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그의 새 고향에서 재미있는 것을 한 가지 목격했습니다. 다름아닌 해적 심볼이었습니다. '크로포드 파이어리츠'(Crawford Pirates)가 그것입니다.
크로포드는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텍사스 주지사 시절, 심혈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새롭게 고향으로 선정한 동네입니다. 이 마을의 상징이 약탈자의 대표격인 해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더군요.
미국에서 심볼은 흔히 운동팀의 심볼로 사용된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때문에 심볼은 강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가 중첩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파이어리츠도 사실 미국의 여러 지역, 여러 운동팀에서 애용되는 심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범죄자로까지 취급받는 부시가 새로 고향으로 삼은 동네의 심볼이어서, 그 야릇한 인연이 더욱 눈길을 끈다는 거지요.
크로포드는 텍사스의 한복판에 있는 아주 조그만 마을입니다. 부시는 6년간 텍사스 이곳 저곳을 샅샅이 뒤진 끝에 이곳에 사저를 들이기로 결정했다고 이 마을의 할머니 한 사람이 얘기해주더군요.
크로포드는 부시 대통령이 입주한 초기, 역대 대통령 가운데 휴가가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가 툭하면 이곳의 그의 목장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바람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인구 700명 남짓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은, 그러다가 이라크 전이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한 2~3년 전 절정에 오른 유명세를 과시했습니다. 말이 유명세이지 사실은 오명을 날린 겁니다.
반전 엄마와 캠프 케이시
워싱턴의 백악관을 대신해 종종 '알짜 백악관'으로까지 통하던 부시의 크로포드를 이때 일약 세계적인 유명 도시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신디 시핸이라는 중년 여성입니다.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는, '반전 엄마'로 유명한 바로 그 신디입니다.
신디는 이라크에서 전사한 아들, 케이시의 죽음의 값어치를 증명해달라며 크로포드 목장으로 달려가 부시에 거듭 면담을 요청해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그녀는 면담이 계속해 거절되자, 아예 크로포드에 죽치고 앉아 농성을 했지요.
신디는 그때 기부자로 부터 받은 지원 등을 바탕으로, 크로포드 마을 한 구석에 땅을 사들여 아들의 이름을 딴 캠프 케이시(Camp Casey)를 세웠습니다. 캠프 케이시는 한동안 이라크 반전 운동의 상징이었잖습니까.
그런데 최근 신디가 캠프 케이시를 처분하고,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그렇잖아도 점차 하락세를 보이던 크로포드의 유명세는 바닥에 이른 느낌입니다. 텍사스의 전형적인 작은 농촌 마을이 부시라는 인물과 연결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끝에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요. 사람도 땅을 잘 만나야 하지만, 반대로 땅도 사람을 잘 만나야 팔자가 펴는 것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