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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는 분들에게는 다소 '밥맛 떨어지는' 얘기지만, 본 기자는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고3이었던 1989년에는 학력고사를 봤다. 한 반에서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도 거의 없던(아마 10% 내외) 시절로 기억된다.

부산의 사직야구장이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평범한 사립고에서 서울대에 덜컥 붙어 버렸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억세게 운은 좋았던 모양이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 난 '용'의 수가 무려 26명으로 당시 부산 최고 수준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나는 그 용한 '개천'의 덕을 많이 본 셈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로 시작한 <강남엄마 따라잡기>

▲ SBS 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포스터
ⓒ SBS
최근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이하 <강남엄마>) 첫 방송이 "개천에서 용 난다?"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는 20년 정도 일찍 나를 낳아 준 부모님께 감사했다. 용 날까, 하는 말이 100% 옳지는 않겠지만, 지금 내가 당시 우리 집안 형편으로 지방에서 고3이라면 아마 서울소재 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교육문제만큼 민감한 사안도 없는데 사교육 1번지라는 강남을 타이틀로 이렇게 코믹한 드라마가 나왔다는 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이 문제가 아니라 중학생들의 특수목적고(특목고) 진학이 화두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었다.

<강남엄마> 첫 방송에 남달리 눈이 갔던 또 다른 이유는 직전 주말에 겪었던 일 때문이기도 했다. 집안 제사로 부산에 갔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의 '사교육 실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너맘 때는 많이 자야 키가 잘 큰다는 말에 학원 끝나면 11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어학원, 수학학원, 논술학원은 이미 기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상에는 "나의 목표는 ××특목고"라고 굵게 써 붙인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공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니 삼촌은…" 하는 누님의 잔소리 때문인지 조카가 내게 묻는 질문의 절반은 "삼촌은 정말 그렇게 공부를 잘했나?"였다. 국어나 영어보다는 수학에 관한 한 내가 좀 안다 싶어 수학은 고등학교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했더니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누님의 핀잔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쏟아졌다. 현직교사인 누님도 자식교육만큼은 공교육에 완전히 맡기지 못하겠다는 그 세상물정을 내가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서울대-연고대에서 특목고 나눠 먹기로

내가 고3 때와 비교해 보더라도 지금 고등학교 수학이 더 쉬운 건 사실이다. 학력고사 문제와 수능문제는 확실히 질적 차이가 있다. 세월이 변한다고 해서 미적분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로 교과 부담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요즘엔 중학생부터 <정석>이나 <개념원리>를 풀고 있을까. <강남엄마> 속의 중학생들은 왜 벌써 토플을 공부하고 있을까. 아마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아마도 대학들이 옛날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게다. 더 많은 것들. 변별력 없는 수능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은 참으로 많은 진입 장벽들을 만들어 냈다. 온갖 경시대회, 무슨 대회 입상경력에 논술, 이제는 통합논술, 부활하는 본고사, 게다가 고등학교 등급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는 '특수목적'을 위해 설립된 특목고라는 종합선물세트로 완성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학력고사 성적순으로 서울대-연고대가 나눠 먹기 하던 것이 이제는 그냥 특목고 나눠 먹기로 바뀐 것이다. 별 노력 들이지 않고 손쉽게 성적 좋은 학생들 데려간다는 점에서 바뀐 것은 없지만.

그에 걸맞은 논리도 그럴 듯하다. 능력에 따른 차별교육, 하향평준화의 극복, 고급인재의 양성, 대학경쟁력 강화, 대학의 자율권 등등. 급기야는 이런 요구들이 국가적인 제도로 확립되도록 전방위적인 노력도 마다지 않는다. 최근에 불거진 고교내신등급 문제 또한 상위권 대학이 특목고생들의 내신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학 경쟁력의 원천은 신입생들의 능력?

이런 주장은 신문시장의 절대다수를 장악한 보수언론이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 자세한 이유를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 보수언론이 서울대 출신을 특별채용하면서까지 서울대 공화국을 구축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펜을 휘두른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마침 노무현-좌파-빨갱이-기계적 평등-경쟁력 상실이라는 그들의 기막힌 설정은 소수의 인재만을 위한 특목고 우대와 이의 상위권 대학 나눠 먹기를 인재우대-경쟁력 강화라는 자신들의 논리와 허구적으로 대립시키는 데 안성맞춤이다.

이들의 논리적 흐름을 도식적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 교육정책 흐름도1
ⓒ 이종필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바로 녹색 화살표시가 있는 부분이다. 이른바 명문대와 보수언론은 대학 신입생들의 능력(기껏해야 시험 잘 보는 능력)을 대학 경쟁력과 동일시하고 있다. 확언하건대, 대학 경쟁력의 원천을 그 신입생에게서 찾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잘 생각해 보라. 비싼 등록금 내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들이 왜 그 '쌩돈' 갖다 바치는 대학의 경쟁력을 위해 입학해야 하는가. 이는 한참 잘못된 논리다.

오히려 대학들은 우수한 교수들과 풍부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해서 세계 정상급의 교육환경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들에게 비싼 등록금 갖다 바치는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낼 의무 또한 막중하다. 그게 바로 대학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그 잘난 명문대들은 이걸 하기 싫었던 게 아닐까. 대학 경쟁력의 원천이 진정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대학 경쟁력의 정의 자체를 왜곡해 버리는 것이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해 먹기가 훨씬 수월할 테니까.

자신의 하향평준화에는 관대한 대학들

대학 경쟁력의 근원을 신입생들로 이렇게 이월해 버리면 대학으로서는 편해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명문대와 보수언론과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 기득권은 스스로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내부경쟁 해소). 그리고 새로이 설치되는 명문대 진입장벽은 그들만의 학벌 기득권을 유지·강화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높아지는 진입장벽은, 진짜 강남엄마 윤수미(임성민 분)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으로 직결되고 이는 곧 강남불패신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다시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 교육정책 흐름도2
ⓒ 이종필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대학 경쟁력 약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그 내부경쟁의 완화 혹은 해소에 있다는 점이다. 대학 경쟁력의 원천과 대학의 주요 임무를 우수학생 선발로만 한정해 버리면 그들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안 해도 된다.

내부 경쟁을 통한 자신의 경쟁력 강화라는 길을 버리게 되면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평가할 마땅한 기준이 없게 된다. 이름난 명문대 교수들이 논문을 표절해도 "뭐 다 하는 건데…" 하는 식으로 무마가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입생들의 하향평준화는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하향평준화에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그래서 대학 이후 인재를 평가하는 기준은 앞서 예를 든 한 보수언론처럼 어느 학교 나왔느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능력보다 학벌 중심으로 치닫는 외길만이 우리를 기다릴 뿐이다.

능력보다 학벌로 평가하는 사회의 미래는?

결국, 명문대와 보수언론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입시제도의 결말은 망국(亡國)일 수밖에 없다. 이미 없는 집 자식들이 좋은 대학 들어가거나 혹은 다른 식으로 사회의 중심으로 진출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상위 기득권이 자기들만의 순환구조로 이 사회의 모든 중요한 문제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커녕 아예 개천에다 독약을 푸는 셈이다.

아래위 계층 간의 활발한 교류와 이동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것은 굳이 로마의 패망을 예로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람 몸의 혈류가 막혀 동맥경화로 쓰러지는 것처럼 이런 사회는 100년 앞을 기약하기 어렵다.

평범한 강북엄마나 지방엄마들이 강남으로 진출하거나 혹은 강남엄마들과의 피 튀기는 출혈경쟁을 통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나는, 혹은 내 자식은 달라, 라는 기대감은 아예 갖지 않는 게 낫다. 오히려 이런 기막힌 게임 룰 자체를 뒤엎어 버리는 게 훨씬 확률을 높이는 길이지 않을까.

다른 한편으로, 역사상 가장 힘없는 대통령이라는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는 (그것도 임기 말인데) 한마디도 못하던 사립대 총장님들이 뒤돌아서자마자 구시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분들이 총장으로 있는 대학에 우리 자식들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주요 신문 편집장들이 대통령과의 대화에는 직접 나오지도 않고 다음날 일제히 비난기사를 쓰던 모습이 겹쳐졌다.

총장이든 편집장이든 할 얘기는 한다는 분들이 최고 권력자 면전에서 좀 더 당당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지. 진작부터 그랬다면 아마 그들이 강남엄마를 앞세워 전국의 수험생 엄마들을 인질로 붙잡아둘 만큼 비열해지지는 않았을 게다.

오늘도 나는 이 재미난 드라마를 보게 되겠지만, 지난주의 경우처럼 드라마 보는 내내 초등학교 6학년 부산 조카의 한마디가 나의 귓전을 계속 맴돌 것 같다.

"근데 삼촌, 서울 대치동에는 정말 좋은 학원들이 그리 많나?"

태그:#강남엄마 따라잡기, #교육정책, #명문대, #보수언론, #특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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