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6일 화요일, <시사저널> 기자 22명은 죽었다. 사표로서 우리는 짐승의 시간을 마감했다. 긴 악몽은 끝이 났다.
스스로 관을 짜고 관 속에 들어가는 그 길은 참담했다. 어떤 이는 대성통곡했고 어떤 이는 그를 달래며 울었고 어떤 이는 그들을 지켜보며 속으로 울었다. 기자회견하는 기자도 울었고 취재하는 기자도 울었고 눈물나는 사연을 눈물 흘리며 쓴 기사를 읽는 또 다른 기자도 울었다(고 믿고 싶다).
우리가 언론 자유의 성단에 바칠 것은 지친 몸뚱이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죽음을 알리는 수많은 부고기사와 추모사를 접했다. 그 윤기 나는 말들과 넘치는 수사를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3일장이면 오늘은 우리가 묻히는 날이다. 눈 감기 전에 한 번 짖어본다. 부고기사와 추도사에 대한 소감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22명이 죽던 6월 25일 월요일, <시사저널> 기자 22명은 자결을 결심했다. 노조 총회를 통해 '옥쇄'가 최종 결정되었다. 다음날 기자회견을 잡고 신속히 보도자료를 돌렸다.
기계적인 반응이었다. 월요일 부고 예고기사는 <미디어오늘> <기자협회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 그동안 <시사저널> 사태를 줄기차게 보도하던 업계지와 인터넷 언론사에서만 써 주었다.
<시사저널> 끝내 결별할 듯(기자협회보)
<시사저널> 기자들 끝내 회사 떠나기로(미디어오늘)
<시사저널>,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나(프레시안)
"<시사저널>이여! 안녕"... 노사 끝내 결별(오마이뉴스)
예고된 죽음에 대한 부고 기사도 야박했다. 일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시사저널> 사태 보도 5대 매체'에 꼽히는 한겨레신문이 "<시사저널>은 죽고 기자들은 살았다"라는 칼럼으로 짝퉁의 죽음과 우리의 부활을 예언했다(부디 말이 씨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부고기사는 <서울신문>과 <세계일보>에 실렸고, 다음날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는 그 잔향을 전했다. 경제 신문들은 청와대의 성명에 초점을 맞춰 사표 소식을 전했다.
인터넷 <조선일보>는 침묵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제법 긴 <시사저널> 관련 기사가 실렸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사태를 조중동이 외면했다고 하지만, 인터넷 판만 두고 보자면 최소한 조선일보는 침묵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알리바이를 남겨 놓는 치밀함을 보인 <조선일보> 기사는 늘 패턴이 있었다. 맨 마지막 문단은 <시사저널> 사태와 <중앙일보> 관련성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었다.
이번 기사는 "금 사장은 1965년 중앙일보에 편집국 기자로 입사한 뒤 <중앙일보> 편집인과 부사장,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지난 2003년 4월 <시사저널> 사장에 취임했다"라고 마무리 되었다.
<동아일보>는 무심했다. <중앙일보>는 침묵했지만 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짝퉁저널에 <중앙일보> 전직들이 몸을 대주고, 현직들이 기사를 대주고, 계열사인 JES가 산소호흡기를 대고 목숨을 연명시키고 있는 가운데, 그들이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시사저널> 사태 관련 기사를 열심히 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언론이 <시사저널> 기사를 얼마나 쓰는지를 매섭게 감시하는 <미디어오늘>의 기사 스토킹은 계속되었다. <미디어오늘>은 'MBC SBS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이라는 기사로 두 방송사를 질타했다.
기자협회 차원에서 후원금을 걷어 <시사저널> 기자들을 지원했던 KBS는 유일하게 9시 뉴스에서 <시사저널> 사태를 다뤄주었다.
SBS의 침묵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MBC의 침묵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최근 삼성 애니콜 관련 고발 기사의 후속기사가 삼성의 로비에 의해서 불방되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기 때문이다. MBC판 삼성기사 삭제 사건?
보도국이 외면한 <시사저널> 보도를 교양제작국이 주워 담고 있다. 이미 2월에 <삼성공화국, 언론은 침묵하라>로 <시사저널> 사태를 고발했던 < PD수첩 >이 다시 카메라를 들고 왔다(전편 보다 나은 속편을 기대해본다. 전편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부고기사와 함께 추도사들도 쏟아져 나왔다.
정치인들, <시사저널> 추도사 쏟아내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쓴 "<시사저널> 전사들에게 박수를"이라는 추도사가 인상적이었다. 시베리아로 나온 <시사저널> 기자들과 한나라당을 탈당하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던 것일까? 고마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기자에서 전사로 진화한 것일까?
꼬박꼬박 집회에 참석해주고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성명을 내주었던 고진화 의원은 어쩐 일인지 조용하다. 하긴 이해가 간다. 지치기도 지쳤을 것이다. 성명을 하도 많이 내서 이제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더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현대판 분서갱유 사건' 고진화 의원에게 저작권이 있는 이 말을, 나중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상하게 사용했다.
짝퉁저널에 인터뷰한 것 때문에 사과 방문을 했던 원희룡 의원도 잠잠하다. 그때 원 의원은 자신보다 힘센 주자, 즉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를 설득해서 불러오겠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그 둘을 못 봤다. 그의 공약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기자 출신인 정동영 전 의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이제 번잡하게 살지 않기로 한 것인지, 재야 대부 김근태 전 의장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지도 않았는데 기사로만 왔다간 천정배 의원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친노 대선 후보들에게서도 아무 말이 안 왔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들은 바쁜 와중에 우리의 죽음을 챙겨주었다. 권영길 의원은, '독립언론의 길에 행운이 깃들기를'라고 노회찬 의원은, '<시사저널> 기자정신 아름답게 부활하라'라며.
대선후보는 아니지만 천영세 의원도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의원실의 문 앞에 붙여 있는 '짝퉁' <시사저널>에 대한 취재 거부는 계속될 것이다"라는 논평을 내주었다.
침묵하던 청와대의 '시의적절한' 애도 논평
청와대도 입을 열었다. 천호선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시사저널> 기자들이 사직서를 냄으로 인해서 이 사건이 이렇게 일단 마무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일단락을 짓게 되는 것 같은데,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꿈이 하나 또 접혀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라고 논평했다.
기사 삭제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흐르는 동안 청와대는 조용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한지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청와대는 잠잠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사표를 내기로 한 지 6시간도 안 되어 청와대는 애도했다. 너무 빠른 논평 혹은 시의적절한 논평, 성은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진정한 시사 저널리스트들에게'라는 민주노동당 논평은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들었다. <시사저널> 노조 후원을 위한 일일호프 날 한 구석에서 이지안씨와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던 황선 부대변인은 "후원 주점은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성황이었으나 아주 많은 날 당신들의 곁은 한산했습니다"라고 말했다(그때 함께 술을 마셨던, 심상정 의원 캠프에 간 이지안씨는 뭐하시나?).
'<시사저널> 사태 진상조사특위'까지 꾸리며 호들갑을 떨었던 열린우리당은 '<시사저널> 사태가 끝내 각자의 길로 가게 된데 유감을 표한다'고 건조한 논평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에 나도 논평을 드리겠다. '<시사저널> 사태가 기자들의 전원 사표로 끝나는 동안 진상조사를 하지 않은 열린우리당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거리에 나앉게 되었는데, 때맞춰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가 끝나면 좌판을 펴고 신매체 캠페인에 나설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 의식이 부족하면 염치가 없어진다. 말로써 위로하지 말고 밥좀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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