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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추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불빛이 반짝거린다. 뭔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두 사람이 뜸에다 불을 붙이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다리 이곳 저곳에 뜸을 올려놓고 있고 여자는 발위 뜸에다 불을 지피려고 하는 듯했다.
그 앞에 엿판을 올려 놓은 리어카가 있는 것을 보니 각설이 엿장수인 것 같다. 피곤한 모양이다. 하루 종일 서서 노래 부르고 엿도 팔았으니 다리도 아프고 고단할 것이다. 뜸으로 피곤을 쫓고 원기를 회복하려고 저러고 있는 모양이다. 세상 살기가 이렇게 힘들고 피곤할 줄이야. 근데 저사람들만 그렇겠는가.
사진 찍는 나를 보고는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서더니 환한 웃음을 짓는다. 사진 잘 찍으라고 멋진 포즈까지 취한다. 참 활달하고 씩씩한 여성이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잘 살아가는가 보다. 옆에 있는 아저씨까지 독려해 좋은 자세 잡으라고 재촉한다. 피곤해도 어쩌겠는가. 요즘 남자들, 여자들 말을 순순히 들어야 편하게 사는 것을. 아저씨 힘내세요.
사람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 사람 얼굴도 자세히 보면 다 나름의 아름다움과 품격이 있다. 아주머니는 참 성격이 활달하고 멋지다. 시원시원하고 하는 모양새가 귀엽다. 오색저고리와 치마가 참 아름답다. 참된 아름다움은 꾸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는게 피곤하고 힘들어도 꾸밈없는 진솔함과 밝은 마음에서 아름다움의 빛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런 아줌마들이 있어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 한 것인가 보다. 멋쟁이 아줌마, 행복하세요.
단오굿이 한창 진행중이다. 근데 갑자기 관람하시던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굿판안으로 들어오더니 푸른 색 지폐를 꺼내서는 무당의 앞저고리 끈에다 살짝 집어 넣는다. 무당의 앞쪽 가슴 양쪽으로 만원짜리 지폐가 끼워 있는 모습이 참 이채롭다. 예술공연인데도 개의치 않고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렇게 해야 그게 자연스러운 삶이신가 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여러 말들이 많지만 이게 우리네 어머니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자식으로서 이분들의 삶을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두 손을 모아 간절히 합장을 한다. 돈에게 절을 하는 건지 무당에게 어떻게 잘 좀 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인지 좀 헷갈린다. 허나 지금보다 뭔가 더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 아니겠나. 가족들 건강하고, 하는 일 잘 되고, 자식들 출세하고 이런 마음 아니겠나. 저 어머니 마음이랑 우리네 심정이 별반 다를 것이 있겠는가. 단지 비는 대상만 다를 뿐이지. 어머니, 우쨌든 비시는 대로 다 소원성취 하세요.
강릉농악이 한창 진행중이다. 공연중에 사람을 들어올려 삼각층을 쌓아야 한다. 근데 이게 어려운 일이다. 들어 올리려고 하니 뭔가 잘 안된다. 장정들 힘이 딸리는지 아줌마 들어 올리는 것이 벅찬 듯하다. 옆의 동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절로 웃음꽃이 피어나온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웃음은 서로가 함께 할 때 거기에서 정이 넘쳐 자신들도 모르게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법이다. 강릉농악팀 아자!
자, 힘을 합쳐 보자고. 이번엔 잘 해야되네. 알았어, 그래보더라고. 야, 근디 우리가 나이 먹어 힘이 약해진 것인가 아니면 아줌마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인가. 근디 내는 요새 건강을 위해 술도 적게 먹고 담배도 끊고 달리기도 하고 그러는디. 그럼, 니는 워뗘. 야, 내도 하루에 팔 굽혀펴기 100개씩 하고 그래. 그럼 우째 된거여.
아이고마, 내 좀 살려주소. 아이구 허리야. 이게 뭔 일이여. 아, 나를 들다가 땅에 내팽겨치면 이를 어찌 하자는거여. 거 참, 피 끓는 남정네들이 여자 하나 못 들어 이러면 우째되는거여. 아이구 쪽 팔려서 어떻게 해여. 남정네들 필 받아 다시 두번 째 시도해 드디어 성공했다. 근데 아줌마 표정이 참 압권이다.
난장을 지나는데 아주 큰 황금돼지 모형이 눈에 띈다. 옆에 어린 꼬마들이 큰 돼지가 신기한지 모여 들어 이리 저리 만지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이 좋아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데 웬 아줌마 두 분이 갑자기 황금돼지 옆에 서더니 나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엉, 이게 웬 일이여. 나도 순간 당황했다.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사람인데.
근데 아줌마들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자신들도 당황한 것이다. 아마 나를 여기 전속 사진사로 생각한 모양이다. 아무나 황금돼지랑 함께 사진 찍어 주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에고, 이런 실수를.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찰칵 했다. 하하, 괜찮아요. 두 분 아줌머니 복 많이 받으세요. 독자 여러분들도 올해는 소원성취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