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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찌모페이씨와 손자 이지나
ⓒ 정명현

8일, 강원도 속초항 입구. 바다 비린내가 얕게 깔리면서 안개가 약간 끼어 있었지만 휴일이라 그런지 속초항 주변은 많은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 5일에 남양주시 도심초교와 도곡초교 초청으로 남양주시를 방문한 러시아 연해주(쁘리모리에 끄라이) 파르티잔스크시 29학교와 발레학교, 달라네친스크군 내 4개교 고려인 4세와 러시아 학생 등 37명과 인솔교사 등 17명 등 53명이 3박4일간의 한국 일정을 마치고 연해주로 돌아가기 위해 8일 자루비노항으로 가는 동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일행 중에 깊게 패인 주름살이 유난히 눈에 띠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또 바로 옆에는 머리를 짧게 깎고 쌍꺼풀이 없이 착하게 만 보이는, 영락없이 한국인이 틀림없는 한 소년이 나란히 서있었다. 러시아 연해주 파르티잔스크시 이 찌모페이(70)씨와 그의 손자 이지나(5학년)군이다.

찌모페이씨는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부친이 당시 소련으로 이주당해 일본 강점기 연해주로 건너가면서 그 곳에서 태어나 생전 처음 도심초교와 도곡초, 이명승 전 시의원 등의 도움으로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고국을 알지는 못하지만 부모로부터 듣고 그리워하던 2세대와 고국이 뭔지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4세대의 의미 있는 동행이라고 할 수 있다.

찌모페이씨는 잘 하지는 못하지만 간단한 한국어 어휘 정도는 알아듣고 말하고 있었다. 노인은 전혀 한국에 와 본적도 살아본 적도 없지만 어려서부터 강제 이주돼 살다 결국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 묻힌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모두 9식구가 함께 살면서 고국어(한국어)를 조금씩 배웠다고 한다.

"한국말을 조금 하시네요."
나는 한국말을 할 수 있어 고맙다는 뜻으로 물었다

"내 잘 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알아 듣고 말해요. 고려인 부모와 살아가지고..."
노인은 정확하지는 못하지만 어눌한 말투로 대답했다.

"한국 방문한 동안 즐거우셨어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요. 너무 좋아요. 한국 기억은 없지만 너무 좋아요. 사람도 좋고."
노인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곤 눈시울을 붉혔다.
나 또한 눈물이 맺히는 것을 억지로 감춰야 했다.

"여기 계시는 동안 뭐가 좋았어요?"
나는 가능한 노인이 알아듣기 쉽도록 쉬운 단어를 배열하려고 했다.

"경복궁도 좋고, 서울도 너무 좋아요. 더 많이 보고 집에 가서 말해줘야 하는데 시간이 짧아서 아쉬워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꿈속에 있다가 갑니다."

▲ 인사동에서 단소 연주를 바라보고 있는 찌모페이 노인
ⓒ 정명현
노인은 무언가 자랑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게 많은 듯 계속 손짓을 했지만 부족한 한국어 어려움으로 답답해했다.

노인은 고려인 부모와 살면서 고국, 한국에 대해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런지 고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그리워했다. 노인은 3박4일 간의 한국생활체험에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일행 중 가장 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청자 측이 대접을 잘해줘서 그럴 수도 있지만 멀리 떠나면 가장 고생하는 음식에서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고려인 부모와 살면서 옛날부터 전해 나려오던 한국음식을 접할 수 있었기에 음식 때문에 고생한 다른 방문자와 달리 국수나 김치, 된장 등 잘 들었다고 한다.

"손에 선물이 많네요. 뭘 사셨어요?"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 저것 좀 샀어요. 선물도 많이 받고."
"무슨 선물을 사셨어요?"

"할머니(아내) 줄려고 신발과 적삼 음... 샀지."
나는 뜻밖이었다. 노인은 한국 젊은이들도 잘 알지 못하는 적삼을 또렷이 알고 있었다.

적삼은 아내가 시원하게 지내게 해주고 싶어서 산 것이라고 했다.
노인이 말하는 동안 노인 손에 길 게 쥐어진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예요?"
"어, 퉁소예요."
노인이 말하는 퉁소는 '단소'를 말하는 것이다.

노인은 단소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경복궁에 갔을 때 단소를 사야 한다고 늘 걱정했고, 인사동에 들렸을 때도 단소를 불고 있는 우리나라 연주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초청자 중 한 일행이 인사동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사줬다고 한다.

적삼이며 단소며 좀처럼 알지 못하거나 익숙하지 못할 물건인데 그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은 알고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소를 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연해주에서 고국이 그리울 때나 우울할 때 종종 분다고 했고, 더욱 고국 단소로 불고 싶어 구입하려고 했는데 마침 선물을 받아 너무 기쁘다고 했다. 시간적 여유만 있었다면 노인의 단소 연주 실력을 보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배를 기다리는 중이라 아쉽게 포기해야 했다.

주위 분들에 의하면 노인은 한국 방문 동안 우리나라 것에 대해 많은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경복궁에 갔을 때 다른 방문자들은 다리가 아프다며 쉬거나 돌아가자고 했지만, 노인은 더 보고 가자고 조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초청자 일행 중 한 명이 특별히 찌모페이 노인을 위해 늦게까지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 찌모페이 노인이 선물받은 단소
ⓒ 정명현
노인은 러시아에서 고려인(한국인)에 대한 러시아인의 인식이 어느 정도 인지도 말해줬다. 한마디로 러시아에서 고려인에 대한 인식은 강제로 이주된 고려인 후손에 불과하다고 여겨져 왔으나 서울88올림픽이 고국에서 열리면서 고려인에 대한 인식은 눈에 보이게 좋아졌고 대우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에 고맙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또 오고 싶으세요?"
노인에게는 가슴아픈 질문이겠지만 던졌다.

"그럼요. 할머니도 오고 싶어 하고, 오고 싶어 하는 고려인 많아요."
노인을 숨을 크게 내쉬면 말을 이었다.
"가슴이 내려앉아요."

"네?"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 나라에 와서 가슴이 벅차고 아퍼요. 다시 또 오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까요?"

실은 찌모페이씨는 얼마 전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고국에 온 것이 더욱 기쁘다고 했다. 어쩌면 이번 방문이 노인에 있어 마지막 고국방문이 될 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가셔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기자로서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를 초청해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요."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그만큼 고국방문이 절실했던 것이다.

"고국에 오고 싶어 하는 고려인 많아요. 많이 생각해주고 도와주세요."
노인의 말에 러이사 연해주 고려인들의 애환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찌모페이 씨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주위가 웅성거렸다.
연해주로 가는 동춘호를 타기 위해 수속을 밟아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고, 급히 노인과 손자인 지나를 불러 카메라 앞에 세웠다. 사진을 찍는 동안 두 얼굴에는 고국에서의 3박4일에 대한 미련과 함께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지나에게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고, 이에 지나는 내 기자수첩에 급히 써 내렸다. 지나 역시 한글로 주소를 썼다. 나는 감동을 받았고, 한글을 알 게 해준 노인과 한글을 배워 잊지 않고 있는 지나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 이제 들어가셔야겠네요."
마치 나의 친할아버지를 시골 멀리 보내 듯 섭섭했다.

"고마워요. 거기(연해주)에 오면 꼭 봅시다."
노인은 순간 내 몸을 끌어 당겨 안으며 말했다.

양 손에 선물을 든 채 손자와 함께 속초항 안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무겁게 느껴졌다.

참, 문제가 생겼다. 지나가 써 준 주소는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주소가 아니었다. 어떻게 사진을 보내주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남양주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려인, #러시아, #고국방문, #남양주 방문, #한국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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