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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저기다! 우리 군사들이다!”

기치를 앞세우며 다가오는 병사들의 선두에는 말도 타지 않은 채 낡은 투구를 쓰고 전통(箭筒 : 대나무로 만든 화살을 넣는 통)을 비스듬히 매고서는 활을 손에 든 채 성큼성큼 걸어오는 자가 유독 눈에 뜨였다.

“고려의 군사들이 확실합니다.”

궁병과 노병은 일제히 화살을 거두었고 창과 극을 든 병사들은 옆으로 갈라져 정렬했다. 선두에 선 자가 빠른 걸음으로 양규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병사 이랑이 인사올리옵나이다!”

이랑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깜짝 놀란 김달치의 입에서 생각 없이 말이 튀어 나왔다.

“뭐야 계집이잖아?”

그 말을 들은 이랑이 벌떡 일어나 김달치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랑의 얼굴은 넓은 턱에 검은 편이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남자로 보였다. 이랑이 투구를 벗자 위로 모아 질끈 동여맨 머리위에는 폭이 가느다란 단검이 꼽혀 있었다.

“너 어디 계집 맛 좀 볼테냐?”

그 소리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김달치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난 그저….”

“수박희로 겨뤄보는 것이 어떠냐?”

수박희는 고려의 무인들이 연마하던 무술로서 신체단련은 물론 무인들 사이의 겨루기는 하나의 여흥거리기도 했다. 당황해하던 김달치는 수박희로 겨뤄보자는 말에 불끈 오기가 생겼다.

‘저것이 날 하찮게 보는 거냐!’

순간적으로 열이 오른 김달치는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도 잊고 순식간에 갑주를 벗어 던지고 웃통까지 벗어 던진 후 소리쳤다.

“그래 어서 와봐라!”

이랑은 그런 김달치의 행동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갑주만을 벗은 후 손을 뻗고 수박희의 기본 동작을 취하였다.

“내가 먼저 들어가랴?”

이랑이 먼저 호기롭게 소리치자 김달치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어디 와 보거라!”

순간 이랑의 걸음이 경쾌하게 다가오더니 양손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순식간에 김달치의 손을 비켜서 명치와 배를 쳤다. 그와 동시에 이랑의 발은 김달치의 뒤꿈치를 걸었고 그 바람에 김달치는 뒤로 밀려 크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런 김달치를 보며 병사들은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쳐대었다.

“야 이놈들아! 뭐가 좋다고 그리 웃는 게냐!”

친구가 당하는 것을 보고 웃는 병사들에게 화가 난 유도거가 하늘이 무너져라 크게 고함을 지렀고 그 위세에 주눅이 든 병사들이 함부로 웃지 못했다. ㅤㄱㅕㄺ숙 양규가 나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다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렵게 만났으니 내 마음이 기쁘기 한량없네. 이랑, 자네는 내 부장으로 힘을 다해주지 않겠는가?”

“명만 내리시옵소서 충심을 다해 장군을 모시겠나이다.”

이랑은 다시 무릎을 꿇으며 양규에게 깊이 감사함을 표했다.

“그런데 그대는 어떻게 여인의 몸으로 전장에 뛰어들게 되었는가?”

“여인의 몸이라고 해도 무예에 재주가 있어 써야 할 일에 재주를 쓰는 것일 뿐 이유는 없사옵니다. 그렇기에 저와 같이 지내는 이들은 굳이 저를 여인이라 부르며 업수이 여기지 않습니다.”

그 당당한 태도에 양규마저도 뜨끔하여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 굳이 여인이라 폄하할 뜻은 없었네. 그저 대견할 뿐이네.”

“저 역시 장군에게 따지고자 드리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상대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이랑이었지만 양규는 그런 이랑을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반면 유도거는 그런 이랑을 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고 그때까지 옷을 입지 않은 김달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랑을 쳐다볼 뿐이었다.

“도거와 달치, 이랑은 듣거라!”

“예!”

“너희들은 서둘러 병사들을 나누어 배치하고 그 일이 끝나면 내 막사로 오거라. 적도들이 눈치 채기 전에 지체 없이 곽주성을 칠 것이니라!”

“예!”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연재소설#결전#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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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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