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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휙 펼치면 설치 끝. 텐트 멋지죠?
한번 휙 펼치면 설치 끝. 텐트 멋지죠? ⓒ 조명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아니지만 우리 집은 제법 반듯한 사칸 한옥집이다. 이 마을에 대대로 터 잡고 사시던 목수 할아버지가 직접 뒷산에서 고른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짚을 섞어 다진 흙벽으로 채워 겨울엔 무진장 추운 것이 탈이지만, 이사 와 4년 넘도록 별 불편 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한 안방을 놔두고 작년 여름부터 옹색하게 모기장 텐트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모기 무서워 그러냐고? 아니다. 모기 정도야 모기향이나 방충망 정도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모기보다 더 무서운 것, 바로 지네 때문에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공기 좋은 시골에 살고 싶지만 벌레 무서워 엄두를 못 낸다는 친구 말에 콧방귀를 뀐 적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벌레 때문에 전전긍긍할 줄은 몰랐다. 쥐새끼나 지렁이, 개미, 모기 파리, 나방…. 이런 종류들은 얼마든지 봐줄 만하다.

그런데 한여름이면 불쑥 나타나 나를 기절시키는 뱀이나 지네 이 둘은 아무리 적응을 하려 해도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천적 중에 천적이다. 작년에는 10cm가 넘는 대형 지네가 손님을 물어 병원으로 뛰어가는 소동도 일어났고 또 한 번은 손등이 따끔해 깨어보니 퍼런 형광빛이 번쩍거리는 지네가 내 손등을 지나 요 위로 기어가는 것을 보고 온 밤을 새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다.

아, 처음 이사 왔을 때 전 주인 아주머니께서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는 바닥에 있는 옷가지나 옷걸이에 걸린 옷을 탁탁 털어 입으라는 주의사항을 주기에 뭔 소린가 했더니 바로 지네 조심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하긴 이웃 마을에 사는 지인의 아들이 옷걸이에 걸린 바지를 입다가 그 속에 숨은 지네한테 물려 혼이 나기도 했단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면 소재지 중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 바지가랭이 속에서 지네가 툭 떨어져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고 뛰쳐나가고 그런 소동이 없었단다.

어쨌거나 올 여름도 어김없이 지네가 나타났다. 5월 초부터 새끼 지네가 출몰하더니 점점 큰 것이 나타나 나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네 때문에 숙면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간첩 잡는 국정원 요원 같이 밤이고 낮이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닌다.

이러자니 보통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방 구석구석 독한 바퀴벌레 약도 뿌려보고 외출을 할 때에는 펑 터지는 살충제도 터뜨려봤지만 지네 퇴치엔 소용이 없었다. 머리를 싸매며 묘안도 짜보고 이웃에 사는 사람들 만나면 묘수를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지만 "시골엔 다 있는 것이여…" 하면 그뿐이었다.

간단하게 접어 벽에 걸면 끝
간단하게 접어 벽에 걸면 끝 ⓒ 조명자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로 신의 계시처럼 해결책이 나타났다. 바로 모기장 텐트. 어찌나 촘촘하게 짜졌던지 지네는커녕 모기나 하루살이까지도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었다. 게다가 금상첨화는 모기장과 달리 튼튼한 바닥 천까지 있으니 그 어느 벌레도 쳐들어 올 수 없는 제품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 돈 내고 물건 사면서 그렇게 감사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이젠 여름이 와도 아무 걱정이 없다. 매일 밤 텐트 휙 펼치고 그 속에 들어가 지퍼 닫으면 지네고 뭐고 철옹성이 따로 없다.

더구나 5인용 텐트를 샀으니 남편이 와도, 딸이 와도 걱정이 없다. 마치 어느 계곡에 온 듯 텐트 속에서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없던 정도 새록새록 일어날 정도로 정겨웠다. 딸은 텐트 속 숙영이 마치 엄마와 함께 야영을 하는 것 같아 너무 좋다고 야단을 한다.

남편과 함께 텐트를 칠 때마다 습관적으로 "너무 잘 한 일이야"를 외친다. 이번 주말엔 딴 짓을 하느라고 남편이 텐트를 펼칠 때 아무 소리도 안했더니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정말 너무 잘 한 일이야."
"응, 뭣이?"
"뭐긴 뭐야. 당신이 텐트 펼 때마다 하는 대사를 안 하길래 내가 대신 했지 하하하~~"
#지네퇴치#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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