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학기를 마치고
설레는 맘으로 시작한 봄학기가 지나고 그동안 배운 것을 실습(?)하러 한국 식당으로 향했다. '안녕히 가세요'와 '안녕히 계세요'의 차이도 모르던 학생들이 이제는 의젓하게 한국어로 한국 음식을 주문하고, '물 좀 더 주세요'라는 말로 청할 줄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 왔다.
처음에 초급 2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한국 식당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과외 시간에 하는 수업이라서 빠지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그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아직 조금은 부족하지만 초급 1반 학생들도 끼워주기로 한 것인데, 주객이 전도되어서 초급 1반 학생들이 더 많이 참석하게 되었다.
한국인 약혼자와 함께 참석한 미국 학생 김대영씨, 중국인 어머니를 모시고 참석한 브라질 학생 강만석씨, 아리랑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노래방에서 세 번이나 부른 중국 학생 왕중화씨, 언제나 조용조용히 말을 하는 유대인 학생 정성운씨, 터키어와 한국어의 공통점을 찾기 좋아하는 터키 학생 김한기씨, '슈퍼주니어'를 아주 좋아하는 필리핀 학생 김정미씨, '빅뱅'의 태양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는 필리핀 학생 강수진씨, 그리고 하와이계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인 구희진씨, 이렇게 11명이 모였다.
식당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는 식당의 한국인 종업원에게 희진씨가 먼저 말을 건넨다.
"한국말만 해 주세요."
"왜요?"
"저희는 한국어 학생이에요. 여기에 한국어 공부하러 왔어요."
여기까지는 교실에서 연습한 대로 잘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학교에서 배운 말만 할 수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종업원이 유창한 한국어를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재치있게 왕중화씨가 말을 한다.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그런데 그 말이 더 이상했는지 김대영씨의 약혼녀가 그 말을 '천천히 많이 드세요'로 알아듣고 어리둥절해 하며 'What did you say?(뭐라고 하셨어요?)'라고 영어로 하여 한국어만 하기로 한 규칙이 깨지고 말았다.
한 사람씩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어눌하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만하게 주문하고 난생 처음 한국어로 주문한 음식을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며 서로 한국어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급 2반 학생들은 초급 1반 학생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좀 더 자세하게 자신을 소개하였고, 잘못 알아듣는 초급 1반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는 모습도 보였다.
"찬물 좀 주세요."
"물 좀 더 주세요."
"반찬 좀 더 주세요."
"잘 먹었습니다."
"계산서 주세요."
"크레딧 카드도 받으세요?"
등등의 말들을 준비해 갔는데, 막상 하려니까 생각이 잘 나지 않고, 푸짐하게 알아서 가져다주신 반찬 덕분에 '반찬 좀 더 주세요'는 끝내 못 해보고 말았다. 그래도 '물 좀 더 주세요', '잘 먹었습니다', '계산서 주세요' 등의 말들은 훌륭하게 해서 종업원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왕중화 김대영 김한기씨
밥을 먹으면서도 왕중화씨와 김대영씨, 김한기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서인지 김대영씨는 '주몽', '불멸의 이순신' 등 역사 드라마를 모두 보았고, 가끔 거기서 나오는 대사를 수업 시간에 말해서 폭소를 터뜨리게 하기도 한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죽여 주십시오!'인데 그 억양까지 똑같이 흉내내서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곤 한다.
그런데 대부분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올바른 한국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도 하였다. 특히, 중국 학생 왕중화씨는 중국 중심의 한국 역사를 알고 있고, 정확하지 않은 인터넷 정보들을 가지고 다른 학생들에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하곤 해서 필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김대영씨는 자신이 본 드라마들이 모두 역사적 사실인 양 알고 있는 듯해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엔지니어 김대영씨와 약혼녀
김대영씨는 한국어를 전혀 모를 때도 약혼녀에게 한국어로 청혼했다고 한다. 약혼녀의 오빠가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써서 이메일로 보낸 후에 전화로 딱 한 번 교정 받고 시도한 청혼을, 안타깝게도 그 약혼녀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와 혼해 주세요'라고 했다고 하니 진지한 청혼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김대영씨의 한국인 약혼녀가 김대영씨가 한국 숫자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1부터 100까지 한국어로 셀 수 있다고 해서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김대영씨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렇게 열까지 센 후, 다시 '하나, 둘, 셋, 넷…'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때 한국인 약혼녀가 '하나, 둘, 셋, 넷, 다, 여, 일곱, 여덟…' 이렇게 세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다섯, 여섯'을 '다, 여'로 세곤 했는데, 그 약혼녀가 그렇게 세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혼녀가 김대영씨에게 "맛있어?" "쪼금 매워" 등의 표현을 써서 김대영씨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약혼자에게는 '맛있어요?'라고 하셔야지요."
"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무도 '조금'이나 '좀'이라고 안 해요. 다 '쪼금'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사람과 한국인 배우자 혹은 연인 사이에서는 정확한 한국어와 평소 사용하는 한국어 사이에 혼동이 오곤 한다. 얼마나 우리 한국어 모국어 화자들이 정확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내지 말라고 하면서 한 학기 동안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대접한다고 하는 말에 노래방 값은 내가 내기로 하고 근처 노래방을 식당 종업원에게 물어서 모두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길 안내법을 배운 초급 2반 학생들은 당당히 한국어로 노래방이 어디 있냐고 물어서 모두 무사히 노래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편은 노래방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