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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덕에 '개천에 용 나던' 시절
초등학교 입학 이후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첫 번째 모의고사를 보던 날 바짝 긴장하고 시험을 치렀지만 석차는 기대를 벗어나 난생 처음 뒤에서 세는 것이 훨씬 빠른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강남의 부유층 아이들은 <성문종합영어>는 물론이고 <수학정석Ⅰ> 정도는 다 끝내고 고등학교에 들어왔고, 유명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과외선생에게 1:1 고액과외를 받고 있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코피 터지게 공부해도 그 격차를 줄인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단과반 1과목 수강료가 5천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만 그 당시 십만원 단위를 훌쩍 넘어서는 고액과외(?)를 한다는 아이들과 경쟁이 될 수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 다음해인 1980년, 전두환 정권이 태동한 이후 2학기부터 과외가 금지되고, 본고사가 폐지되었습니다. 과외금지와 내신과 학력고사를 통한 대입선발제도는 사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친구들에게는 희망의 소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다니는 학교가 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보충수업도 받지 않아 아무리 수업이 많은 날이라도 오후 5시 30분이면 교문 밖으로 나설 수 있었지요. 간혹 비밀과외를 하다 적발 뉴스가 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짜릿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의 명을 어겼으니 그 대가는 만만치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숨어서 과외를 한 친구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과외'는 더 발붙일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변두리 학교 출신이거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친구들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상위권대학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내신점수도 있긴 했지만 학력고사 점수가 더 중요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내신을 잘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학교 수업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학습모임을 만들어 공부도 하고 우정을 쌓는 기회도 가지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가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가난한 집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이른바 명문대에도 많이 입학했지요, 이른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월급 80%가 세 아이 교육비로...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저는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을 기르는 가장으로 이 땅에 서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때와는 너무 달라진 교육환경으로 인해 아이들뿐 아니라 저도 어지간히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학교가 너무 힘들면 검정고시도 좋고, 대안학교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입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싶어합니다. 보통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고 싶다고 합니다. 제 의지대로 아이들을 키울 수만도 없는 현실입니다. 아이들의 입장과 주장도 중요하니까요.
혹시라도 이 다음에 아이들에게 원망을 들을까 하는 마음에 최고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데 다른 아이들 하는 정도까지는 밀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요구하고요.
세 아이의 학원비는 한 달 급여의 60%를 넘어섰고,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다른 지출까지 합하면 거의 80% 정도는 아이들의 교육비로 지출되는 셈입니다. 경제적으로 만만하지 않은 부담이지요.
게다가 학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중고등학생인 딸들의 경우는 빠르면 밤 10시 30분, 늦으면 11시 30분입니다. 딸아이들이라 마중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학원 간판을 단 대형버스들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요.
늦은 밤 아이들을 기다리다 보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다 축처진 어깨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달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학원비로 고스란히 바치는 것도 부족해 피곤한 몸으로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저도 어지간히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미 눈으로 인사를 나눈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장들, 아이들 기다리다 늦은 밤거리에서 사귈 정도가 되었고, 너도나도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45인승 대형버스가 즐비한 학원을 지나다 보면 도대체 학원이 대기업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에 우리의 교육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지요. 가끔 아이들이 "아빠, 누구는 얼마짜리 과외한데"하면 깜짝깜짝 놀라지요. 문학도가 되기를 꿈꾸는 큰딸이 "명문대 들어가서 과외선생 할까?" 할 때는 더 놀라고요. 속으로는 "그래, 너한테 들어간 과외비가 얼만데, 본전 다 뽑아야지"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일까 싶어집니다.
사교육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꿈꾸며
권복기 <한겨레> 공동체팀장의 이야기에 제 생각을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입시제도는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명문대학에 가기 쉽게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린 지 오랩니다. 잘 사는 아이들의 학력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아이들의 학력수준이 어떻게 높아질 수 있었을까요?
결국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된 것은 현재 입시제도 탓입니다. 학부모의 재력에 따라 결정되는 아이들의 미래, 사교육에 밀려버린 공교육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그렇게 미워하던 제5공화국의 독재자가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권복기 팀장도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 정권이 그리운 단 한 가지는 전두환 정권의 교육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그 한 가지에 대해서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권복기 팀장은 이것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지역, 계층간 할당제를 도입해서 대학 정원의 20% 이상을 농어촌 지역이나 차상위 계층 및 기초생활수급권 자녀들 가운데서 뽑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 방법이 현실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비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과외금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물론 과외금지조처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합헌화시키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사교육이 난무하는 한 아무리 할당제를 도입하고 입시에 대한 대책들이 나온다 한들 현재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당하는 고통들을 덜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땅의 모든 학부모들이 용감하게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극복하고 너도나도 과외 안 시키기 운동을 펼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외 시키는 학부모가 왕따 당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요. 역시 꿈 같은 이야기네요.
아이들은 사교육에서 해방되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그래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봐라, 저렇게 열심히 하니까 되잖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그야말로 개꿈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