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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민어 ⓒ 최성민
장마가 끝나면 복더위가 시작된다. 복더위에는 으레 '복달임'(여름철 복날에 보신 음식을 먹는 일)이 따른다. 예로부터 남도지방에서 복더위는 '민어 철'로 불리어 왔다. 민어는 예로부터 '복달임'의 으뜸 음식이었다. 삼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었다고 하니 민어가 복달임 음식에서 차지한 바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생선의 싱싱한 맛을 으뜸으로 치는 남도지방에서 민어는 찜보다는 주로 회나 탕으로 먹었다. 민어(民魚)라는 이름 자체도 '민초들의 물고기'라는 뜻이어서 예전에 민어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생선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민어가 잘 잡히는 서남부 지방과 서울 등지에서는 민어가 인기있는 바닷고기이었지만 민어가 나지 않는 동해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생소한 생선이었던지 민어에 대한 이야기나 민어 음식이 드물고 요즘도 민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산어보>에서 "고기 맛이 달다…"고 했는데 민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는 민어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실제로 민어회를 먹어보면 민어 살 맛이 다른 고기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달크작작한 맛을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어 살은 그만큼 달고 부드럽고 고소해서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맛을 즐길 수 있다.

넓은 바다와 기름진 갯벌을 두르고 있는 서남 해안 지방에서는 봄부터 철 따라 먼바다로부터 생선들이 알을 낳기 위해 가까이 오기에 그때마다 풍족한 미각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을 한 가지 더 갖고 있다. 벌써 초봄부터 주꾸미에서 송어, 병어, 준치, 갑오징어 등 봄 생선이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민어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민어는 병어와 준치 철이 막 지난 6월 하순부터 8월까지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풍물지리서에 민어가 골고루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민어 복달임이 서해안 전체에 고루 분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재원도 일대엔 20년 전까지만 해도 파시가 섰다고 한다.

이곳 '타리파시'는 일제시대엔 섬 주위 모래등에 초막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일본의 기생들까지 몰려들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최대 성어기인 8월에는 알 낳으러 가는 민어들의 울음소리로 온 바다가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요즘도 6월 하순부터 제일의 민어 산지인 재원도 일대엔 민어잡이 배들이 몰려들고 지도 송도위판장엔 민어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민어는 중부지방에서는 찜으로 유명하지만 신안 목포 등 남서해안 지방에서는 싱싱한 상태를 이용해 주로 회로 먹고 머리와 뼈, 내장은 민어탕으로 먹었다. 또 회를 뜨고 남은 살은 전을 부쳐 먹는다. 민어찜은 민어가 성질이 급해서 잡히자마자 죽어버리므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는 서울이나 먼 지역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으로 보인다.

민어회는 등살, 뱃살, 껍질, 부레 등 20여 가지의 부위로 나뉘어 구성된다
민어회는 등살, 뱃살, 껍질, 부레 등 20여 가지의 부위로 나뉘어 구성된다 ⓒ 최성민
민어는 회로 먹을 때 살, 부레, 껍질, 다진 뼈 등 20여 가지 부위로 나뉘어 상에 오르니 가히 생선 가운데 으뜸이요 회 가운데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껍질은 살짝 데쳐서 기름장을 찍어 먹고, 고소한 부레도 소금을 찍어 먹는다. 회를 먹고 난 뒤엔 뼈와 남은 내장을 넣어 끓인 걸쭉한 매운탕과 밥이 나오니 뱃속을 후련하게 하는 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민어회는 수컷인 수치로, 민어탕은 내장이 풍부한 암치를 쓰는 게 좋다.

민어는 서·남해와 동중국해에서 사는데, 가을에 남하해서 제주도 남쪽해역에서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북서방향으로 올라온다. 산란기는 7월~9월인데, 재원도를 지나 인천 덕적도 앞바다까지 가서 알을 낳는다. 알을 낳는 어미는 3년 이상 자란 50cm 이상 되는 것이며, 아주 큰 것은 몸길이 1m에 무게가 20kg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 물고기 중에 귀골이고 팔척장신이어서 "민어 한 마리로 수십 명이 흡족하게 복달임을 했다"는 말도 있다.

민어는 제사상이나 혼례상 등에 빠짐없이 올랐는데, 이는 비늘이 두껍고 덩치가 커서 의례상 차리는 데에 눈에 잘 띄는 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말린 민어포는 담백하고 고소하기가 굴비 못지않아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건어물의 하나이다. 또 민어찜은 담백한 맛이 뛰어나 서울에서는 도미찜보다 한 수 위로 대접을 받았다. 민어 머리 또한 매운탕 맛 우리는 데 일품이어서 '어두봉미(語頭鳳尾)'의 식도락 취향에 딱 맞는 대목이다.

민어회가 놓인 남도 밥상
민어회가 놓인 남도 밥상 ⓒ 민어
특히 민어의 부레는 생으로 소금을 찍어 먹으면 쫄깃하고 고소하며 민어탕을 끓여 먹으면 걸쭉한 맛을 낼 뿐만 아니라, 나무를 붙이는 풀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옛 노래에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 풀이 따로 없네…"라는 대목이 있다. 민어 풀은 '천년을 간다'는 접착제이다. 현재 박물관에 보관 중인 옛 고가구의 대부분은 이 민어 풀을 쓴 것들이다.

이처럼 서남 해안 생선 중의 귀족이었던 민어는 80년대 이후 남획으로 수가 격감해서 요즘은 초여름 한철 주산지인 신안과 목포 일대에서만 싱싱한 횟감을 만날 수 있다. 서울 등지에 나도는 건어물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적지 않다.

따라서 민어를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신안 지도나 임자도, 또는 목포 등지 식당을 찾아야 한다.

임자도 진리선착장 앞 신안횟집, 임자면사무소 앞 서울식당이 민어음식을 잘한다. 목포에는 옛 초원호텔 건너편 식당가에 영란횟집을 비롯한 민어회 전문식당가가 있다.

민어
민어 ⓒ 최성민
<민어 산지 지도, 임자도 가기>

▲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 무안IC(60번 지방도) → 무안 → 현경(24번 국도) → 해제 → 지도 → 지도 점암선착장 → 임자도 진리선착장

▲ 대중교통: 강남터미널(02-6282-0600) → 지도행 고속버스(우등 08:30, 일반 16:20, 5시간 소요)/ 광주 광천터미널 → 지도 점암선착장(직행 버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비슷한 내용으로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민어#복달임#신안군#임자도#재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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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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