다.

브리핑실이 브리핑실다웠다면

사실상의 기자실 부활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시민단체와 당진군이 토론회를 벌여 브리핑실의 본래 취지에 맞게 시설을 개선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그 후에도 당진군은 구태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 일례로 당진군은 2005년 브리핑 실 관리를 위한 비정규직 여직원을 배치하고 소파와 탁자를 새로 들여 놓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거쳤기 때문인지 이제 당진군청의 브리핑실은 과거의 기자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지방일간지 기자들이 상주하는 일도 없어졌고 사무용 책상을 점유하는 일도 사라졌다.

개방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과거의 폐해는 많이 줄어든 듯 하다. 물론 아직도 일부 기자들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등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브리핑실이 브리핑실답지 못하다는 것은 여전히 문제다.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브리핑실에서 브리핑을 받아본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일단 소파와 테이블 등 필요없는 공간으로 인해 브리핑에는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 이 때문에 정작 브리핑은 군청 상황실이나 소회의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의 브리핑실은 사실상 기자들을 위한 휴게실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르겠지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중앙부처의 기자실 통폐합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브리핑실이 브리핑실답게 운영됐다면, 그리고 취재를 위한 자료제공이 충분히 이뤄졌다면 이같은 논란이 일어났을까?

실제로 TV화면에서 보이는 중앙부처의 기자실은 과거의 당진군청 기자실을 연상케 한다. 칸막이가 있는 사무용 책상에 책꽂이, 수북한 자료까지. 누가 보더라도 개방적 브리핑실로는 여겨지지 않을 듯 싶다.

정부 부처의 입장에서는 관언유착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비판적 기사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던 부처로서는 더욱 그렇다. 이는 당진군의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기자실 문은 열고, 부처 사무실 문은 닫고

그러나 폐쇄적 기자실 운영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기자실 통폐합으로 푸는 것은 그야 말로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특히 기자들의 각 부처 사무실 출입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조치가 무척 우려스럽다. 기자실 통폐합의 이유가 관언유착과 '받아쓰기식' 보도의 근절이라고 하면서 정작 각 부처 사무실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자는 취재원의 진술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을 '읽기'도 해야 한다. 현장감이 살아있는 기사는 전화나 이메일만으로 불가능하다. 홈페이지 등을 이용한 자료제공도 충분하지 않다. 의회의 국정감사, 혹은 행정사무감사 이후 새로운 정보와 자료가 갑자기 폭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언유착의 낡은 상징인 기자실을 없애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다.

기자생활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행정관서에서는 정치적 목적과 구시대적 사고로 별 필요도 없는 공사와 용역을 벌이면서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온갖 생색내기식 사업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예산을 낭비하면서 업자들의 배를 불린다. 반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 수립에는 늘 '예산이 부족하다'고 엄살을 피운다.

그나마 행정기관이 이만큼이라도 운영되고 있는 것은 언론자유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만약 '취재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활동에 제약을 가한다면 국민의 혈세 알기를 '흑사리 껍데기'마냥 아는 현실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자실 통폐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다.

그리고 한 마디 더. 지금까지의 폐쇄적 기자실 운영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관언유착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전적인 책임으로 몰기에 앞서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브리핑실이 브리핑실답게만 운영됐다면 이같은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기자실도 아니고 브리핑룸도 아녀"
공무원노조 진천군지부 "자진시정 안하면 폐쇄조치"

충북 공무원노조 진천군지부가 성명을 내고 지난 해 초 개설된 브리핑룸이 기자실로 변질됐다며 폐쇄를 요구하고 나섰다.

진천군지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일부 기자들은 소위 사조직인 '기자단'을 조직해 몇몇 지방언론사를 배격하고 브리핑룸을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인 양 출입을 제한하거나 홍보비의 집행에 관여하는 등 상습적인 유착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입 기자들이 진천군이 제공하는 기사를 앵무새처럼 받아써 군민들의 알 권리를 차단해 브리핑룸이 과거 기자실과 같이 종종 음성적 거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천군지부는 "진천군이 지난 한 해동안 2억600여만원을 언론광고 및 공고료로 지출하고 600여만원은 기자들과의 오찬 또는 만찬비용으로 지출했다"며 "오는 30일까지 당초 브리핑룸의 취지에 맞게 자진시정하라"고 촉구했다.

진천군지부가 자진시정으로 요구한 내용은 ▲브리핑 룸에 상주하지 말 것 ▲기자단 지정석을 폐지하고 사무집기를 재배치할 것 ▲브리핑 룸의 잠금장치를 제거할 것 ▲일방적 비난으로 진천군 전체공무원을 매도하지 말 것 등이다.

진천군지부는 자진 시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지역주민과 민주언론단체와 연대해 취재거부, 구독거부에 이어 브리핑 룸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천군 기자실은 진천군지부에 의해 지난 2002년 6월 폐쇄됐다가 지난 2006년 3월 브리핑룸으로 개설됐다.

한편 현재 충북에는 <새충청일보> <충청매일> <중부매일> <동양일보> <충북일보> <충청투데이> <충청일보> 등 7개 신문이 있으며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기자실 또는 브리핑 룸을 제공하고 있다. / 심규상

태그:#기자실, #취재선진화방안, #브리핑 실, #브리핑 룸, #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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