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게도 운명이 있다. 스타 PD와 관록의 작가들이 모여 정성들여 캐스팅을 마친 뒤 화려한 홍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채비를 하는 드라마가 있다. 이러한 드라마는 방송사에서도 사활을 걸고 후원하며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반면 '시한부 인생'을 가지고 태어난 드라마가 있다. 이른바 대작을 위한 시간 끌기 작전용 '땜빵 드라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운명을 타고난 드라마는 상대 방송사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어느 정도의 시청률만 나오면 용서가 된다. 방송사에서도 애초부터 '땜빵용'이기 때문에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높은 시청률이 나오면 운명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저 그렇게 종영하고 만다. 그런데 조금 특별해질 것 같은 '시한부 드라마'가 있다. 적어도 시청률을 떠나서 조금 의미를 가지고 봐야할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이 시대의 아줌마를 위한 드라마 <新현모양처>가 그 주인공이다.
가벼운 코믹 안에 담긴 요즘 아줌마들 이야기
일단 <新현모양처>는 불륜으로 극을 시작한다. 그래서 옆 방송사에서 작품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내 남자의 여자>에 비해 왠지 모르게 어설픈 느낌이 들게 한다. 참 불리한 <新현모양처>다. 어떤 기사에도 <내 남자의 여자>는 참눈물을 흘리게 하고, <新현모양처>는 헛웃음을 나오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불륜이라는 공통의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분명 다른 장르를 표방하는 두 드라마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우습지 아니한가? <내 남자의 여자>가 정통극을 표방한다면 <新현모양처>는 스릴러를 가미한 코믹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新현모양처>는 가벼워 보인다. 그래서 헛웃음을 일으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가벼움 속에 느껴지는 현실 속에 아줌마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기에 말이다. <新현모양처>는 말 그대로 21세기에 걸맞은 현모양처를 말한다. 사실 비혼모, 알파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는 지금, 여성의 지위가 날로 격상되어 그런 말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터.
그렇다. 현모양처라는 말이 구시대적인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뇌의 깊은 곳에서는 남자는 은근슬쩍 아내에게 '현모양처'이길 바란다. 여자도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새롭게 태어날 '신현모양처' 상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허용된 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신현모양처는 과거의 개념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그 영역이 퍽 넓어졌다. 기존 현모양처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신현모양처는 여기에 돈도 잘 벌고, 재테크에도 능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신현모양처다.
극중에서도 주인공 경국희(강성연)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자녀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유치원 입학원서 하나에 목숨을 걸고 뜀박질을 한다. 집을 사기 위해 8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을 죽이고 열심히 돈 버는데 매진한다. 그런데도 남편은 "뇌에 보톡스 맞았냐?"라는 타박뿐이다.
집값이 갑작스레 뛰어 집을 계약하지 못한 국희. 그런데 그것 모두가 다 경국희가 신현모양처에 미달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남편은 갑갑하단다. 이것이 <新현모양처>에서 보여준 주된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에 시청자들은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말들이 많다. 하지만 여실히 현실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직장에서 돈을 벌고 똑같이 일하지만 언제나 가정의 일은 아내의 몫이다. 그리고 어쩌다 남편이 함께 해주면 그것의 개념은 '도움'이라는 단어가 끼어든다.
극중에서 바람이 난 명필이 국희의 친구 임태란(김태연)과 눈이 맞아 국희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태란을 집에 들였다. 하지만 발칙한 태란은 명필에게 당당하게 집안일을 요구하고 말한다.
"다 했어. 또 오빠가 뭘 도와줄까? 태란아!"
"파 좀 다듬어 줘. 파칼로 가늘게 좀 찢어줘."
"오빠. 근데 왜 자꾸 도와준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거 문제 좀 있지 않어?"
결국 이전보다 아내의 힘이 상승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의 주체는 아내다. 그래서 남편은 집안일을 '거든다', '도와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新현모양처>의 아줌마들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아니다. 즉 <내 남자의 여자>는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인 제도에 대한 문제로 "먹고 사니 팔자 좋네!"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내 남자의 여자>와 <新현모양처>는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新현모양처>를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오히려 중산층의 가정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것을 코믹하게 그려낸 것뿐이다.
<아줌마>와 닮은꼴 <新현모양처>
국희가 태란이에게 이야기한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얼어 죽을 행복이냐?"고. 요즘 아내와 엄마들이 그렇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新 현모양처>는 과거 <아줌마>와 비교해 보면 좋을 듯싶다.
<아줌마> 오삼숙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아줌마였다. 아이에 뒷바라지를 다하고, 남편을 지존으로 생각하며 떠받들고, 집안일은 도맡아서 하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그런데 늘 남편 장진구는 '무식한 아내'라 이야기하며, 외도를 감행한다.
그 외도를 알고 나서도 오삼숙은 한동안 남편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조금씩 오삼숙의 자아를 찾으면서 '진짜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한 자아 찾기를 시작하게 된 원인은 지존인 남편이 시아버지 퇴직금으로 교수 자리를 사고, 음주운전을 돈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의 위선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新 현모양처>에 국희는 오삼숙과 이복 자매라 할 수 있다.
국희도 남편이 최고라 여기며 아이의 공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며 교육비를 보태고자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한다. 집을 사는 것이 평생 꿈이다. 그런데 남편 명필은 잘 되면 지 탓이고 못되면 아내 탓이라 우긴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희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남편을 이해한다.
그런데 천연덕스럽게 바람을 피우고, 들켜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급기야 이혼을 요구한다. 결국 국희도 중요한 것을 모르는 그들에게 당당하게 도장을 찍어준다. 더 나아가 이사를 요구하는 명필의 머리는 페트병으로 가격한다.
그리고 국희가 당당하게 외친다.
"나한테 뭐든지 해달라고만 했어! 난 그걸 꾸역꾸역 참고 다 해주고 살고! 바람 피고 이혼해달라더니! 이제 이사까지 가라고? 앞으로 까불지마! 당신은 이제 내 남편 아니야! 10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뚜껑이 날아가면 아마 제주도까지 갈걸! 누구든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가만 안 둬!"
이처럼 뻔뻔한 남편 덕분에 국희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다. 오삼숙 여사와 비슷하다. 다만 경제적 능력까지 요구받는 국희가 더욱더 안쓰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국희는 그들에게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新 현모양처>는 요즘 아줌마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고 할 수도 있다. <아줌마>의 오삼숙 여사가 90년대 중반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아줌마였다면 지금 <新 현모양처>의 국희는 21세기 아줌마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닐까?
스릴러의 절묘한 조화, 뭉치면 산다!
그런데 <新 현모양처>는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처럼 스릴러 장르를 혼합해 새로운 아줌마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명필이 이야기하는 '新현모양처 미달 클럽'의 맞언니 연실(엄수정)의 남편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려는 스릴러를 절묘하게 섞어 놓은 것.
물론 전형적인 스릴러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은 없지만 일단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新 현모양처>는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네 명의 여자(경국희, 장미(사강), 수덕(이혜은), 연실)와 한 명의 아줌마들의 호프 박석두(김남진)가 그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스스로의 자아를 찾는 과정은 꽤 큰 재미를 선사해 준다.
가령 장미는 남편인 개코 김만석(김용운)을 피해 다녔지만 자신 있게 찾아가 "더 이상 피해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덕은 또 어떠한가? 마음 여린 그녀는 자신을 "뚱땡이!"라 부르며 단식원을 종용하는 남편 오봉구(임대호)에 머리를 들이대며 선방을 날린다. 그리고 "나는 뚱땡이 아니야! 이제 밥 안 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맞언니 연실은 남편이 탄 보험금을 들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되돌아오겠다며 홀연히 사라진다. 그런 동료들에 힘입어 국희도 자신이 사지 못했던 집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한다.
결국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하며 이제 답답한 아줌마들에서 당당한 아줌마들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스릴러와 코믹한 설정을 등장시켜 재미를 더해주고 있지만 그 안에는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로 살아가는 현실을 녹여냈다.
그래서 결코 <新 현모양처>는 가볍지만은 않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10%이하의 시청률이 나오고 있지만 다음 주부터는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월화극을 평정한 퀸인 <내 남자의 여자>가 퇴장하니 다시금 원점에서 새로운 승부를 걸 수도 있다. 거기에 후속작 <태왕사신기>는 지속적으로 방송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아줌마>도 상대 방송사 드라마 때문에 초반에 고전했지만 아줌마 오삼숙 여사의 활약으로 MBC 드라마 효녀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으니... 비록 땜빵용 드라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줌마들이 만들어 주는 통쾌한 이야기를 담은 <新 현모양처>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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