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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3월 16일 교육부령 제594호로 공포된 '연구학교규정'에 의한 연구학교제도는 오늘날 학교현장에서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낭비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한 번 교육부나 정부 타 부처에서 연구학교로 지정되거나,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시범학교, 선도학교, 거점학교, 준거학교 등으로 지정되면 2∼3년 동안 학교장에서부터 교사, 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교구성원이 자유로울 수 없다.

중간보고, 중간발표, 중간 문서보고, 최종발표회에 이르기까지 때마다 아이들의 학습권은 뒷전이고, 단위학교의 전 행정력을 여기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1년에 한두 차례 장학지도와 감사가 있을 때면 아예 수업을 단축하거나 중단하고 대청소와 학교환경 정리를 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학교 제도, 애초 취지 무색해져

연구학교는 원래 특정 주제에 대해 실천이론과 그 적용을 통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여 타 학교들로 일반화시키기 위한 좋은 취지와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의 연구학교 제도는 단위학교에서 교감과 부장교사 등 일부 교장승진을 추구하는 교사들에 의해 이용되는 것이 문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상주인구가 5만을 넘어섰지만 행정 단위로는 아직 읍(邑)인 대구광역시의 교외지역이다. 전근해 오던 해 영어·수학 수준별 이동수업 연구학교로 이미 교육부에서 지정되어 있었다. 연구학교 1차년도였던 셈.

한두 명 교장승진에 뜻을 둔 부장교사들이 앞서 추진한 탓으로 다수 영·수 교사들은 이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교원전체회의에서 어떤 논의도 생략한 채 교장, 교감과 몇몇 교사들에 의해 추진되고 결정되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학기 가까이 연구학교 운영협의회를 통해 3수준별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왔는데, 시교육청의 담당 장학사의 의지 때문인지 4수준으로 늘리고, 단순한 콘텐츠 개발이 아니라 실제 수업 모델을 개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부랴부랴 다시 연구의 궤도를 수정하여 연구학교 최종보고회를 지난해에 성공적으로 한 모양이다. 물론 나는 연구학교 2년째에 손을 뗐다.

게다가 교육부 지정 영수 4수준별 연구학교로 발표한 학교가 신학기가 되자 또다시 기존에 하던 3수준별 이동수업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3년 동안 공들여온 연구학교 성과가 일부 교사들의 승진 점수 확보를 위한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쇼를 한 셈이다.

구태여 그 성과를 말한다면 그날 참관을 한 학교의 교사들이 자기 학교로 가져간 자료집이 전부이고, 각자 학교로 돌아가서는 4수준별 이동수업을 할 리 만무한 것이 교육현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연구학교 최종발표회 그날 공개수업 한 시간을 위해 전 학교가 들썩였고, 그 때문에 정상적인 학습 진도에 가져온 차질, 즉 학생의 학습권 훼손됐다. 정작 교사들이 주도하는 연구학교가 학생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교사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우스꽝스런 사실이다.

대구 초·중·고교 30% 이상이 연구·시범학교

대구시 교육청의 2007년 주요업무계획을 보면, 대구시 421개 초·중·고교 중에서 무려 128개교(특성화 고교 15개교 포함)가 그 이름도 다양한 연구학교, 시범학교, 거점학교, 준거학교로 지정·운영되고 있다. 이 수는 전체 학교의 30%를 웃도는 수치다. 요컨대 대구시 전 학교의 3분의 1에 이르는 학교가 연구학교, 시범학교라는 사실이다. 10% 이하로 그 비율을 낮추어야 하며 그것이 최소한의 상식이다.

시교육청 장학진들은 이틀이 멀다 하고 중간발표, 중간보고, 최종보고 등을 받고 발표회에 참여해야 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학교의 교문마다 연구학교와 시범학교를 통해 받은 수상실적을 새긴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전시행정과 계량화의 신화에 사로잡힌 관료주의의 극치다.

위 128개교 중에서 교장승진 점수가 교육청 지정 학교에 비해 2배를 상회하는 교육부 지정 8개교 중 달성군 소재 학교가 4개교, 북구 칠곡지역 2개교, 그외의 지역에 있는 실업고 2개교가 지정되어 있다.

특히 달성군에는 전체 421개교 중 27개교가 있어 학교 수는 6%인 데 비해 지정 연구학교는 50%를 차지한다. 반면 소위 서울의 강남학군에 비유되는 수성구 소재 학교는 단 한 학교도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는 지역점수를 따러 달성군 소재에 자원한 교사들이 다시 승진점수를 0.001점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대구에서 좀 시골지역이랄 수 있는 달성군 지역 학교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학습권 훼손이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구학교로 지정 운영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의 학습권은 교사들의 승진점수 획득의 볼모가 되어있는 실정이다.

과다한 연구학교 운영, 학교 교육력 약화시켜

대통령령에 규정되어 있듯이, 연구학교에 참여한 교장, 교감, 교사들에게 표창, 승진은 물론 도서비·교재비·제작비·구입비·인쇄비, 기타 명목으로 상당한 예산이 지출되고 있다. 국민의 혈세가 해마다 교육청의 과다한 시범학교 지정으로 낭비되고 있다. 가급적 많은 시범학교 지정으로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또한 관료주의적 사고라밖에 볼 수 없다.

중요한 문제는 연구학교의 애초 취지가 승진을 꿈꾸는 일부 교원들에 의해 승진점수를 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사실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 진지하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교사들은 솔직히 현실적으로 소외되기 십상이다. 연구학교 제도는 필자가 보기에 학교 교육력을 약화시키는 주요한 낭비시스템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연구학교 보고나 발표에 몰두하느라 정작 그러지 말아야 할 교재 연구나 학생 상담과 생활지도에는 소홀해지게 마련이어서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수요자 중심 운운해 온 지가 10년을 넘겼는데 우리 학교현장이 아직도 이런 구태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60년 전부터, 혹은 일제강점기부터 관습이 되어온 뿌리 깊은 교육관료주의에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이 땅의 수많은 교육학자, 교육관료, 교원들이 말로만 불평을 하거나 교육개혁을 부르짖지 정작 시스템을 바꾸자고 앞장서는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간 시스템을 바꾸자는 일부의 주장은 지금 공허한 메아리로만 머물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을 자신들의 사적 동기에 이용하여 악화시키는 것은 저 먹머루빛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정도원 기자의 카페는 http://cafe.daum.net/dowon2017입니다.


#학교 교육력#연구학교#교육부#교장승진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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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해직교사 詩人·한국작가회의회원 전교조 대구교육연구소장 교육민주화동지회 부회장 저서 : 『교단으로 돌아가면』 『우리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겨울나무는 외롭다』 『더 나은 교육은 가능하다』 『교육보다 교사가 먼저다』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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