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은 지난 2004년에 고인이 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의 모습이다.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 그림으로 보아서는 야자수인 것 같다.
아라파트가 PLO 의장에 취임한 1969년 당시만 해도 팔레스타인 해방은 그야말로 요원한 과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제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90만 명은 유랑민으로 전락하였다. 그처럼 나라 잃은 상황이 1969년에 당시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아라파트를 지도자로 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라파트의 의장 취임 이후 PLO는 항공기 납치, 뮌헨올림픽 사건, 자살특공대 차량폭탄테러 등의 다소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악명을 떨치면서 팔레스타인 해방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어 나갔다.
그 ‘덕분’에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74년 10월에는 아랍정상회담에서 PLO를 40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국제연합(UN)에서도 PLO를 정식 옵서버로 인정해 주었다.
또한 PLO는 1993년 이스라엘과의 오슬로평화협정을 계기로 1994년 자치정부 선언, 1996년 자치정부 출범 등의 수순을 하나씩 밟아 나갔다.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고 잎도 무성해졌으며, 무엇보다도 열매(완전독립)가 커다랗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라파트 사후에 통일적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팔레스타인은 ‘해방’은 고사하고 ‘내분 극복’이라는 당면 과제를 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파타당(Fatah Party) 당수 마흐무드 압바스와 하마스 출신 총리 이스마일 하니야가 각각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그런데 그들의 허리에 매달린 연장들은 나무를 키우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데에나 사용될 만한 것들이다.
사람 죽이는 ‘연장’을 들고 나무에 올라간 파타당과 하마스는 아니나 다를까 나무 위에서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벌인다.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열매를 바로 위에 둔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망각한 채 서로 간의 내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고지(완전독립)를 눈앞에 두고 내분을 벌인 팔레스타인은 해방과 독립이라는 목표를 스스로 망치고 있다. 아직 나무가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팔레스타인 해방이 아니라 ‘누구처럼’ 팔레스타인 분단이라는 엉뚱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현재의 팔레스타인은 완전독립이라는 목표 앞에서 서로 간의 내분에 돌입하여 독립과 해방의 꿈을 망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그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동족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이 슈자아트 알리의 동영상에서는 팔레스타인 위기의 원인을 리더십의 분열과 내분의 심화에서 찾고 있지만, 우리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또 다른 원인에 주목해 볼 수 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은 해방 역량을 내적인 데에서보다는 외적인 데에서 찾으려 한 측면이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도 민족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전체적 관점에서 본다면 내부적 역량보다는 외부적 역량을 통해 해방을 찾으려 한 측면이 더 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세력강화의 주요 방편으로 삼은 데에서도 그 점이 잘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외부적 역량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의존하다 보니,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약화라는 정세의 변화로부터 팔레스타인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레바논 같은 나라들도 모두 내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종래와 달리 미국이 이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각각의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을 만한 구심점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도 그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통일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제정세의 변화에 관계없이 자국 혹은 자민족의 목표를 견실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비단 팔레스타인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 역시 동북아 질서 변화라는 외풍을 이기고 복지나 통일 같은 국가적·민족적 과제를 추진하려면, 내부적 역량 강화를 통해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림 없는 사회통합력과 리더십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