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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노동자들이 망치 등을 이용해 기륭전자 정문을 연 후 이를 가로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금속노조 노동자들이 망치 등을 이용해 기륭전자 정문을 연 후 이를 가로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철옹성 같던 철문이 열렸다. 노사분쟁이 몇 년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기륭전자의 정문이 노동자들의 망치로 뜯겨진 것이다. 이 회사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는 너무나도 높고 두꺼운 문이었다.

금속노조 '장기투쟁사업장 집중투쟁 1차 금속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12일 오후 4시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 내 기륭전자 앞. 회사 안으로 진입하려는 노동자 500여 명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 400여 명사이에 격한 몸싸움이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이 날아들고 방패가 들어 올려졌다.

그 한가운데 회사에서 쫓겨난 김소연(38)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을 비롯한 회사 노조원 10여 명이 있었다. 분홍색 조끼를 입은 그들은 그 누구보다 앞장섰다. 방패와 곤봉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 내일부터라도 출근해 일하고 싶다"고 외쳤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30℃의 땡볕 아래에서 굳게 닫힌 철문을 스스로 열어야만 했을까?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김 분회장을 처음 만난 건 이날 오전 7시 20분 기륭전자 앞에서였다.

200명 노조원은 40여명으로 줄어들고... 어렵게 이어가는 농성생활

12일 오후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이 기륭전자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는 하는 중 피곤한 모습으로 안경을 만지고 있다.
12일 오후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이 기륭전자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는 하는 중 피곤한 모습으로 안경을 만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김 분회장을 비롯한 노조원 10여 명은 이날도 "비정규직 철폐하고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출근하는 직원들은 익숙한 듯 무표정이었다. 단지 회사 쪽 경비업체 직원들만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오전 8시에 '출근 투쟁'을 마치고 천막 농성장에서 아침을 먹었다. 반찬은 김치와 상추가 전부였다. 나중에 컵라면 3개가 보태졌다. 김 분회장은 "천막 농성은 오늘로 658일째"라고 덤덤히 말했다.

천막 한쪽에는 이불이 쌓여있었다. 반대편에는 버너와 김치통 등이 있었고 그 뒤로 나무로 투박하게 만든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 상자에는 농성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 담겨있었다. 김 분회장은 선반을 가리키며 "컨테이너 차량이 쳐서 무너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때 200여 명에 달했던 노조원은 40여 명으로 줄었고 현재 농성장에 나오는 사람은 14명이다. 김 분회장은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모두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농성을 이어나가는 데 한달에 200만원이 든다고 한다. 김 분회장은 "금속노조에서 주는 지원금, 일일주점을 열어 번 돈으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분회장은 "힘들지만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전했다. 658일이나 끌고 있는 노사간의 분쟁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기본급=법정최저임금+10원"

긴 싸움의 시작은 2005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 민주노총에서 서울관악노동사무소에 불법파견 진정을 냈고 7월에는 노조가 설립됐다. 당시 생산직 노동자 300여 명 중 15명이 정규직이었고 40여 명이 계약직, 나머지는 모두 파견직이었다.

2002년 6월 파견직으로 기륭전자에 입사한 김 분회장은 "노동조건이 너무나 열악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파견직 노동자들은 노예, 소모품이었다. 잔업 100시간을 해야지 1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당시 기본급이 64만1850원이었는데, 법정최저임금 64만1840원보다 10원 많은 것이었다. 평균 근속 기간이 1년밖에 안될 정도였다."

노조가 만들어지자 생산직 노동자의 2/3인 200여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에 회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김 분회장은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에서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 감시 카메라 30여대를 설치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8월 5일,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시정한다는 명분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노동자 80여명을 대량 해고 했다.

이에 맞서 노조는 8월 24일 노조는 55일간의 생산라인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공권력에 의해 강제 해산됐고 김 분회장은 구속됐다.

이후 2006년 12월 기륭전자는 불법파견과 관련 검찰에 의해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냈다. 2007년 4월에는 회사가 생산라인 점거와 관련 노조를 상대로 낸 54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기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노조의 천막농성이 658일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김 분회장은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검찰에 의해 500만원 벌금이 나왔는데도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다"며 "너무 답답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기륭전자 관계자는 "할 얘기가 없다"며 말하기를 꺼렸다.

불법파견·벌금 판정... "그런데 우리는 갈 곳이 없다"

지난 2005년 8월 기륭전자 생산라인 점거 투쟁 당시 회사의 정문 봉쇄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농성 노동자들이 옥상에 올라가 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아래쪽으로 회사가 새로 설치한 감시 카메라와 철조망이 보인다.
지난 2005년 8월 기륭전자 생산라인 점거 투쟁 당시 회사의 정문 봉쇄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농성 노동자들이 옥상에 올라가 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아래쪽으로 회사가 새로 설치한 감시 카메라와 철조망이 보인다. ⓒ 최석희

기륭전자 노사 분쟁은 가산디지털단지의 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곳에는 새롭게 지어지는 아파트형 공장들이 공단의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노조 조합원인 윤종희(38)씨는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거의 99%가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또한 "특히 계약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입사 며칠 만에 해고돼도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이어 "이름이 가산디지털단지로 바뀌었지만 구로동맹파업 때보다 노동자가 늘었고 근로조건도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5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8월 공단 내 신규 채용의 96.6%가 계약직과 파견직 등 비정규직이었다. 또한 평균 임금은 파견직은 73만원, 계약직은 76만원이었다.

이에 대해 김 분회장은 "파견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제조업은 파견을 하면 안 되는 직종이지만 회사가 바쁠 때는 3개월의 파견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3개월 연장도 가능하다. 그래서 공단 지역에는 3·6개월 계약직, 파견직이 거의 대부분이다."

김 분회장은 "이러한 현실 때문에 우리의 투쟁은 다른 곳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령 싸움에서 진다고 해도 앞으로 누가 감히 여성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658일째 농성의 마지막은 노조원들이 경비실 옥상에 올라가 회사를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모습이었다. 경찰에 의해 회사로 들어가지 못한 노조원들은 오후 7시 철조망이 쳐진 경비실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우리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대우해라', '현대판 노예제도 파견법을 박살내자'라고 쓰인 피켓을 세웠다. 그리고 외쳤다. "노예로 살기 싫다."

같은 시각 가산 디지털 단지 역. 많은 노동자들이 고단한 하루를 뒤로 하고 퇴근하고 있었다.

기륭전자 내에 들어가려는 금속노조 노동자들과 이를 가로막는 경찰이 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륭전자 내에 들어가려는 금속노조 노동자들과 이를 가로막는 경찰이 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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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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