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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바닥을 기면서 풀씨들을 빨아 먹는 우렁이. 황새가 빼 먹은 우렁이는 빈 껍질로 물에 떠 있다.
논 바닥을 기면서 풀씨들을 빨아 먹는 우렁이. 황새가 빼 먹은 우렁이는 빈 껍질로 물에 떠 있다. ⓒ 전희식
500평 논에 우렁이를 10㎏이나 넣었는데 황새 때문에 우렁이가 많이 줄었다. 논에 갈 때마다 논두렁을 따라 살펴보면 황새가 빼먹고 빈 껍질뿐인 우렁이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전라남도에서 사 온 우렁이는 6만5천원이나 준 것인데, 거의 반 이상은 빈 껍질로 변해서 일찍이 유명을 달리하신 상태다.

오늘도 황새가 논두렁에 앉아 있기에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더니 휙 날아갔다. 평소에는 늘씬한 몸매와 새하얀 날개가 참 고와 보였는데 우렁이를 잡아먹는 걸 본 후로는 황새가 싫어졌다. 논이 있는 옆 산 소나무 위에 집을 지어 놨는지 늘 황새 몇 마리가 앉아있다. 내가 쫓아도 논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그 소나무 위에 가서 앉는다.

짝짓기 하는 우렁이
짝짓기 하는 우렁이 ⓒ 전희식
우렁이는 물꼬 있는 곳으로 자꾸 몰려드는데 논 가운데로 던져 넣어도 다음날 가보면 다시 물꼬 근처에 모여 있다. 저러다 황새에게 걸리면 몰살할 텐데 자꾸 한군데로 모이기만 한다. 물살을 타고 다니는 습성 때문인지 산란 장소로 적당해서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속상한 것은 이놈들이 부지런히 논바닥을 기면서 풀씨들을 빨아 먹어야 하는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여기저기서 짝짓기 하느라고 한데 엉켜 뒹굴고 있다. 어떤 놈들은 세 놈이 같이 엉겨있기도 하다. 그런데 차마 이런 놈들은 건들기가 좀 그렇다. 나름대로 성스러운 종족번식을 위한 짝짓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발자국 소리일망정 크게 낼 수가 있겠는가.

모심는 날. 지난 6월 2일. 서울에서 누님도 내려오고 형님도 내려와서 함께 모를 심었다. 어머님은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에 모시고 가서 모심는 광경을 보시게 했다.
모심는 날. 지난 6월 2일. 서울에서 누님도 내려오고 형님도 내려와서 함께 모를 심었다. 어머님은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에 모시고 가서 모심는 광경을 보시게 했다. ⓒ 전희시
강원도 화천에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너네 논 우렁이도 짝짓기에만 정신이 팔려 일은 안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이 후배 하는 말이 내 속만 뒤집어 놓는다. "다 논 주인 닮아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형님이 개과천선해서 일을 부지런해 좀 해 보세요. 잘 해결 돼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우렁이가 근 한 뼘 이상 논둑을 타고 올라와서 한참 동안 알을 낳고 있는데 그 순간 손톱보다 작은 불개미떼가 어디서 몰려왔는지 새까맣게 몰려드는 것이었다. 알의 진액을 빨아먹나 했더니 그러지 않고 어미 우렁이 몸속으로 몰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린 속살을 다 드러내고서 알을 낳고 있는 어머 우렁이 속살에 불개미떼가 다닥다닥 붙어 진액을 빨아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알을 다 낳은 우렁이를 구출하여 논 가운데로 던져 넣었는데 가만 놔두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죽은 우렁이들이 황새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렁이가 슬어 놓은 알은 참 예쁘다. 물 흐름이 있는 곳 맨 땅이나 풀섶위에 알을 놓는다.
우렁이가 슬어 놓은 알은 참 예쁘다. 물 흐름이 있는 곳 맨 땅이나 풀섶위에 알을 놓는다. ⓒ 전희식
우렁이가 여기저기 슬어 놓은 발간 알들이 부화하면 지금 몫까지 일을 더 많이 하려니 하고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부화하여 논바닥을 기어다닐 때쯤이면 날 풀씨들은 다 나고 벼는 제법 자라 있을 것이다.
#우렁이#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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