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대형트럭에 집을 통째로 실어 옮기고 있다.
ⓒ 김창엽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심심치 않게 차들이 집을 통째로 싣고 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방 2∼3개에 화장실 1개 정도로 크지 않은 집도 있지만, 방이 네댓 개쯤 되는 중규모의 주택도 차에 실려 '이사'를 갑니다.

물론 이런 주택을 싣고 가는 차도 아주 큽니다. 바퀴가 서른 개 안팎쯤 되는 초대형 트럭들이 대부분 입니다. 이런 차들의 바퀴는 지름만도 어른 가슴팍 높이까지 올라올 만큼 커다랗습니다.

미국서는 같은 물건이라도 사이즈가 큰 것들이 널려 있습니다. 햄버거 중 큰 것은 1/2 파운드가 넘는 것들도 있습니다. 200그램을 초과하는 이런 햄버거는 보통 체격의 성인들이 소화시키기에는 사실 벅찬 양입니다.

보통 햄버거와 같이 먹는 음료수 양도 만만치 않습니다. 라지(Large) 사이즈의 음료수 중에는 그 양이 1리터 안팎인 것도 있습니다. 이것도 부족해 리필을 해먹는 미국인들도 가끔 봤습니다.

미국에 큰 게 많은 것은 덩치가 큰 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습니다. 옷 사이즈가 크고, 침대가 큰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 큰 것들이 많은 진짜 이유는?

그러나 아메리칸 홈리스는 미국 사회에 큰 것들이 많은 진짜 이유는 큰 땅덩어리를 이용하는 그네들 특유의 생활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찍부터 미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침투한 기계, 도구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냉장고를 한 예로 들어볼까요. 미국 중산층 가정의 경우 우리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대형 냉장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씩 두고 있는 집도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봅니다. 이는 일주일 먹을 것을 냉장고에 한꺼번에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냉장고 용량이 커야겠지요. 또 한 번 장을 보러 갔다 하면 한자리에서 해결을 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물건이 고루 많이 갖춰진 대형 슈퍼마켓 혹은 양판점이 잘되는 이유입니다.

또 한 번 장보러 가면 실어오는 물건도 많겠지요. 당연히 차가 커야 합니다. 짐칸이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이삿짐 화물도 나를 만큼 큰 픽업트럭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농사 또한 기계 의존이 크기 때문에 농가 1인당 경작 면적이 엄청납니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자리 잡은 농가들은 웬만한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합니다. 이런저런 도구를 저장해야 하므로 창고 혹은 창고로 쓰는 공간이 아주 클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외딴곳에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일일이 건축 자재를 먼 곳에서 사와야 하겠지요. 집 짓는 인부들은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할 겁니다. 자재 운송비와 인건비가 적잖겠지요. 이런 식으로 지출하느니, 아예 기존의 집을 통째로 차에 실어서 옮기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초대형 사회'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 3명의 인부가 케이블 청소차를 타고 송전선을 씻고 있다. 송전탑이 엄청나게 크다.
ⓒ 김창엽
집 혹은 동네 주변에서만 큰 것들이 눈에 잘 띄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4월 워싱턴주 중부의 허허벌판에서 송전선 청소 공사를 하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일단 송전탑의 크기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높이가 70미터는 족히 돼 보이더군요. 산 넘고 물 건너 원거리 송전을 하려면 송전탑이 커야하지 않겠습니까. 선도 여럿이어야 할 테고, 송전 용량도 클 겁니다.

송전선 청소 작업 자체도 장관이었습니다. 인부 세 사람이 각자 청소용 케이블 카를 타고 이동하면서 공중 작업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오물 수집통이 다 채워지면 멀리서 헬리콥터가 날아와 새 통을 내려주고, 헌통을 걷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미국 사회는 이렇게 큰 스케일로 이뤄지고, 또 돌아가는 게 많습니다. 동물로 치면 코끼리 같다고나 할까요. 대형동물의 특징 중 하나는 맥박이 느리다는 겁니다. 특히 포유류를 기준으로 할 때 말이지요.

미국 사회는 특히 우리같이 모든 게 빨리빨리 이뤄지는 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아주 느리게 움직입니다. 공무 처리도 아주 속도가 느린 편이고, 예컨대 예약이나 이동통신 서비스를 취소했을 때, 물건 등을 반환했을 때 환불도 보통 느리게 이뤄집니다. 이렇게 느릿느릿하게 일이 처리되는 것은 미국사람 특유의 정서와 문화 탓도 있지만, 땅덩어리의 사이즈가 큰데 따른 영향이 본질적으로 크다고 생각됩니다.

'초대형 사회'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나름대로 최선의 효율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분당 맥박이 30회도 못 되는 코끼리가 맥박 500회의 생쥐처럼 움직인다면 그에 따른 에너지 소모는 엄청날 겁니다. 또 그에 따른 생명의 단축 또한 피할 수 없지 않겠어요.

▲ 헬리콥터가 송전선 오물통을 실어가면서 대신 빈통을 내려놓고 있다.
ⓒ 김창엽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태그:#코끼리, #미국, #초대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