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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미 대통령
조지 부시 미 대통령 ⓒ 미 백악관
6월 30일 한미간 FTA(자유무역협정) 서명 직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제 미국을 비자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가까워온 걸까? 실현된다면 과연 언제쯤일까?

부시 대통령의 성명이 나오자 상당수 언론들이 한국의 VWP 가입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내년 상반기중'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한미FTA 협상을 담당한 정부관계자들이 이를 유도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런 예측은 너무 성급해 보인다.

한국의 VWP 가입은 언젠가는 실현되겠지만, 한미FTA나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성명이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판단할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 실제로 미국과의 비자면제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당국자도 '내년 상반기' 전망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년 11월에도 비자면제 확대 필요성 언급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에스토니아를 방문했을 때 행한 연설에서 이미 한국과 중동구권 국가들을 언급하면서 비자면제프로그램의 확대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성명은 내용상 거기에서 더 진전된 것이 없다. 그는 "지난해 11월 우리의 가까운 파트너인 한국과 중동구권 국가들이 VW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상기시키고 "VWP를 추진함으로써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의회와의 협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이 성명이 한미FTA 서명을 계기로 발표된 것임에도 한국을 별도로 배려하지 않고, 그 동안 VWP 적용을 검토해온 불가리아 사이프러스 체코 에스토니아 그리스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중동구권 국가들과 한 묶음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국의 VWP 가입은 한미 양자관계 차원에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 VWP의 확대 여부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결정에 앞서 의회의 논의 결과에 좌우될 사안이라는 점이 성명에서 거듭 선명하게 드러났다. 즉 현재 미 의회에 계류중인 '국토안보강화법'의 입법 절차가 완료돼야 VWP 확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성명은 의회에 입법 논의의 가속화를 촉구하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국토안보강화법'의 함정

1986년 시작된 미국의 VWP에 가입한 나라는 유럽연합(EU) 초기 회원국들과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캐나다가 마지막으로 가입해서 총 28개국이다.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난 지난 2001년 이후 새로 가입한 나라는 없다.

9.11 이후 VWP 확대 논의는 어떻게 보면 출입국 보안강화란 측면의 '종속변수'로 다뤄져 왔다. 사상 처음으로 본토 피습이란 충격을 경험한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의 입국을 저지할 수 있는 출입국시스템 구축이 최대의 관심사이다. 자연히 VWP 적용대상국 확대는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6년에 걸친 이 같은 논의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상하원 합동조정위에서 심의중인 '국토안보강화법'은 VWP 가입 조건으로 ▲비자거부율이 일정 비율을 넘지 않을 것 ▲지문 등 생체정보가 담긴 전자여권을 사용할 것 ▲미국정부가 전자 출국통제시스템을 구축할 것 등 세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비자거부율은 당초 3% 이하를 요구했으나 올해 3월 상원을 통과한 법안에서는 이를 10%로 대폭 높였다. 현재 합동조정위 논의에서는 10%가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한국의 현재 비자거부율이 4% 미만이기 때문에 다소 하향 조정된다고 해도 별 영향은 없을 전망이다.

둘째, 전자여권 사용은 VWP 가입의 '필수요건'이라고 정부당국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도 전자여권 발급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계획대로 하면 내년 초 시범발급에 들어가 7월부터는 일반인도 전자여권을 발급받게 된다.

따라서 VWP 가입은 우리 사정 때문에라도 빨라야 내년 하반기이다. 게다가 국내 입법과정에서 논란의 소지도 있기 때문에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전자 출국통제시스템은 미국 의회가 행정당국에 요구하는 사항이다. 미국은 입국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지문과 사진을 찍는 입국통제시스템은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나 미국을 떠나는 외국인들을 관리하는 출국통제시스템은 예산 사정과 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 출국통제시스템을 미국 내 120개 국제공항에 모두 구축하려면 앞으로도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의회 논의에서 VWP의 조속한 확대를 추진하는 측은 1년은 너무 길다며 모든 공항에 완벽한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이라도 VWP 확대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가운데 미 비자 신청자들이 서울 세종로 미 대사관 밖에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가운데 미 비자 신청자들이 서울 세종로 미 대사관 밖에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한국인 미국 방문객 수 7위, 유학생 수는 1위

한국인은 미국에게 관광ㆍ유학 시장에서 '큰손' 고객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영사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약 75만명으로 전체 7위를 차지했다. 유학생 수는 9만3천여 명으로 단연 1위다.

지난해 35만4천여 명이 미국비자를 새로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7만1223건이 학생비자다. 한국인이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미국도 이 같은 수요를 처리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담벼락에 언제나 길게 늘어서있는 줄은 이런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비자거부율과 전자여권 발급 조건 외에도 미국에서 때때로 문제가 되는 한국인 성매매 조직의 적발이나 조기유학 학생들의 불법 취학문제 등이 한국의 VWP 가입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한국보다 미국 방문객 수가 훨씬 적은 나라들도 VWP에 가입했는데 한국이 제외된 것은 불공평하다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9.11 이후 출입국 관리시스템 강화에 대한 미국 내 논의가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VWP 적용국가를 늘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한미FTA 서명이 이뤄졌다고 해서 한국을 그 동안 확대대상에 올라있던 다른 중동구권 국가들과 분리해서 처리할 것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부시 대통령의 성명은 실질적인 의지가 담겼다기 보다는 한국에 FTA 재협상을 요구한데 따른 반대급부로서 '립 서비스'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게 볼 때 미국비자 면제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이뤄질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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