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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시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강원도 동강 변의 한 마을을 사들였습니다. 마을을 통째로 다 사들인 것은 아닙니다. 대지 76평, 전 5100여 평입니다. 우선 그 땅에 스트로베일 하우스 공법으로 생태주택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리고 '더디지만, 제대로' 새로 생태마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입니다. 지난 6월 6일 이곳을 찾아가봤습니다.

▲ 제장마을 동강사랑 앞 생태연못(Biotop)
ⓒ 정기석
동강이 감싸 안은 마을들은 모두 한편의 고전이나 전설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정선 신동읍에서 왼쪽 동강가는 길로 접어들어 고갯마루에 올라서면서 한마디로 오지의 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이런 천혜의 경관은 지질학적으로 장구한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동강 유역은 4억5천만 년 전인 고생대에 융기돼 형성된 석회암층 지대입니다. 그 후 중생대 말기인 약 2억 년 전,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으로 지층이 시달리면서 오늘날 이토록 신비한 지형과 경관이 창조된 것입니다.

지금도 퇴적작용과 침식작용은 쉼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석회암지대에서의 지하수로 인한 용식작용으로 천연기념물인 백룡동굴을 비롯해 250개가 넘는 석회암동굴이 동강변 곳곳에 신비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땅인 것입니다.

또 수달, 어름치, 쉬리, 버들치, 비오리, 원앙, 황조롱이, 소쩍새, 흰꼬리독수리, 동강할미꽃 등 무수한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희귀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고인돌, 적석총, 고성리산성, 가수리 느티나무 등 문화유적도 발에 채듯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영화촬영무대가 된 곳도 무수합니다. 풍광이야말로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것입니다.

▲ 동강 건너 제장마을 입구
ⓒ 정기석
동강은 40여 년 전까지는 정선 아우라지의 뗏목을 서울로 운반하는 힘찬 물줄기였습니다. 동강의 모습을 빼닮은 깊고 유장한 정선아리랑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의 보고 동강 유역을 지켜내려고 제장마을은 변하고 있습니다. 생태마을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환경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생태마을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장마을을 지키고 만드는, 내셔널트러스트

이 단체에서는 동강 유역의 자연경관과 생태계를 영구히 보전하기 위해 아예 제장마을 초입 땅 5200여 평부터 시민 유산 3호로 사들였습니다. 제장마을을 생태마을로 가꾸는 전초기지로서는 물론, 나아가 동강 전체를 보전하고 가꾸는 중심센터로 자리매김한다는 목적입니다.

지금 제장마을에는 5가구 10여 명 남짓한 주민만 남아 포도, 고추, 옥수수, 감자 등을 겨우 농사짓고 있습니다. 생업은 농사보다는 오가는 관광객이나 백운산 등산객들을 상대로 하는 민박, 펜션 등에 주로 의존하는 형편입니다. 포도를 재배하는 밭과 시설하우스가 넓게 자리 잡고 있지만 주인은 다른 마을 사람입니다.

▲ 동강지킴이 홍순천씨
ⓒ 정기석
마을 초입, 흙과 볏짚으로 짓는 스트로베일하우스로 지어진 '동강사랑'에는 이 단체의 담당일꾼이 가족을 데리고 귀농, 마을주민으로 상주하고 있습니다. 부인과 전교생이 여덟 명뿐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입니다. 5천여 평의 밭에는 생태 연못을 만들고, 야생화단지, 매실 등 특작 과수단지 등도 조성해 마을 주민들, 체험 도시민들과 더불어 가꾸고 농사짓고

이 단체의 계획은 단지 지금의 5200여 평의 땅 안에 갇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제장마을 속에만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땅도 더 넓히고, 마을도 더 엮겠다는 목표입니다. 동강 유역을 그저 잘 지켜내는 정도는 넘어서 보겠다는 야심 찬 목적인 것입니다.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생태마을의 모델을 만들어 동강 유역 전체로, 다른 지역의 마을로 널리 전염시켜보겠다는 책임감입니다. 그래서 제장마을의 실험은 더욱 중요합니다.

제장마을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백운산에서 바라본 제장마을은 태극으로 휘도는 동강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강을 따라 줄지어 있던 기암괴석과 아름드리 적송 등 각종 수목들이 동강댐 건설로 인한 수몰을 예고한 정부의 발표가 나기 무섭게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이렇듯 개발과 효용이라는 현대의 가치에 밀려 잃어버린 자연 유산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장마을은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대량 발견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밭에서는 지금도 깨진 토기 조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훼손되기는 했어도 고인돌, 적석총 등의 유적이 남아 있고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유물이 적지않으리라는 분석입니다.

덕천리 강변은 40여 년 전만 해도 목재를 운송하던 떼꾼들이 쉬어 가던 객주 집들이 강변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볕이 좋아 과실의 당도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는 포도가 맛있다고 알려졌기도 합니다.

▲ 제장마을 포도밭, 백운산, 그리고 이정표
ⓒ 정기석
올봄에는 마을이 새롭게 단장을 했습니다. 동강사랑 주변부터 많은 나무와 꽃을 심은 것입니다. 생태주택에 어울리게 전통조경을 고려한 자작나무, 느티나무, 산벚, 백목련 같은 나무를 심고,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습니다. 또 수국과 라일락, 모과, 목련 등을 심고 장독대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생활공간과 방문자 공간을 구별 짓고, 생태학습장으로 가는 길에도 수국을 심었습니다. 마당 한쪽에는 파고라를 만들어 여름 한나절을 피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습니다.

생태학습장의 유실수원에는 복숭아, 앵두, 자두, 살구, 산수유 등이 제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습니다. 유실수원은 제장마을 방문객들에게 농장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작목이기도 합니다. 유실수원 아래에는 둥굴레, 원추리, 꽃창포, 구절초 등을 심어 환경교육은 물론 소득원으로도 활용한다는 쓰임새입니다. 암석원도 준비 중입니다.

경사면이 많은 부지의 특성을 살려 소규모 돌무지를 만들고, 다양한 꽃을 심어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볼거리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더불어 소박하게 야외교실도 만들 예정입니다. 유실수원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생태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입니다.

▲ 동강사랑(스트로베일하우스)를 찾은 도시 사람들
ⓒ 정기석
모름지기 생태마을은 이래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인간적 규모이어야 한다. 다양한 생활요소가 완전히 갖추어진 거주지여야 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건강한 인간성이 개발될 수 있어야 한다. 무한한 미래로 지속 가능해야 한다.' 동강 제장마을의 내일은 바로 이런 마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원주민 정기석이 쓴 이 기사는 월간마을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생태마을, #동강, #제장마을, #강원도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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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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