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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마약 '치즈'의 제조 과정을 설명한 그림. 댈러스시 홈페이지에는 이 내용을 포함해 17쪽에 이르는 치즈 관련 자료(제조 방식, 증상, 위험성 등)가 올라와 있다.
ⓒ 댈러스시 홈페이지

'마약 천국' 미국에 또 다른 신종 마약이 등장했다. 이 마약의 이름은 치즈(Cheese). 미국 음식의 감초 같은 유제품 치즈와 이름이 똑같다. 코카인이나 마리화나 등과 같은 전통 마약이 경제력이 있는 성인을 위한 것이라면, 치즈는 10대를 겨냥한다.

20세 전에 마약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마약을 시도하거나 중독될 확률이 적다는 사실을 마약 딜러들은 알고 있다. 이들은 미래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치즈를 한 단위(hit)에 2달러에 불과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제조 방법과 사용법이 간단하다는 점도 이 마약이 10대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 가고 있는 이유. 거부감 없는 이름과 싼 가격, 그리고 호기심으로 많은 미국 10대들이 치즈에 손을 대기 시작해 죽음에 이르고 있다.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감기약이 주성분

치즈는 헤로인에다 타이레놀처럼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감기약을 섞어서 만든다. 대부분의 감기약에는 아세타미노펜(acetaminophen)과 다이펜하이드라민(diphenhydramine) 등의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 성분들은 신체를 이완시켜 감기 걸린 사람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한다.

마약 딜러들은 이 성분들을 헤로인의 환각 성분과 합치면 2중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치즈 제조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헤로인을 물에 탄 '몽키 주스'라 불리는 액체에다, 감기약을 사서 가루를 내 섞으면 된다. 이 액체를 전자레인지로 말리면 노란색의 치즈 가루를 얻을 수 있다. 헤로인이 2% 정도밖에 섞이지 않기 때문에 치즈 가격은 다른 마약에 비해 '껌값'인 2달러 수준이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주사기 등 기구를 이용해야 하는 다른 마약에 비해, 치즈는 빨대나 볼펜 자루 등을 이용해 가루를 코로 흡입하면 된다. 치즈를 흡입한 사람은 졸음·도취감·갈증·혼미 등을 느끼게 되고 강한 중독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치즈라는 신종 마약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5년.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댈러스 교육국이 관할 학군 학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결과, 11개 중고등학교에서 신종 마약인 치즈 관련 범죄행위 54건을 적발하면서부터다.

작년 4월 26일에는 댈러스시 서부 지역의 한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칼라 베세라(18)양이 치즈와 술을 마신 후 죽은 채 발견됐다. 치즈 관련 첫 10대 사망자였다.

같은 해 댈러스시 남동부에 있는 메스퀴트시에서 또 다른 17세 청소년이 사망한 데 이어, 올 들어 지난 2월 18일에는 15살의 중학생인 오스카 구티에레즈 군이 치즈 과다 흡입으로 죽었다. 댈러스 경찰국 마약 담당반이 9살 나이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치즈가 퍼져 있다고 발표한지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 치즈 과다 흡입으로 사망한 15세 소년 오스카 구티에레즈(오른쪽 아래 사진).
ⓒ ABC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퍼지는 치즈

댈러스 지역 신문인 <댈러스 모닝 뉴스>가 2005년부터 2년 동안 댈러스 지역의 변사자 부검 내용을 조사한 결과, 총 21명의 10대가 치즈와 관련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DEA는 현재까지 댈러스 지역 외에는 치즈가 보고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각종 통신 기기가 발달한 상황에서 치즈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치즈에 중독되는 학생 중엔 히스패닉계가 많다. 치즈를 써 본 것으로 보고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가 히스패닉, 20%가 흑인, 15%가 백인계 학생으로 나타나 한인 학생 등 아시안계는 이 마약과 거리가 먼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한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는 한인 청소년들도 치즈를 포함한 마약 사용의 무풍지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댈러스 지역 한인 신문인 <코넷>이 5월 한 달 동안 92명의 한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18%가 넘는 청소년이 마약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1%는 신종 마약인 치즈를 포함한 헤로인 사용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 사용 횟수는 '월 1~2회 미만'이 70%였으나, '주 5회 이상' 사용도 17%나 차지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또 22.5%의 한인 청소년들이 14세 이전에 처음 마약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89.3%가 '미국 10년 이상 거주자 혹은 미국 출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생활에 익숙할수록 마약의 유혹에 빠질 우려가 높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치즈, 본격적으로 단속할까 말까

치즈 사용으로 청소년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각종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텍사스주 미 연방 상원의원인 존 코닌은 치즈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치즈를 마리화나나 코카인 등 다른 마약과 같은 급의 마약으로 규정해 본격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존 코닌은 "치즈는 값이 싸고 이름 때문에 청소년들이 마약이라고 인식하지 못해 위험성이 크다"며 "청소년 마약 확산 차단을 위한 전국 기구인 '청소년 반마약 캠페인'에 치즈를 금지 약물로 등재해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의회에서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법률 제정은 오히려 치즈를 전국적으로 홍보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코닌의 주장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치즈 관련법 제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상대로 자발적인 약물 중독 테스트를 실시하는 한편, 상담 교사를 통해 약물 중독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을 상담하고 있다. 댈러스시 W. T. 화이트고교의 경우, 약물 중독 학생을 전담하는 간호사를 새로 뽑았다. 또 수업 시간에 약물 중독자의 초췌한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들이 마약을 멀리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약 천국' 아메리카의 짓밟히는 미래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즈 확산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댈러스시 약물 중독자 치료 센터인 '피닉스 하우스' 소장 마이클 헴은 <댈러스 모닝 뉴스>와 인터뷰에서 "치즈가 알려진 2005년부터 작년까지 2년 동안 치즈 관련 문의는 69건이었다"며 "반면 올 들어서는 136건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헴은 "문의의 대부분은 자기 자식이 치즈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부모들의 전화"라며 "치즈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끊임없이 새 시장을 찾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본산, 미국에서 마약 딜러들에게 10대는 블루 오션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철칙을 따르는 이들에게 반자본적인 마약 단속이 먹힐 리 없다. 신상품에 대한 소비 욕구를 교육으로 가로막기도 힘들다.

딜레마에 빠진 '마약 천국'의 명성은 계속 이어질 듯하다. 짓밟히는 건 미국의 미래다.

태그:#치즈, #신종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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