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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때 국내 한 지역의 한우협회소속 농민들이 수입생우의 농장 앞에서 집입로를 농기계로 막아 사료차 진입을 봉쇄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광견병,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같이 사람과 동물에서 모두 전파될 수 있는 '브루셀라병(brucellosis)'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일 전북 정읍에서는 브루셀라병에 걸린 한우를 모두 죽여서 땅에 묻는 '살처분'을 시행하려 했으나 브루셀라 피해 농민이 축사 앞을 트럭으로 막아서며 농가를 보호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세워달라고 주장하며 정부와 대치하기도 했다.

브루셀라병은 사람과 가축 공통 전염병

농림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발생한 브루셀라병은 지난 2005년 2.8%로 최고의 발생률을 기록한 이래 2006년 2.2%, 올해 0.9%를 기록하는 등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사람에게 전염된 브루셀라는 지난 2002년 살균 처리되지 않은 우유를 마시고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로 ▲2003년 16명 ▲2004년 47명 ▲2005년 158명 ▲2006년 215명이 발생했고, ▲2007년 6월 9일 기준으로 누계환자가 499명으로 빠른 증가추세에 있다.

브루셀라병은 소뿐만 아니고 돼지·염소·개 등에서도 발생하는 '세균성 전염병'이다. 암소에서는 불임증과 임신 후반 유산을 일으키고, 수소에서는 고환염을 유발시키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사람에게 감염되었을 경우 2~4주의 잠복기를 거쳐서 독감과 유사한 증상(땀·열·두통·통증 등)을 일으키고, 관절통 등도 생기며, 2% 이내에서는 심막염(endocarditis)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브루셀라병에 매년 100~200명 정도 걸린다고 하며, 낙농 후진국의 경우 브루셀라병이 아주 흔하다.

현재 브루셀라병을 근절하기 위해서 정부는 살처분 정책과 축사 소독을 중점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2011년까지 브루셀라병 박멸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 지불 규정이 100%에서 지난해 11월 80%, 올해 4월 60%로 깎이면서 농민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한편 학계 일각에서는 살처분과 축사 소독의 방법만으로는 브루셀라병 박멸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소에 대해 브루셀라 예방백신을 도입해야 근본적으로 박멸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브루셀라병을 담당하는 농림부의 조옥현 사무관은 "현재 살처분과 축사 소독 등을 통해 가시적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조 사무관은 농민 보상금 지불을 60%까지 깎은 이유에 대해 "100% 보상을 하면 농민들이 적극적 방역을 하지 않았다"며 보상금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농림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우협회와 수의사들은 지나치게 낮은 보상률 때문에 브루셀라병에 걸린 소가 밀도축되고, 유통됨으로써 오히려 이를 통해 질병이 더 확산시킬 수 있다는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옥현 사무관은 "현재 브루셀라병이 안정 추세에 있으므로 조만간 협의를 거쳐 보상률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예방백신의 도입 놓고 입장 엇갈려

▲ 한 입식농가 농장에서 사육되었던 미국산 수입생우. (사진은 기사의 내용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보상가격 이견보다 더 큰 쟁점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브루셀라병에 대한 대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한우협회, 그리고 일부 수의사들 사이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정부는 살처분과 축사 소독을 통해 지속적으로 브루셀라병의 확산을 차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백병걸 전북대 수의대 교수는 "어떤 전염성 질병이건 간에 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백신 접종 이외는 어떤 방법도 있을 수 없다"면서 "현재의 방역 정책으로는 브루셀라병을 퇴치하기는 완전히 불가능하다"며 조속한 백신의 도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조옥현 농림부 사무관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살처분과 방역을 지속적으로 시행 하는 것이 소의 관리, 소비자들의 인식 등 비용대비 효과면에서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살처분과 방역 정책을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조해인 한우협회 대리도 백신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앞으로 한우를 전 세계에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입장에서 백신을 맞게 되면 브루셀라 오염국이라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면서 "백신의 도입으로 한우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백병걸 교수는 한해 한우 4만 5000여 두를 살처분하는 상황에서 '예방접종'만이 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우에 백신을 접종하면 균이 혈액에서 5일 정도 후에 사라지게 된다는 것.

백 교수는 "한우협회에서 위험하다고 주장해온 RB51을 백신 접종한 미국산 쇠고기를 (우리나라에서) 수입하고 있다"면서 "우선 백신을 접종한 소는 브루셀라병에 감염되지 않아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발병해서 농가가 피해를 보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쇠고기 소비하는 국민 건강이 우선시 돼야"

▲ 브루셀라병으로 위협받고 있는 한우.(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 한우협회 홈페이지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역시 "백신의 도입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비록 백신의 도입에 의해 육회를 못 먹고 익혀 먹어야 하는 등 국민 식생활의 변화가 올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5년 내에 브루셀라병을 근절시킬 수 있다"고 백신의 도입 주장에 힘을 실었다.

특히 박상표 편집국장은 "현재의 논의 자체가 국민의 안전성에 대한 개념이 빠진 상태에서 경제적 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며 "축산업 종사자의 생계 문제도 중요하지만 쇠고기를 소비하는 국민의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섭 전북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인체에 대한 브루셀라 예방접종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소의 브루셀라가 박멸되지 않는다면 계속 인체 감염 환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책적으로 강력하게 소에 발생하는 브루셀라를 박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각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브루셀라병의 근절에 대한 특별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쇠고기를 믿고 먹어야 할 국민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우선할 수 있는 안전하고도 합리적인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엄두영 기자는 현재 경북 의성군의 작은 보건지소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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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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