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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간다
마음에 담아놓고 버릴 수 없는 기억 때문에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 누구에게나 있는 징그러운 것이다. 그런 것이 외부에 존재하지 않고 내 마음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가족과 일상을 들여다 보게 하는 극단 간다(簡多)의 연극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박춘근 작ㆍ민준호 연출)가 15일까지 대학로 아트홀 스타시티에서 올려지고 있다.

안나푸르나가 뭐길래

안나푸르나는 네팔의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8000m에 해당하는 산이다. 산이라는 것이 단숨에 넘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기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산의 정상을 정복해 자신의 인생에 한 줄을 멋지게 장식하기도 한다.

그런데 안나푸르나 때문에 전도유망한 큰 아들 오민영을 잃었던 한 가족. 그들은 그 날을 잊으려 혹은 날려버리기 위해 3월에 갑작스런 폭설 탓에 정체된 고속도로 차 안에서 딸의 출산과 함께 각자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안나푸르나에 오르려고 한다.

마음 속의 안나푸르나

가족이라는 이름은 하나다. 그리고 네팔에 있는 안나푸르나도 하나다.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 수많은 별명과 소문이 존재한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여있긴 하지만 큰 아들 오민영으로 인해 마음 속에 지우고자 하는 안나푸르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가장인 아버지(우지훈)는 한때 김민종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를 줄 알았고, 여색에도 취해봤고 술도 마셔봤던 왕년에 잘 나가던 사내였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의 신경전과 어색한 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구수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쏘아붙이던 어머니(김지현)는 가족들이 서로를 위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괜시리 '주여'를 부르기도 하고 기도를 해본다.

아들 대영(김영철)은 똑똑하고 미남이였던 죽은 형 오민영의 환영을 물려받은 듯 의사가 되긴 했지만 피를 보면 토한다. 그리고 딸(구지선)은 만삭의 몸으로 작은 오빠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그녀의 남편, 사위 중기(진선규)는 민영을 잊기 위해 마지막으로 보류해 두었던 안나푸르나에 오르기로 결심하고 있다.

▲ 공연 사진
ⓒ 극단 간다

가족 안에 하나씩 자리 잡던 큰 아들 오민영과 관련된 안나푸르나라는 말은 그들 스스로를 몸서리치게 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오민영을 떠올리게 하는 갑작스럽게 눈이 오는 3월도, 안나푸르나도 몹시 기분이 나쁘다.

그런 가운데 딸의 진통이 시작된다. 하지만 피를 보면 토하는 의사 대영은 자신의 의사면허가 정지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발작을 일으킨다. 치부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가벼워지는 것일까. 며느리(박보경)의 발빠른 행동으로 대영은 진정하게 되고 팔을 걷어붙이고 피를 보게 되는 두려운 그 순간을 과감하게 부딪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처럼 가족은 딸의 출산과 함께 잊으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형을 보내주기 위해 새로 탄생할 새 생명을 안나푸르나라고 생각하고 오른다.

무대 뒤로 승합차의 유리창 대신 산을 오르는 듯한 가족들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비춰진다. 큰 형이 홀로 안나푸르나에 올랐다면,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그 길에 오른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안나'로 짓는 농담도 하면서 이제는 함께 웃을 수 있다.

배우도, 관객도 함께 즐거운 연극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던 환경 전환수 역할의 조현식이 큰 몫을 했다. 차 문 여는 소리, 눈 밟는 소리 등을 입으로 만들어 내고 길거리의 칠갑수라 하는 유명한 물장수가 되기도 하고, 구수하게 뽑아내는 칠갑산 노래까지.

혼자 가면 죽을 수도 있는 그 길을 끊임없이 작은 웃음이 객석 곳곳에 터지게 하면서 가족과 일상을 잘 풀어냈다. 그들이 풀어내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안나푸르나보다 더 높은 그 어떤 산들도 오를 수 있을 힘과 웃음, 재미를 동시에 선물해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ot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극,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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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사람. 프로젝트 하루5문장쓰기 5,6기 진행자. 공동육아어린이집 2년차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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