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 오름을 가기 위해 중산간도로를 택했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드라이브코스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해안도로다. 반면 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중산간도로를 달려 보면 자연 속에 푹 빠질 수 있다.
오밀조밀 어깨를 겨룬 제주오름과 그 속에 피어나는 토종의 야생화, 현무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제주 돌담, 중산간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사람 사는 냄새, 한적한 중산간도로에서는 제주인의 삶의 흔적이 듬뿍 담겨 있다. 광활한 목장 길에서 잠시 자동차를 세우고 자연을 훔쳐보는 맛, 고향이 이만큼 따스했던가?
길 눈이 어두운 내게 따라비 오름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를 두서너 번. 표선면 가시리 2.8km의 농노 끝에 만나는 따라비 오름은 온통 수풀에 덮여 있었다.
6월 하오에 만나는 따라비 오름은 심심한 듯 하품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깊은 산속에 혼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봉고차 한 대가 들어오더니, 대여섯 명의 오르미들이 차에서 내렸다. 친구를 만난 듯 기뻤다. 그날 오름의 길잡이는 이름 모를 한 아저씨였다.
삥이를 아세요?
농부의 땀이 배인 더덕 밭을 가로질러 따라비 가는 길은 등반로가 없었다. 수풀 속에는 양치식물이 쑥쑥 자라고 있었으며 청미래덩굴이 열매를 키워갔다. 입구에서 중턱까지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중턱에서부터 시작되는 등반로는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 오름 자락에서 만난 우리는 초면이었지만 길을 걸으며 어린시절 추억을 재생시켰다. 마치 억새 무리 같은 가을동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느낌을 선사한 것은 따라비 오름을 뒤덮은 삥이(삐비 제주사투리)의 물결. 앞장선 오름길라잡이 아저씨는 삥이를 한웅큼 뽑더니 "삥이를 아세요?"라며 어린시절 추억을 되살렸다.
"우리 자랄 땐 산에서 뽑아온 삥이로 삥이치기를 하며 놀았죠!"
"그때는 삥이 속 내용물을 잘기잘기 씹으면 껌을 씹는 기분이었어요."
따리비 오름 기슭에는 저마다 추억여행 스토리가 이어졌다. 낯선 사람들과의 오름등반은 재미가 쏠쏠했다.
6개의 봉우리 능선 걷다보면 탄성이 절로
누가 제주를 '척박한 땅'이라고 말했던가? 풀숲을 걷던 우리는 해발 342m 능선 위에 선 순간 탄성을 자아냈다. 따라비 오름 정상은 순하고 여린 풀섶이 마치 초원을 연상케 했다. 6월 따라비 오름 정상에 펼쳐진 풍경은 동화의 나라 같았다. 두 팔을 벌려 풀냄새를 맡는 오르미들의 모습에서 자유가 느껴졌다.
쑥부쟁이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진 개미취가 풀섶 친구가 되어 준다. 능선과 능선이 연하여 6개의 봉우리를 만들고, 분화구 위에 분화구가 누워 있는 따라비 오름의 신비.
하지만 6개 봉우리는 높이가 다르다. 낮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경사가 심한 높은 봉우리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의 굴곡처럼 순탄하고 험한 길을 체험하게 된다. 낮은 봉우리를 오를 때는 정상을 꿈꾸지만, 정작 높은 봉우리에 서면 산 아래를 굽어본다. 마치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 같이.
수도하는 기분, 그리고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세상이 한눈에 보이는 착각.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선 순간 갖가지 감흥이 엇갈린다.
3개의 분화구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바람 많은 곳이 제주도라지만, 제주오름 분화구에서는 바람도 숨을 쉬지 않는다. 분화구 속에는 하얗게 늙어가는 삥이(삐비) 물결도 얌전하다. 따라비 오름의 분화구는 고요와 적막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야생화가 정원을 이뤘다.
깊이가 각각 다른 3개의 분화구는 모양과 특색이 각기 다르다. 완만한 봉우리와 연계한 분화구는 넓고 밋밋하다. 높은 봉우리와 연계한 분화구는 그 깊이 또한 깊으며 좁다.
3개의 분화구는 작고 소담스러운 놀이터 같았다. 고운 풀섶을 밟고 산책하는 기분. 이럴 때 튀어나오는 적당한 감탄사는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제주오름 분화구 속을 들어가 보면 그저 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따름이다.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는 용암 암설류가 작은 언덕을 이뤘다. 봉긋봉긋 솟아난 알오름 위에 죽어서도 오름중턱에 묻히는 제주사람들의 삶이 흔적처럼 잔재했다. 알오름과 묘지는 조화를 이루며 봉긋봉긋 솟아 있었다. 오름에 살다 오름 위에 묻힌다는 제주사람들, 오름 위를 걷다보면 생태계의 질서는 물론 인간의 순리가 함께 존재한다.
분화구 방사탑 누구 소원 담았나
인간의 욕망은 따라비 오름 정상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하나하나 돌을 쌓아 탑을 이룬 기원탑, 민간신앙이자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돌무덤이 분화구를 지켰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현무암의 예술 방사탑, 제주인들에게 방사탑은 액운을 막으려는 기원탑이기도 하다.
마을 한 켠에 세워진 방사탑은 마을의 액운이나 불길한 징조을 몰아내고, 바닷가 근처의 방사탑은 해상안전, 그리고 전염병 예방과 아이를 낳고 보호해 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렇다면 따라비 오름 분화구 안에 쌓아 올린 대여섯 개 방사탑은 누구의 소원을 담았을까? 아마 화재예방에 대한 방사탑이 아닐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분화구 기원탑을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된다.
한 가족을 거느린 '땅 할아비'
따라비 오름의 유래는 해학적이면서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따라비라는 용어는 '따애비, 땅하래비'로 불려져 할아버지라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이는 따라비 정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따라비 오름을 두고 그 신비와 위엄이 할아버지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니 3대가 모여 사는 오름 대가족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참 신기하다. 큰아들 장자오름과 작은 아들 새끼오름, 어머니 모지오름을 조망할 수 있었다. 특히 손자오름은 따라비에서 조금 떨어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자리잡고 있다.
6개의 봉우리를 발로 터치하며 돌다보니 어느새 여름해가 기운다.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제주오름.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따라비 오름, 나는 하산길에 따라비 오름의 겨울 이미지를 가슴에 담았던 시인 고성기님의 '따라비오름'을 읊어보았다. 제주오름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다.
그대 앞에선 된바람도 녹느니
강함을 이기는 것은 결코 힘이 아니었다
바람 흘려보내며 고집도 닳고 닳아
풍만한 가슴 안에선 회오리도 쉬느니
그다지 높지 않아도 볼 만큼 보여주는
높이 올라 멀리 보는 새가 아닌 사람에게
온 종일 분수를 가르쳐
명상하는 보살이네
- 고성기님의 따라비오름 중에서
| | 신비스런 3개의 분화구 따라비 오름 | | | |
따라비 오름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62번지에 소재해 있다. 표고 342m, 비고 107m, 둘레 2,633m로 원형분화구와 말굽형의 복합 화구를 이뤘다. 봉우리는 6개로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따라비 오름 주변에는 장자오름, 모지오름, 새끼오름 등이 있다. 따라비 오름유래는 따애비, 땅하래비, 따래비로 와전 오름의 할아버지로 유래되고 있다.
따라비 오름에는 가을 억새가 진수며, 물매화 산박하, 개미취 등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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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길 : 제주시 16번도로-표선면 t가시리 사거리- 성읍리쪽 100m지점 좌회전- 2.8km의 농로-따라비오름으로 1시간정도가 걸린다. 따라비 오름 6개의 봉우리 능선을 걸어보는 데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제주오름 등반시 오름을 훼손시시키는 일을 삼가합시다. 등반로는 정해진 길로 다닙시다.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 <김강임의 오름기행>에도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