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항구, 다르에스살람으로
여행 8일째(1월 9일) 새벽 6시 모시를 출발한 고속버스는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을 향해 7시간을 달린다. 이른 시각이지만 버스는 현지인으로 가득하다. 버스의 여자 승무원이 마치 비행기의 승무원처럼 사탕과 병에 담긴 음료수를 나누어 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몇몇 마을을 지나면서 승객이 내리기도 하고 더 타기도 한다. 좌석이 부족할 때에는 보조의자를 이용해 통로에 앉는다. 들르는 마을마다 옥수수나 삶은 계란을 팔기 위해 버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버스기사는 들르는 마을마다 자루에 가득 담긴 숯이며 살아 있는 닭, 계란 등을 샀다. 고속버스가 아니라, 기사의 장보기 버스를 얻어 탄 것 같다.
늙은 여자 혼자 열 남자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음주주'라고 부르는 바나나 숯불구이를 많이 사 먹었다. 마치 군고구마 맛인데 목이 메어 많이 먹긴 부담스럽다. 아프리카에서는 바나나를 삶거나 찌거나 굽거나 튀겨서 끼니로 먹는다.
우리는 바나나를 열대과일로만 알고 있지만 우리가 과일로 먹는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있는 500여종 중에 일부에 불과하다. 삶아먹고 튀겨먹고 구워먹고 술을 담가 먹는 바나나의 종류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바나나는 나무를 심은 지 1년 후부터 열매가 열리는데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지 2개월이면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2개월 후면 그 자리에 또다시 열매가 열린다. 잎은 가축의 먹이로 먹이거나 바구니를 짜는 데 쓰인다. 또한 별 관리 없이도 잘 자라기 때문에 '늙은 여자 혼자 열 남자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유용한 작물이다.
외국인은 현지인의 두 배의 배삯
오후 1시 반,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일찍이 동아프리카 연안에서 무역업으로 활약한 아랍계 사람들이 이용하던 항구답게 그 이름도 '평화로운 항구'라는 뜻의 아랍어로 붙여졌다. 지금도 탄자니아의 입법 수도는 내륙 중심에 있는 도도마이지만, 항구도시 다르에스살람이 사실상 탄자니아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다르에스살람과 잔지바르 사이를 운행하는 비행기가 있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페리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해서 가격을 물어보는데 35달러.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그러나 현지인은 1만6500실링으로 외국인에 비해 절반 가격이다.
페리의 출발시간이 오후 4시이다. 원래 계획에는 여유 시간에 시내투어를 계획했었지만 긴 버스 여행과 더위에 지쳐 시원한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페리를 탈 시간이 다가오자 선착장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분명 처음부터 앞쪽에 줄을 섰는데 도무지 통로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다. 현지인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머리에 올리고도 잘도 나아간다. 가까스로 배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자리싸움이다. 배낭을 놓을 공간만 겨우 확보했다.
검은 해안, 잔지바르
인도양의 바다에는 예전 페르시아 상인들도 탔다던 다우선이 지나가고 있다. 배를 탄 지 한 시간 후 공사 중인 '경탄의 집'과 함께 잔지바르 항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산등성이들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 길고 낮은 섬인 잔지바르는 크기가 제주도와 비슷하다.
잔지바르(Zanzibar)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잔지(Zanzi:흑인)와 바르(Bar:사주해안)의 복합어로 '검은 해안'을 의미한다고 한다.
선착장에는 출입국 관리소가 있었다. 잔지바르에 가려면 탄자니아의 비자가 있어도 다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미리 여권을 준비하지 않은 여행자들은 복대 속에 깊이 숨겨놓았던 여권을 꺼내느라 정신이 없다. 아는 것이 힘. 미리 준비한 여권 덕분에 가장 먼저 수속을 마친 나는 여유있게 혼잡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한 국가 안에서 다시 한 번 입국수속이 필요한 까닭은 지금의 잔지바르가 오랫동안 탄자니아의 섬이 아닌 독립국으로 지냈던 역사 때문이다. 비록 1964년 본토의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쳐서 탄자니아 되었지만 오늘 날까지 잔지바르의 독립 요구는 계속 되고 있다.
스톤타운, 미로 속을 헤매다
잔지바르의 중심은 섬 서쪽으로 돌출한 반도에 있다. 크릭로드(Creek Rd.)와 바다로 둘러싸인 삼각형의 모양의 시내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아랍인들의 석조 가옥촌이 들어서 있어 스톤타운이라 불린다.
예약한 숙소를 찾아 스톤타운으로 들러섰다. 스톤타운은 화려하게 장식된 대문과 최소 2층 이상인 높은 집들로 빽빽하게 미로를 이루고 있었다. 나에게는 어지간해선 헤매지 않는 방향 감각에 대한 자신감과 가이드북의 상세한 지도가 있었지만, 아랍의 미로 속에선 소용이 없었다.
골목골목이 다 똑같아 보인다. 조금 전 보았던 모스크가 또 나타나고 비슷비슷한 상점과 골동품 가게는 더 헷갈리게 한다. 이젠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바보처럼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다.
길을 잃은 상황이었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랍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묘하다.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가 생각났다. 도적의 두목이 알리바바의 집을 찾고선 대문에 표시를 하였는데, 다음날 알리바바가 모든 집에 똑같은 표시를 해서 도적들이 집을 찾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복면 쓴 40인의 도적들이 나타날 것만 같다. 때마침 길을 찾아 주겠다고 나서는 삐끼가 이리도 반가울 수 없다. 고맙다고 연거푸 인사를 하고 따라갔더니 그리 찾아 헤멨던 숙소는 방금까지 뱅뱅 돌던 골목의 바로 옆 골목에 있었다. 아까는 왜 이 골목을 지나쳤을까? 삐끼의 대가가 아깝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대문이 부의 상징
다음날 아침, 시내 구경을 나섰다. 어젯밤 헤매고 다녔던 골목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좁은 골목을 사이로 빽빽하게 지어진 집들은 산호 분쇄물과 모래로 두껍게 벽을 만들어서 건물 안은 시원하다. 건축양식은 아랍의 양식과 인도양식이 섞여 있는 것이다.
잔지바르의 대표적인 것이 집집마다 각종 문양으로 조각으로 장식된 문이다. 문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우냐에 따라 그 집의 부와 가세를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문의 크기와 사용하는 나무 재질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냈다.
목재가 두꺼울수록, 열쇠가 무거울수록, 천정이 높을수록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문에 새겨진 문양들은 그 집안의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물고기는 다산을, 나뭇잎은 부를 상징한다.
문에 붙어 있는 놋쇠로 된 스파이크는 인도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집에 와서 부딪히는 경우가 있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에 놋쇠로 뾰족하게 생긴 스파이크를 박았다. 비록 잔지바르에 코끼리는 없지만 그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이젠 스톤타운의 골목에 제법 익숙해졌다. 나름의 방법도 터득을 했다. 길을 잃으면 해안도로로 나가서 방향을 잡은 후 미로 속으로 다시 들어오면 된다. 가끔 볼펜 한 자루에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친절을 베푸는 꼬맹이를 따라가는 것도 괜찮다.
덧붙이는 글 |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