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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평 논에 우렁이를 10㎏이나 넣었는데 황새 때문에 우렁이가 많이 줄었다. 논에 갈 때마다 논두렁을 따라 살펴보면 황새가 빼먹고 빈 껍질뿐인 우렁이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전라남도에서 사 온 우렁이는 6만5천원이나 준 것인데, 거의 반 이상은 빈 껍질로 변해서 일찍이 유명을 달리하신 상태다.
오늘도 황새가 논두렁에 앉아 있기에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더니 휙 날아갔다. 평소에는 늘씬한 몸매와 새하얀 날개가 참 고와 보였는데 우렁이를 잡아먹는 걸 본 후로는 황새가 싫어졌다. 논이 있는 옆 산 소나무 위에 집을 지어 놨는지 늘 황새 몇 마리가 앉아있다. 내가 쫓아도 논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그 소나무 위에 가서 앉는다.
우렁이는 물꼬 있는 곳으로 자꾸 몰려드는데 논 가운데로 던져 넣어도 다음날 가보면 다시 물꼬 근처에 모여 있다. 저러다 황새에게 걸리면 몰살할 텐데 자꾸 한군데로 모이기만 한다. 물살을 타고 다니는 습성 때문인지 산란 장소로 적당해서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속상한 것은 이놈들이 부지런히 논바닥을 기면서 풀씨들을 빨아 먹어야 하는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여기저기서 짝짓기 하느라고 한데 엉켜 뒹굴고 있다. 어떤 놈들은 세 놈이 같이 엉겨있기도 하다. 그런데 차마 이런 놈들은 건들기가 좀 그렇다. 나름대로 성스러운 종족번식을 위한 짝짓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발자국 소리일망정 크게 낼 수가 있겠는가.
강원도 화천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너네 논 우렁이도 짝짓기에만 정신이 팔려 일은 안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이 후배 하는 말이 내 속만 뒤집어 놓는다. "다 논 주인 닮아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형님이 개과천선해서 일을 부지런해 좀 해 보세요. 잘 해결 돼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우렁이가 근 한 뼘 이상 논둑을 타고 올라와서 한참 동안 알을 낳고 있는데 그 순간 손톱보다 작은 불개미떼가 어디서 몰려왔는지 새까맣게 몰려드는 것이었다. 알의 진액을 빨아먹나 했더니 그러지 않고 어미 우렁이 몸속으로 몰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린 속살을 다 드러내고서 알을 낳고 있는 어머 우렁이 속살에 불개미떼가 다닥다닥 붙어 진액을 빨아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알을 다 낳은 우렁이를 구출하여 논 가운데로 던져 넣었는데 가만 놔두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죽은 우렁이들이 황새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렁이가 여기저기 슬어 놓은 발간 알들이 부화하면 지금 몫까지 일을 더 많이 하려니 하고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부화하여 논바닥을 기어다닐 때쯤이면 날 풀씨들은 다 나고 벼는 제법 자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