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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력이라곤 제로에 가까울 만큼 무심한 성격이라 마을 주변이 온통 대나무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도 여지껏 신록 무성한 이 5~6월에, 하룻밤 지나면 죽순 키가 쑥쑥 자라는 이 때쯤 대나무숲이 누렇게 메말라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혹여 누런 대잎 낙엽이 흩날린다 해도 양분이 부족하거나 가뭄 때문에 메마른가보다 심상하게 넘겼지요. 죽순에게 양분을 몽땅 뺏겨 시들시들 메말라간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시골 어른들이 이 계절을 '대가을'로 부른다는 것도 난생 처음 들었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뭉클하던지요.
어미 뱃속에 열달을 웅크리고 있는 태아도 제 어미야 죽든 살든, 있는 양분을 마치 빨대로 빨아 마시듯 몽땅 흡수한다 합니다. 그래서 행여 산모가 영양이라도 부실하면 이빨도 흔들리고, 머리칼도 빠지고, 뼈마디 칼슘도 뭉텅뭉텅 빠지고 바람 빠진 무처럼 온 몸 구석구석이 비어간다 하던데 어린 죽순도 아마 제 어미 이파리 유즙까지 남김없이 빨아들였나 봅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인 줄 알았는데 삼라만상의 온갖 초목이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에 오직 저 혼자만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네요. 산천초목이 모두 다 시들어 잎 떨어뜨리고 다 함께 시린 겨울을 맞는다면 무에 그리 서럽겠습니까.
남들은 다 잘먹고 잘사는 것 같은데, 풍요한 인생을 유감없이 즐기는 것 같은데 이 좋은 세상 천년만년 살고 싶어서 온갖 방법 동원해 오래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손마디가 갈퀴처럼 갈라지고, 주름 파인 얼굴이 햇볕 따라 골지도록 부지런히 살아제껴도 그날이 그날이고 좋아질 세월은 까마득해 울고 싶은 농사꾼의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그 밑에 다른 지인이 위로의 댓글을 올렸습디다.
"대가을…들어 본 듯합니다. 봄에도 욕심껏 푸르르면 죽순이 날 수 없겠지요. 아버지란 꽃일 뿐 열매는 될 수 없는 것…윤기도 아버지처럼 '대가을'을 만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