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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이 없는 섬진강 산골짜기에서 생일케잌을 만들었습니다.
빵집이 없는 섬진강 산골짜기에서 생일케잌을 만들었습니다. ⓒ 최종수
형님과 긴히 의논할 일이 생겼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참외와 토마토, 간식용 누룽지에 포도주까지 챙겼습니다. 밤길을 달려 찾아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행복한 마음은 안개낀 산허리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멀리 캐나다에서 한 지인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인적이 드문 갓길에 차를 세우고 따끈한 안부와 목소리를 주고 받았습니다. 장마의 하늘에는 별이 없었지만 내 마음에는 별이 가득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전화로 인해 영혼의 하늘에 아름다운 별들이 뜬 것입니다.

사람보다 먼저 시끄럽게 반기는 개, 푸르름에 지친 단풍나무는 가지를 축축 늘어뜨렸습니다. 그 싱그러운 가지를 스치며 마당에 도착한 자동차, 나란히 마중을 나온 형님과 형수님과 반가운 손을 잡았습니다. 저녁을 차리던 형수님이 큰 실수를 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형님 생일인데 깜빡 했어요. 오늘 저녁에서야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가 온다고 할 때 전화하셨으면 케이크를 준비해서 올 텐데요. 삶은 감자 있어요?"
"갑자기 왠 감자요."
"감자 케이크를 만들게요."
"전 하루 종일 잡초와 시름을 했더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네요."
"그럼 포도주로 생일파티를 하죠."
"식사 먼저 하게요."

참외와 가지 껍질까지 이용한 과일접시 화려하죠.
참외와 가지 껍질까지 이용한 과일접시 화려하죠. ⓒ 최종수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형수님은 설거지를 하고 난 식탁에서 과일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참외 하나를 8등분으로 깎았습니다. 토마토도 8등분했습니다. 단조로운 과일 접시에 무언가가 부족했습니다.

"형수님 요즘 피는 꽃들이 무엇이 있죠?"
"제가 밖에 나가 보죠."

참외 껍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껍질을 가위로 오려서 꽃잎을 만들었습니다.

"이 꽃 어때요?"
"앙증 맞은 게 딱이네요."

참외 위에 꽃 한 송이씩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다섯 송이를 꽂았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검은 보라색 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가지다."

4cm 정도 가지를 잘라 8등분해서 속살을 도려냈습니다.

"정말, 순발력 대단하네요. 어떻게 참외 껍질과 가지 껍질까지 이용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글쎄요, 형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발한 발상을 한 것이지요."

"형님!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사랑하는 형님아! 왜 태어났니."

주방에서 접시를 들고 안방으로 갔습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해바라기처럼 웃기만 하는 형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여보, 형님, 생일 축하합니다."
"자-, 포도주 한 잔씩 받으세요."
"시집 올 때 가져온 유리잔에 포도주 한 잔, 너무 근사한데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정말 근사한 생일케이크네요."
"산골짜기 마을에서의 깜짝쇼 치고는 너무도 훌륭한데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생일파티가 어디 있겠어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꽃과일 접시에 포도주 한 잔 정말 환상적인 생일파티였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꽃과일 접시에 포도주 한 잔 정말 환상적인 생일파티였습니다.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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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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