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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인사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갖은 고난을 견뎌내고 있는 모양이다. 검증이다, 의혹이다 해서 '밑천'들이 드러나고 때로는 감추어졌던 사생활이 폭로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몇몇은 '출마한다고 한 적도 없이' 불출마를 선언한 경우도 있다. 불출마 선언을 듣고 나서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 했구나' 하고, 알게 되는 희한한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려야 하는' 왕후장상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는 수많은 '평민'들이 모두 대선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그래서 나도 이참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자 한다. 플래시가 펑펑 터지는 기자들 앞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는 인사들이 나름대로 그 이유를 밝히는 터라, 나도 몇 가지 이유를 밝히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난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다. 학생들의 수업은 오전 8시 40분에 시작되지만 등교는 오전 8시 10분까지 한다. 3학년은 오전 7시 50분이다. 정규 수업 시간과 보충수업이 끝나면 대개 오후 6시 가량 된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의 손 맛보다' 더 익숙해진 저녁 급식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에 들어간다. 밤 10시가 되면 끝나지만 밤 12시까지 진행되는 자율프로그램도 있다. '내 눈에는' 눈물겹게 보이는 학생들의 하루 일과다. 물론 쉬는 토요일이나 각종 공휴일에도 자율학습은 '자율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거기에 담당 교사들이 함께 한다.
내가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다. 적어도 선거에 나가려면 주변 동료부터, 가까운 이웃의 지지와 응원부터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생활을 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과연 그럴 여력이 있을까?
배울 것도 많고, 가르칠 것도 많으며 또 경쟁해서 '성적'을 높이는데도 여력이 부족한데 어찌 '동료 교사의 대선 출마' 따위에 힘 보탤 여력이 있겠는가.
'정도' 넘어 학사일정 개입하는데 어찌 일개 교사가...
요즘 일부이긴 하지만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급식 모니터링, 시험 감독, 운영위원회 참여 등 개인적 희생과 노력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소중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교장 교사들과 기꺼이 '대립'하면서까지도 투명하고 바른 학교 운영이 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나 자신 교사이면서도 그렇게 학부모로 참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은 '정도'를 넘어서 학사일정 등에 개입하기도 한다. 이들은 심지어 학교가 불법적인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 예를 들어 교육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설모의고사를 실시하라고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어느 집단이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행동'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적어도 교육적으로 옳고 정당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더군다나 학교가 아닌가?
사설 모의고사의 교육적 성과에 대한 판단은 물론 논외로 한다. 그러나 각종 지표와 연구를 거쳐 집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현장 교사들 내에서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는(물론 논란이 있지만) 교육정책을 학부모들이 교육부가 아닌 학교를 대상으로 '거부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명백한 학사 개입이며 교사의 평가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주 원칙적으로만 얘기하면, 사기업체에서 출제한 사설모의고사는 필요한 학생과 학부모가 구입해서 정규 수업 시간이 아닌 시간에 치르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20∼30명씩 몰려다니며 '불법을 저지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내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으려는 두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대개 이런 요구를 하는 학부모들이 대부분 학부모회 등에서 '주류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사실상 교사들을 자기 자녀의 성적이나 올려야 하는 '보모' 수준으로 대접하고 교권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어찌 일개 교사가 대선에 나갈 수 있겠는가? 학교장이라면 또 몰라도.
학생들이 내 곁에 있기에 기운 빠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절망하거나 기운 빠지지는 않겠다. 교실에만 들어가면 졸린 눈을 어떻게 하든지 들어올려 보려는 '가상한' 학생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잘못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으로 '선생'에게 미안해하는 학생들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이번 대선을 포기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안타깝게도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내가 오늘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마지막 이유다. 나, 대선 안 나간다!
덧붙이는 글 | 조용식 기자는 울산에 있는 학성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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