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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는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제주도 샤인빌 리조트에서 열린 제주지역 주요인사 오찬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 연합뉴스

'언론이 구성하는 프레임이 문제'
'프레임을 제공하는 권력이 더 문제'

둘 중 어느 게 맞는 답일까. 많은 학자들 사이에 뉴스 프레임(frame: 틀)을 둘러싼 연구와 공방은 계속돼 왔다. 그러나 딱히 답을 가려내기란 어렵다.

미국의 사회학자 토드 기틀린은 "전통적인 공정성 개념으론 간파해낼 수 없는 그 어떤 프레임을 언론보도가 갖고 있다"고 했다. 대신 상징조작자(?)가 상례적으로 언어적 또는 영상적 담화를 조직하는 근거로 삼는 인식, 해석, 제시, 선별, 배제 등의 지속적인 유형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상징조작자'가 변수다. 누구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언론학자 터크만은 "뉴스생산자인 뉴스조직이 현실의 사건을 선택하고 가공, 편집하여 수용자에게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나의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답은 구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프레임들엔 공통점이 있다. 동일한 사건도 미디어의 프레임 구성, 즉 뉴스의 틀 짓기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로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레임이 갖는 무서운 함정일 수도 이다.

대통령 프레임 시들해진 걸까?

▲ <전북일보> 22일자 3면
ⓒ 전북일보
그럼에도 프레임은 미디어의 의제설정기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석과 인식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프레임을 선별하고 배제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이념과 정치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리 뉴스의 틀을 정해 놓고 정당성을 녹여 붓는 프레임 구성은 촌각을 다투는 언론환경에서 기능을 더욱 발휘하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은 심하게 나타난다. 언론사가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하자는 주장도 내부에 숨겨진 프레임을 떳떳하게 공개하자는 취지가 묻어 있다.

그렇다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임기를 다해가는 현직 대통령의 뉴스프레임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냉소주의는 실망에서 온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 임기 내내 각을 세워왔던 보수신문들의 대통령 프레임이 시들해져 간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12월 27일 '대통령의 막말 대처법'이란 '이장규 칼럼'에서 한 말처럼 가급적 대통령을 화나게 하지 않기로 한 걸까. 최근 지역을 돌며 농업을 걱정하고 평화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목소리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 뉴스프레임이 닳거나 망가져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느낌마저 준다.

대통령의 지역방문이 잦지만 지역 언론들도 이젠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온 지면과 화면을 차지하고도 남을만한 프레임이다. 정권말기, 너무 잦아서 일까. 해당 지역 언론조차도 냉소적이거나 흐리다. 중앙이건 지역이건 대통령에 관한 뉴스프레임이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그건 대통령의 말실수에 초점을 모으는 기능이 활발하다.

말실수에 집중된 '대통령 프레임'

▲ <새전북신문> 22일자 4면
ⓒ 새전북신문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전북 김제에서 농업계 대표들과 '한미FTA 농업부문 보완대책' 마련을 위해 간담회를 개최한데 이어 다음날엔 제주평화포럼 참석을 위해 제주를 방문했다. 양 지역 모두 한미FTA 협상이후 어느 곳보다 큰 시름에 젖어 있는 곳이다.

더불어 제주도는 해군기지건설 문제로 반목과 갈등이 극심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통령방문이 뉴스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결정지을지 관심을 끌만한 곳이다. 전북 또한 지난 8일 원광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통령이 방문한 지 불과 2주일 만에 다시 찾은 곳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시선이 집중됐다.

여느 때 같으면 대통령 방문 의미와 배경, 성과 등에 초점을 모으며 대통령 뉴스를 프레임에 가득 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번 원광대 방문 발언파문이 너무 컸던 때문일까. 시원치 않아 보인다. 더욱이 이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날이기도 하다.

중앙과 지역 언론의 뉴스 프레임은 온통 대통령의 입에 초점을 맞춰놓고 대기 중이었다. 마치 한 채널로 모아진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날 오후 김제에서 열린 농업인 단체장 및 농업 최고경영자와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선관위 결정에 대한 언급에 초점이 모아졌다. 대통령도 이날 눈치라도 챈 듯 프레임을 채울 재료를 제공했다.

농민을 위한 자리였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선관위 결정을 둘러싼 대통령의 선거중립, 정치중립 논란에 "후진적 제도를 가지고 후진적 해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계 대표들과 '한미FTA 농업부문 보완대책'에 관한 간담회 내용보다 이 한 마디가 더 중요한 프레임을 결정지었다. 단연 크게 보도됐다. 발언도 자연스러웠거니와 이미 틀을 갖춘 각 중앙언론의 뉴스 프레임을 통해 즉각 수용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전북·제주 방문 주목적은 그게 아닌데...

▲ <제주의 소리>는 노 대통령의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발언 전문을 소개했다.
ⓒ 제주의 소리
해당 지역 신문들도 놓치지 않았다. '노 대통령 "공작정치한 적 없다"', '뒤늦은 방문, 그리고 말실수', '30년만의 방문…아쉬움 남아', '전북현안 언급 없어 아쉬움', '선거법 등 격정적 주장 여전' 등의 제목들이 눈에 띈다.

또 다음날 노 대통령은 제4회 제주평화포럼 개회식에 참석했으나 뉴스 프레임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결정된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모색하기 위한 제주평화포럼이 21일 오전 9시 '헬싱키에서 제주까지: 동북아 다자협력 제도화를 위한 제주 프로세스 구상'이란 특별 주제로 개최된 지역이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도민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제주도내·외 종교계·정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 인사들과 도민들이 한목소리로 해군기지 철회를 촉구하며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 군사기지 건설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노 대통령이 방문하기 하루 전날에도 제주도청 앞에서는 '군사기지 철회 평화 염원 도민대회'가 열려 많은 시민들이 해군기지 여론조사의 원천무효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때문에 지역 언론들은 동북아 평화에 관한 대통령의 의제보다 군사기지 건설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에 더 관심이 컸다.

이미 채널은 고정돼 있었다. 예상대로 국제포럼 행사장이 아닌 제주지역 주요인사 오찬 간담회에서 프레임은 결정됐다. 노 대통령은 "해군기지에 대해 반대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제주도가 결정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면서 "결단이 내려진 만큼 아름다운 항만을 조성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관광객이 좋아할 명물이 되도록 운영해 나가겠다"며 제주해군기지를 기정사실화했다.

지역 언론들은 "노 대통령이 스위스 중립국을 예로 들며 '무장 없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세계평화의 섬'과 해군기지 반대 논리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언급, 향후 제주사회에서 해군기지 문제가 어떻게 매듭 될지 주목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프레임 재구성, 수용자들 헷갈려

▲ <한라일보> 20일자 4면
ⓒ 한라일보
그러나 이날 대통령의 해군기지 발언은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취재를 허용한 '모두발언' 이외 시간에 나왔다는 점에서 지역 언론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오찬간담회 발언이 두 프레임으로 나뉘었다.

지역과 중앙으로 분류됐다. 지역 언론사들은 그래도 지역민들의 관심이 많은 쪽에 무게를 뒀다.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노 대통령의 공식 발언으로 프레임을 가득 메웠으나 중앙언론들은 오찬간담회에서 흘러나온 발언이지만 선거법 관련 발언에 더 무게를 두었다.

중앙언론은 "노 대통령이 5년 대통령 단임제를 선진 민주국가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후진적 제도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9조를 다시 도마에 올렸다"는 뉴스 프레임 비중을 키웠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해군기지 유치문제를 놓고 벌인 강정마을 주민들 간의 마찰과 시민사회단체 반대운동을 주된 의제로 다뤘던 지역 언론들은 "해군기지 친환경적 건설", "제주 해군기지 국가 필수적 요소"로 하루 만에 제목이 바뀌었다.

이처럼 전 언론의 뉴스 프레임이 대통령의 화법에 고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이념적, 지역적 성향에 맞게 재구성되고 있다. 수용자들이 헷갈리기 딱 알맞은 프레임 구성이다.

태그:#지역언론, #노무현, #뉴스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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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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