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대 북측준비위원회 명예공동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은 만나면 진심으로 반가워한다… 북한은 나름대로 남북기본합의서 비준 받았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북측과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국회에서 남북관계 법안들이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평화·통일의 시대를 맞아 분단의 상처를 마무리하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한국전쟁을 봐야 한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대외부총장의 말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 7주년 행사를 북한에서 치르고 돌아온 이 부총장을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국외대에서 만났다.
이 부총장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와 통일교육협회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다. 그는 “분단국가인 한국사회에서 6·15와 6·25를 함께 조명해보는 것은 흥미 있고 나름대로 한국사회를 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두 얼굴의 6월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법안들이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법률뿐만 아니다. 사회 전반이 전쟁에서 영향을 받았다.
전쟁 직후 한동안 ‘반공’이 국시였다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 부총장은 현재적 의미에서 한국전쟁이 두 가지 의미를 지난다고 봤다. 한 가지는 냉전적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총장은 “사회 단위들과 제도가 전쟁에 대비해야한다는 냉전적 의식에 기반해 조직됐다”고 말했다.
“냉전 잔재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것이 1948년 12월 제정된 국가보안법이다. 6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이 남아있다. 여전히 냉전적 시각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북5도청법도 마찬가지다. 상호실천·존중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내용이다.”
다른 한 가지는 1953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꾸고 남북한의 교류·협력으로 나가야한다는 시각이다. 이 부총장은 전자를 보수적 시각, 후자를 진보적 시각으로 구분했다. 이 총장은 진보적 시각을 따른다.
“한국전쟁을 냉전시대의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평화·통일 시대를 맞아 분단의 상처를 마무리 하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 한국전쟁을 볼 때 평화체제로 전환해야한다는 이런 새로운 인식을 갖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50여 년 간 계속된 냉전시대가 2000년 무너졌다. 이 부총장은 “6·15공동선언은 한반도의 새로운 지형변화를 일으켰다”고 높이 평가했다.
6·15 공동선언 ‘답방’등 제외하면 대부분 달성
공동선언은 5개 조항이다. ▲‘우리 민족끼리’로 대표되는 자주적 통일문제 해결 ▲통일방안 모색 ▲인도적 문제 해결 ▲경제협력과 교류·협력 활성화 ▲당국 대화가 주 내용이다. 선언문 마지막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 방문이 포함돼 있다.
이 부총장은 “2항(통일방안 모색)과 답방 부분을 제외하고는 100% 달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사회 문화적 교류․협력 증가는 물론 당국간 장성급 회담 횟수도 증가했다. 이산가족 문제도 잘 진행되고 있다. 공식석상에서는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가 미흡하긴 했다. 대신 민간차원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7년 동안 가장 큰 업적이라면 말로만 외치던 상호실천을 공동선언이 이뤄냈다는 것이다. 반국가 단체다 뭐다 하는 단계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특히 개성공단에 대해 이 부총장은 “단순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평화의 지렛대로써 기능하고 있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경협은 절대 북한에만 이로운 사업이 아니다. 남한 중소기업 역시 경협을 통해 생존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 임금은 57.5불이고 서울에서 거리도 가깝다. 고효율 저비용이라는 장점을 중소기업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북이 경협을 통해 개혁개방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시너지 효과다.”
공동선언 이행을 성공적이라고 진단한 이 부총장은 15일을 전후해 평양에 다녀왔다. 공동선언 7년 성과를 기념하는 민족평화대축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부총장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남북간 쌓은 신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영대 북측준비위원회 명예공동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은 만나면 진심으로 반가워한다. 내 이야기에도 100% 신뢰 해준다. 이런 네트워킹적 신뢰를 쌓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남측의 진정성이 북한 국민 일반에게도 전달됐다고 본다. 열 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하면서 느꼈다. 다만 당국과 제도화 차원에서 요식 행위만이 약간 남았을 뿐이다.”
이 부총장이 말한 ‘당국과 제도화 차원의 요식행위’는 문제가 된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의 자리배치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과 관련해 이 부총장은 말을 아꼈다.
평화조약 체결보다 평화체제 구축을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 부총장은 평화조약 체결보다는 평화체제 구축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법상 평화조약은 분단국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평화조약은 국경조약 등이 포함돼야한다. 분단국가인 남북은 평화조약 상의 영토 손해배상과 처벌조항 등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 실질적으로 평화체제가 적합하다. 평화체제는 전쟁이 재발할 여지가 없는 군사조약이 있는 상황만으로도 체결 가능하다.”
전쟁 재발여지가 없는 군사조약은 1991년 남북간에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정치적 화해와 상호불가침, 교류·협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5조는 평화상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양 국가가 노력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화체제의 기초가 되는 조항이다. 이후 유엔사무처에 등록하는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남한 국회 비준이 가장 시급하다.”
이 부총장은 “북한은 나름대로 비준을 받았다”며 남한 국회의 비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총장 계획에 따르면 남북기본합의서가 국회에서 비준을 받은 후 유엔헌장 102조에 따라 유엔사무처에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제법적 위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국제법상으로 인정받는 것은 타국가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 미국과 여타 국가들이 한국의 평화통일에 협조하도록 하는 법적인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 내부거래에 대한 국제무역기구 등의 제재조치도 막을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비준은 이 부총장이 세운 4단계 평화통일 방안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 부총장은 ‘화해협력-평화체제 구축-남북연합헌장 체결-1민족 1국가’ 평화통일 단계를 구상해 놨다. 화해협력 단계인 현재에서 2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남북기본합의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체제의 핵심당사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다. 1953년 맺은 정전협정에서 남한이 협정 체결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총장은 평화회복을 위한 종전선언의 당사자는 남북이 돼야한다고 주장한다.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회복 문제는 남북이 당사자가 돼야한다. 평화 보장은 중국과 미국이 협력해야한다. 내가 주장하는 ‘2+2평화체제’의 핵심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하는 6개 국가가 다자간 평화회의를 논의할 수 있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한 국방부도 남북간의 대화를 활성화 시켜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부총장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활성화시키고 실무위원회, 남북장성급위원회가 남북간 신뢰구축을 위해 전향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한군의 냉전적 입장을 서서히 고쳐야 한다는 이 부총장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이 부총장은 “북측이 느끼기에 전작권 없는 상대는 허울일 뿐이기 때문”이라며 신뢰를 쌓고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전작권 환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회에 ‘남북기본합의서 비준’ 기대할 수 있을까
국회가 남북기본합의서를 비준하는 것도 난관이다. 이 부총장은 “국회가 다루는 남북관계 법안들이 여전히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 한다”고 말했다. 온탕에 있는 법으로 이 부총장은 남북관계발전법률을 들었다. 민족 내부거래를 인정하고 민간교류를 투명하게 했다는 판단이다.
여전히 ‘냉탕’에 있는 법도 있다. 통일교육지원법 11조가 대표적이다. 통일교육지원법 11조는 ‘교육내용이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어긋날 때 통일부장관이 고발’하도록 하고 있다.
이 부총장은 “강정구 교수나 손석춘씨를 강사로 초대하면 통일부가 여러 차례 경고장을 보내고 개선되지 않으면 고발장을 보낸다”며 “헌법에 명시돼 있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존중이라는 조항이 법률에 재규정 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평화통일 시대에 맞는 남북관계 법안의 전제 조건으로 이 부총장은 ‘북한 체제 위협 조항이 없어야한다’고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북한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새터민이 증가하면 남북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남북기본합의서 비준동의에 앞장서라. 국회에 대한 이 부총장의 당부다.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