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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한나절은 수로 공사를 했다. 혼자서 설계하고 혼자서 시공하고 혼자서 준공식까지 했다. 버려져 있는 자재들을 이용하고 내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스프링클러 장치까지 만들었는데 물이 잘 분사되어 호박밭에 물주는 일은 걱정 안 해도 될 형편이다.
이른 봄에 직접 모종을 부어 단호박을 200포기 정도 심었었다. 괭이 한 자루만으로 일구어 낸 묵은 밭에 호박구덩이를 허리춤까지 파고 거름을 듬뿍 넣어 호박순을 심었는데 정작 물을 줄 수 없는 산언덕 밭이라 고심하다가 옆집에서 내다 버린 물 호스가 있어서 그것을 가져다가 계곡물을 끌어다 넣기로 했다.
밭이 원래 십수 년을 묵어 있어서 팔뚝만 한 잡목까지 자라 있긴 했어도 땅이 농약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부엽토가 쌓여 있어서 농사짓기 좋은 상태였다. 할 일 많은 사람이 관리기조차 들어갈 수 없는 산골짜기에 괭이 하나로 어찌 그 많은 일을 해 낼 거냐고 말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땅을 놀리기가 아까워서 시작한 일이었다.
물 호스를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40m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우리 밭이랑 높이를 비교해 보고는 물 호스 박을 웅덩이를 만들었다. 파스칼의 원리라 했던가. 우리 밭 옆에까지 계곡 따라 내려온 물 호스를 2~3m가 넘는 밭 위로 올려놔도 자연압으로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는 자연폭포수로 이용해도 좋을 성싶었다.
계곡물은 덕유산 서봉을 수원지로 하여 내려오는 것이어서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다. 너무 깨끗해서 고기가 단 한 마리도 살지 못할 지경이다. 언젠가 눈을 씻고 찾아봤지만 고기가 단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밭에까지는 단단한 고무호스였고 밭 안에서는 얇은 비닐 호스를 연결했다. 그리고는 호박 포기마다 빠짐없이 줄줄이 비닐호스를 지나가게 깔아서는 커다란 찔레 가시 하나를 꺾어 와서는 구멍을 뽕뽕 뚫었다.
구멍을 좀 작게 뚫으면 물줄기가 1m 이상 위로 치솟고 구멍을 좀 크게 뚫으면 분무기처럼 물이 좍 펴져서 나왔다.
엊그제 내린 비가 많은 양이 아니어서 이제 개화가 시작되는 단호박이 물을 많이 먹는 시기가 되는데 이 자연압을 이용한 물 호스가 단호박 풍년의 단꿈을 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