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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자연매장지 'Sun Rising Natural Burial Groun'
ⓒ 이형웅
지난 20일 영국을 다녀왔다. 영국은 지난 1993년부터 환경친화적인 자연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자연매장이란 땅속에 묻는 행위는 같으나 매장시 사용되는 묘석대신 기념 나무를 가진 삼림지대의 묘지로, 일체의 인공물을 사용하지 않는 매장방법이다. 또 금속, 석물, 석유류 제품 등의 분해가 되지 않는 소재는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 버드나무, 펄프, 씨글래스, 젤라틴 등의 생물분해성 소재로 된 장례용품만을 사용한다.

영국에서의 화장(火葬)은 1885년 처음 시작됐지만 40년 뒤인 1925년에 와서야 100명 정도가 화장을 하게 되었다. 반면 자연매장은 1993년에 처음 실시하여 지난해 1만 여명으로 증가했다. 화장에 비해 증가율이 엄청나게 빠르다. 2010년에는 전체 사망자의 12%인 7만2000명이 자연매장을 실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흔히 전통적인 매장의 폐단으로 지나친 석물사용과 토지의 가용면적이 크다는 점을 든다. 이런 점 때문에 화장의 장법이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국내도 마찬가지이다. 매장에 이어 화장이 두 번째 선택이었다면, 자연매장은 영국의 세 번째 선택이다. 지금 영국은 이 세 번째 선택에 집중하고 있다.

"묘지=자연, 이것이 정답이다"

▲ NDC의 마이크 자비스씨.
ⓒ 이형웅
1993년부터 영국의 자연매장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 NDC(Natural Death Centre)를 방문했다. 이 단체의 매니저 마이크 자비스는 자연매장에 대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눈썹이 있다는 것과 매장을 한다는 점이다. 매장은 네안데르탈인 때부터 있어온 몸에 밴 습관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실시하고 있는 장법"이라고 설명했다.

자비스는 "영국은 화장율이 70%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지만, 정서상의 거부감과 화석연료를 사용함에 따른 비용과 환경오염이 문제시 된다"며 "지난 93년부터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해 인류에 가장 자연스러운 장법인 매장의 형태를 그대로 취하고 문제가 되었던 토지의 가용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한 형태가 자연매장"이라고 말했다.

환경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토지의 가용문제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묻자 그는 "기존의 묘지는 도시근교, 상업지 등 인간의 생활반경 안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곳에 있지만 자연매장지는 녹지, 산림 등 인류가 가꾸고 보존해야 되는 자연지역에 위치한다"면서 "이 곳에는 아무런 인공물이 없으며, 자연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 매장된 시신은 그대로 자연의 양분이 되어 그 지역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고 답했다.

자비스는 또 "자연매장지는 묘지로서 인간이 사용하려는 장소가 아니라 대자연의 품속에 인간이 스며들어가는 장소로 영원히 보존되는 곳이기 때문에 토지의 가용문제는 있을 수 없다"며 "묘지는 또 다른 용도로 재개발될 수 있지만 산림과 숲 등의 자연은 영원히 보존될 수 있으며, 특히나 자연매장지는 그 보존가치가 더욱 상승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자비스는 "묘지=자연, 이것이 정답"이라는 글씨를 직접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NDC는 지난 1993년 만들어진 시민단체로 영국 외에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4개국에서 활발한 자연매장 보급 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은 2007년 6월 현재 233개의 자연매장지가 있다.

버드나무 재질 관, 생분해성 수의 등 에코상품 인기

▲ NFE2007에 출품된 친환경 관(버드나무 줄기로 만들었다)
ⓒ 이형웅
▲ 해양산골용 유골함과 생물분해성 수의
ⓒ 이형웅
영국 방문 기간 중 장례박람회 'NFE 2007'이 워릭셔에서 개최됐다. 매년 개최되는 장례박람회이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종전과 같이 묘지에 사용되는 석물과 일반 관 등의 장례용품도 출품되었지만 과반수가 친환경 장례용품인 '에코상품'이었다. 영국이 친환경 장묘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다.

장례용품도 주로 자연에서 쉽게 분해가되는 소재가 대부분이다. 버드나무 재질의 관, 생분해성 소재의 수의, 젤라틴 성분의 유골함, 산골용 용기 등 모두가 6개월~1년 사이 완전 분해되는 소재들이다.

특히 해양산골용 유골함은 바다속 해초를 가공하여 만든 시글래스 성분이라, 물에 넣자마자 바로 분해가 시작된다. 원래 바다에서 취한 소재라 해양생태계에 아무런 해가 없다고 한다.

기존 장례용품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그다지 볼품은 없지만,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정부차원의 지원과 각종 혜택이 있어 신규업체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신규로 진입한 회사들이 자연매장 상품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가족 참배도 허용 안해... 자연 그대로

▲ 자연매장지.
ⓒ 이형웅
▲ 시신과 유골을 매장해 놓은 장소
ⓒ 이형웅
NDC에서 추천한 자연매장지 'Sun Rising Natural Burial Ground'를 가봤다. 런던시내에서 90마일 떨어진 'Cotswold'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도로 옆에 있어 다른 곳보다 이용이 편리한 곳이라고 한다.

경치 좋은 시골, 작은 마을에 한적한 목장처럼 보였고, 묘지라는 느낌은 없었다. 인공물이라곤 나무로 만든 작은 표식과 입구의 울타리, 중앙의 라운드하우스 뿐이다. 자연 매장시 작은 묘목을 심고, 이 묘목이 자라 나중에 큰 숲을 이룬다는 개념이다.

영국의 자연매장지는 묘지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추모라든가 참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식당도 없고 유가족의 편의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화장실은 외부에 설치되어 있어 자연매장지 내에서는 볼일을 볼 수 없다. 중앙의 라운드 하우스의 용도는 비를 피하는 장소로만 사용된다고 하며, 이 또한 친환경 자재로만 지어졌다. 일반차량은 출입할 수 없고 별도의 전기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시신의 매장구역과 유골의 매골구역이 따로 있으며, 나무로 만든 작은 표식 외에는 인공물이 없다. 자연매장에 사용되는 관과 유골함은 모두가 생물분해성 소재이며, 간혹 관을 사용하지 않고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용시 사용기간을 명시하지 않으며, 풍광 좋은 자연의 숲으로 가꾸겠다는 약속만을 명시한다고 한다. 주위의 울타리는 짐승의 출입을 막는 용도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또 최근의 수목장이든 모두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기존의 묘지시설이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장묘형태라면, 영국의 3번째 선택 '자연매장'은 인간이 아닌 자연에 초점을 맞춘 장묘형태이다. NDC의 자비스가 말하는 장묘시설에 대한 명쾌한 해답 "묘지=자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퓨너럴뉴스>(www.funeral.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연매장,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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