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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畵手). 그림을 그리는 가수.

조영남(62)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다. 굳이 구분하면 노래는 직업이고 그림은 아직은 취미다. 그 취미를 살려 미술책을 썼다. 벌써 미술책으로만 세 번째다. 제목도 그답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한길사)>. 앞서 두 권이 개인적인 미술작품 감상집이고 설명서라면, 이번에는 현대미술의 맥을 훑는 본격적인 미술개론서다.

새 책 출간을 핑계로 조영남과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솔직히 책보다는 '친일 발언' 파동 이후 현재 그의 속내가 궁금했다. 마침 약속 장소도 그의 자택이었다. 연예인 가운데 최고가로 알려진 그의 집안 풍경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다.

조영남의 집, 정말 럭셔리할까

10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그는 흰색 티셔츠에 진 바지 차림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무시무시한 곳인 줄 아는데 기자들 모습은 그렇지 않네"라고 웃으며 맞았다. 공교롭게 사진·동영상 모두 여기자가 동행했던 까닭인지 더욱 반기는 듯(?)했다.

인터뷰는 전면의 창밖으로 한강과 영동대교가 내려다보이는 거실에서 진행됐다. 거실에는 소파와 피아노·TV·화구가 각각 한 자리씩 차지했고, 벽면을 빙 둘러 자신의 그림을 놓아두었다. 내심 '기대'했던 호화스런 가구는 없었다. 작은 받침대 등 웬만한 가구도 그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다만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자리에 앉아 지난 일요일 KBS 2TV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 코너에 나온 걸 봤다고 인사를 건네자 "내가 인기가 다시 올라간대, 인터넷 검색어에도 오르고"라며 아이처럼 자랑했다.

"국장한테 물어봤더니 난리가 났대. 압도적으로 1위 했대. 스태프에게 몇 년 더 먹고 살 거 같냐고 물었더니 3년에서 5년 정도 더 먹고 살 거 같대. 그러면 됐지."

'오래 더 하셔야죠?'라고 했더니 "아이 말도 안 돼. 난 지금 은퇴 기분으로 사는 거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해방동이로 이미 환갑을 넘어섰다. 생물학적으로는 '노인'인 셈이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20대 청년 못지 않은 지침없는 열정을 보여줬다. 특유의 과장된 손동작은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말을 하다가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또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무척 바쁜 듯했다. 인터뷰 도중 10통 가까이 전화가 걸려왔다. 본의 아니게 그의 사생활을 엿듣게 됐다. 그는 전화로 후배와 점심 약속을 하고, 종친회 족보(?) 한 질을 구매하고, 호텔 미술쇼 준비를 점검하고, 친구 가족과 동대문시장에 간 얘기를 나눴다.

▲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또 호탕하게 웃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안전하게 '사랑' 대신 선택한 '미술'

먼저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하 <현대미술>) 책 이야기부터 풀어나갔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이번 책은 '대타'인 셈이다. 이야기는 지난 2005년 '친일 발언' 파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KBS TV <체험 삶의 현장> 등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완전히 매국노가 돼 직장이 없어졌잖아. 그러니까 한길사에서 이 기회에 사랑에 관한 책을 한번 쓰면 어떻겠느냐는 거야. 오케이하고 1년 반에 걸쳐 썼는데, 출간할 시기가 돼 MBC <지금은 라디오시대> 방송을 하게 됐어요. MBC에서 사랑 책을 쓴다니까 또 안티들이 끓으면 자기들이 감당을 못한대. 그래서 미뤘지. 그럼 대신 내가 제일 재밌어하고 제일 많이 알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 쓰자. 그래서 부랴부랴 6개월 동안 후다닥 써낸 게 이거예요."

- 이미 현대미술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책들이 나와 있는데, 다른 현대미술 서적과 차이점이라면?
"미술을 독학하면서 볼만한 책은 거의 다 사놨는데 다 재미없어요. 미술이 이게 참 부황된 거니까 재미없게 쓰는 특징이 있잖아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쓰면 재미없게 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나는 미술을 전공 안 하고 독학으로 혼자서 공부했으니까 쉽게 재밌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고."

일단, 그의 <현대미술>은 분명 재미있다. 자신의 경험을 섞어 재치넘치는 입담으로 현대미술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마치 그와 형 아우 하는 전유성 <구라 삼국지>의 현대미술판을 읽는 느낌이다. 그에 대한 번역문학가 이윤기의 '구어체 글쓰기의 고단자'라는 평가답게 술술 읽힌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현대인으로서 현대미술을 '알아먹기' 위해선?
"골프를 하거나 바둑을 하거나 낚시를 하더라도 책들 보며 다 공부를 하잖아요. 미술은 공부 안 하고 그냥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공부 안 하면 알 수 없는 건데. 음악에서 김국환이나 김흥국 노래는 공부 안 하고도 들을 수 있고, 감상할 수 있어요. 조영남 노래도. 그러나 바하의 무반조 첼로 모음곡 같은 거는 기본공부를 안 하면 무슨 염불 외는 소리인지, 벌레 기는 소리인지…. 그런데 이게 음악 하는 사람들한테는 최고의 음악이라는 거 아닙니까. 최고의 음악인 줄 알려면 최소한의 공부를 안 하고 어떻게 되냐고, 그렇잖아요?"

- 책만 읽는다고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이 책 반만 읽어도 식견이 훨씬 좋아진다고도 얘기할 수 있고, 이걸 세 번 읽어도 현대미술에 까막눈인 사람은 까막눈일 수도 있고, 그 정도로 말해야 옳겠죠. 이걸 읽으면 현대미술을 알게 된다, 그건 거짓말이지. 미술은 자꾸 봐야 해요. 골프도 자꾸 쳐야 하고, 바둑도 자꾸 둬야 할 거 아뇨. 똑같다 이거지."

보통 평론가들은 현대미술을 세잔으로 시작하는데 그는 <현대미술>에서 '현대미술의 아버지' 자리에 에두아르 마네를 앉혔다.

"그래서 평론가들한테는 좀 괴상한 책이라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난 책에다가 왜 세잔보다 마네가 한 수 위냐는 걸 주장해놨죠. 그게 이 책에서 나로선 가장 가치 있었던 일 아닌가 생각해요."

책에서 그 이유에 대한 답변은 명쾌(?)하다. "마네가 처음으로 현대적인 그림을 그린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한 설명이 뒤따르지만, 궁금하신 분은 책을 참조하시길!

"예술은 완벽하게 사기꾼 놀음"

- 책에서 화가뿐만 아니라 시인 이상, 음악가 윤이상 선생 등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짬짬이 현대미술이 문학화했다는 걸 상징하는 거죠. 문학하고 철학하고 미술이 하나가 됐다는 거지. 그래서 현대미술이라고 부르는 거지. (옆 그림을 들고) 이건 '바구니 변주곡'인데, 이게 현대미술이에요. 바구니 반쪽이 들어가 있고, 바둑 형태가 들어가 있잖아요. 조영남이가 이런 초가집에서 바둑 두는구나,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이브 클라인 그림 보면 아무것도 없고 파란색만 꽉 채워놨단 말이야. 루치오 폰타나 같은 사람은 그냥 캔버스에다 칼자국 하나 내고. 이걸 설명하려면 어마어마한 문학, 철학, 거짓말, 우리말로 '구라'가 필요할 수밖에 없어."

그는 <현대미술> 5장 '그러면 우리의 미술은'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희망을 '무대뽀정신'과 고인이 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게서 찾고 있다. 그는 백남준은 '예언자'이며, 개인적으로도 두 가지 점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하나는 '예술은 사기꾼 놀음'이라는 발언으로, 또 하나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추구하는 건 사랑'이라는 발언으로.

- 고 백남준 선생의 "예술은 사기꾼 놀음"이라는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트는 엄청나게 사기꾼 놀음이지. 사기꾼 놀음이랄 수밖에 없는 게 요만한 박수근 그림이 9억, 10억 그렇게 넘어가는 거는 말도 안 되지. 박수근 그림이 문제가 아니야. 마크 로스코(러시아 출생의 미국 화가) 거는 (캔버스를 가리키며) 요기다가 흰색 칠하고, 오렌지색 칠하고, 중간에 검정 칠하고, 그게 우리 집 10채 값 나갈 거야.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며) 이것만 해도 액자가 2~3만원짜리야, 캔버스 1~2만원짜리고. 연필 값 얼마나 들겠어. 종이는 한지 뭉쳐서 접착제로 붙인 건데. 재료 비싸 봐야 4만~5만원짜리인데 500만원, 1000만원 불러도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어. 누가 고소하는 사람도 없고, 검찰에서 오라고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사기꾼 노름이지. 그걸 잘하는 놈이 장땡이고."

그는 "전부 그림값이 아니라 이름값"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그림도 '이름값'을 하며 팔렸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팔지 않고 있다. 오는 9월 용인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자신의 작품은 500여점. 지난해 12월엔 현대미술의 심장부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예쁘고 젊은 여자들이 놀아주면 미쳤다고 그림을 그려?"

'화수'가 되기 전부터 조영남은 그림을 그려왔다. 고교 시절엔 미술반 반장이었다. "화가가 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취미로 쭉 그려왔는데", 가수가 된 뒤 다시 그림에 빠진 건 군대 시절 만난 김민기('아침이슬' 작곡가)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휴가 나오면 "난 음대생인데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고, (김)민기는 미대생인데 하루종일 기타만 쳤어". 김민기의 도움으로 73년 안국동 한국화랑에서 첫 전시회도 열었다.

당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작가는 러시아 출신의 '서정추상' 화가 니콜라스 드 스타엘. 그는 스타엘 풍으로 그린 69년 작품을 현재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아무리 팔라고 그래도 절대 안 판다"고 했다. 이후 7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화투를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어 바둑, 바구니, 태극기 등으로 오브제를 확장했다. 왜 하필 화투였을까.

▲ 그는 화투, 바둑, 바구니, 태극기 등을 즐겨 그린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선 미술은 독창적이야 돼.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 노래를 똑같이 하잖아. 그럼 파바로티·카레라스·도밍고에 이어 세계 4위의 테너로 올라가. 우리 테너들 다 그만큼 못해요. (이 대목에서 그는 직접 한 소절을 불렀다) 딴 거 얘기할 거 없어, 노래를 똑같이만 하면 돼. 미술은 (책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찾아 보여주며) '게르니카' 이렇게 그리려면 누가 못 그려. 그런데 내가 만일 이렇게 그려서 '조영남 작' 이러면 '미친놈 지랄하고 있네'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음악과 정반대야. 미술은 독창적이고, 남들이 안 그린 그림을 그려야 돼."

그래서 "전전긍긍하다가" 남들이 안 그린 것을 찾은 게 '화투'였다. 물론 독창적 소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먼저 미학적으로 화투 색깔은 우리가 좋아하는 무속 색깔이라는 것이다. "장례 가마 나갈 때 보면 전부 이 색깔이거든요. 알록달록 완벽하게 우리 색깔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역사적으론 이게 일본투의 그림이에요. 우리는 역사적으로 일본을 극렬히 싫어하잖아. 그럼 이걸 쳐다보지 말아야 돼. 일본에선 화투 안 친 지 오래됐어. 우리는 온 국민이 이걸 즐기잖아. 삼박사일을 관 옆에다 놓고도 이걸 때리잖아. 이런 이중성, 모순, 패러독스를 없애야 한다고. 또 미국 카드 하는 건 근사하게 봐요. 화투 치면 천한 걸로 생각하고. 홍대생들이 카드 하면 경비 아저씨들이 그냥 지나가는데, 고스톱 치면 막 나가라고 하고. 이렇게 우리 자체가 가진 터무니없는 모순성, 이래서 안 된다는 걸 나는 이걸 자꾸 그리면서 타개해나가는 거지."

앞선 그의 말에 빗댄다면 '소설' 같은 해석은 '바둑'으로 이어졌다. "바둑판을 들여다보니까 기가 막혀. 몬드리안이 두 손 다 들어야 되는 최고의 미술이 바둑판 안에 들어가 있는 거야. 몬드리안, 세잔, 칸딘스키가 주장하는 게 점, 선, 단순함, 그거 아냐. 바둑판에 그렇게 멋있는 점, 선, 원형이 완벽하게 들어가 있더라구." 또 바구니를 반 잘라 초가집으로 상징했다. 최근에는 코르크 병 마개, 음표 등을 시도하고 있다.

- 왜 그림을 그리는지?
"사람한테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잖아. 집에 들어와서 TV 보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동물하고 노는 거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취향이야. 나는 집에 와서 심심할 때 제일 재미있는 게 그림 그리는 거예요. 그걸 사람들은 굉장하게 보는데, 전혀. 더 재미있는 게 있으면 내가 그림 안 하지. 예쁘고 젊고 날씬한 여자들이 차 마시자 그러면 그림을 내가 왜 그려? 안 그래? 미쳤다고 그림을 그려? 애들이 나랑 놀아주지 않으니까, 남는 시간이 많잖아. 남는 시간에 내가 할 게 있어야지. TV 보면서 그림 그리는 거지."

- 자신을 '화수'라고 부르는데, 그림 그릴 때와 노래 부를 때 중 언제 더 즐거운지?
"불행하게도 노래는 일찍이 밥벌이가 되는 바람에 즐길 수 없는 매체가 됐지. 참 슬픈 일이에요. 밥벌이가 되니까 반드시 잘해야 하고. 사명감 의무감이 앞서기 때문에 예술로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쳤죠. 그건 내 운명인데, 물론 아트로 즐길 수도 있지만 노래를 잘 불러야 돈을 얼마만큼 받고… 그래서 잘 안돼. 이게(그림이) 훨씬 더 재미있게 됐죠."

"순수는 개뿔~ 내가 무슨 순수야"

그는 <현대미술> 책에서 '암울한 삶이 명작을 만든다'며 자신의 노래에 대해 "나처럼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차 타고 좋은 방송국에 가서 좋은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쓰레기' 같은 가수의 노래에 개뿔 누구의 심금이 울릴 것을 기대하랴"고 자조적으로 썼다. 그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존 틀에서 보면 훌륭한 화가가 되긴 틀렸어. 훌륭하려면 피카소처럼 80세에 18살 소녀와 누가 시비 걸 건 말건 연애하고 결혼하고 할 용기가 있어야 하고, 위대한 반 고흐처럼 순수를 위해서 귀때기를 자른다거나 빵! 한다거나, 이런 격렬함이 있어야 되는데 난 그런 게 없어요. 이중섭 그 아저씨가 나중에는 노숙자 비슷하게 부둣가에서 짐꾼 노릇 하다가 막판에 일생을 그렇게 장식하잖아. 그런 와중에 담배 껍질에 그린 그림들이 지금 정말 예술로 값어치 있게 되고. 박수근씨 돌아가시기 전에 창신동 마루 요만한 데서 사신 거 보면 눈물나요. 그 사람은 가난하니까 순수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나는 이런 호화찬란한 집에서 그랜드 피아노 놓고, 벽걸이TV 놓고. 만날 여자친구 왔다갔다하고, 순수는 개뿔이 내가 무슨 순수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순수' 대신 그가 미술에서 추구하는 것은 '재미'다. 재미있어 그리고, 재미있는 그림을, 재미있게 그린다. 그렇기에 자신의 유파는 '팝아트'라고 소개했다.

"2000년대의 미술은 팝아트가 지배하고 있다고 보죠. 또 나는 팝아티스트 아니야. 팝송을 부르잖아. 그러니 격에 맞지. 내 본령이 팝아티스트니까 생리적으로 맞아 들어가지. 화투, 바둑, 바구니, 이거 팝이잖아? 놀잇감, 재미, 재미… 앤디 워홀 류의 재미, 재미추구주의자잖아. 다 같은 계열이지."

그는 덧붙여 "재미이스트로 살고, 재미이스트로 죽고 싶다"며 자신이 지었다는 묘비명을 밝혔다. '웃다 죽다.' 그런데 친구들이 다른 묘비명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고렇게 재미 밝히더니 요 모양 됐구나.' "그런데 나 묘비명도 없어. 장기를 다 기증했기 때문에."

그의 관 앞에서, 구경 한번 와보세요?

이제 그림 얘기를 끝내고 노래 얘기로 넘어가려는데 마침 주문한 점심 식사가 도착했다. 인터뷰 도중 시간에 맞춰 직접 그가 중국음식점에 주문했다. 탕수육에 자장면과 짬뽕과 잡탕밥. 경비 몫으로 자장면 하나를 추가로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엌엔 검은색의 싱크대가 붙박이로 장식돼 있었다. 나중에 동행한 기자에게 물으니 H 제품이라고 했다. 그릇을 꺼냈는데 할인점에서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배달 그릇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파이렉스 용기였는데 "일하시는 할머니가 무거운 걸 못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점심을 함께하며 가벼운 얘기들을 나눴다. 그는 "쇼핑을 좋아하는데 같이 여름이불 사러 가자고 할 사람이 없다"며 외로움을 살짝 내비쳤다. 또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여름엔 국수만, 찬바람이 불면 떡국만 먹는다"고 했다. "어려서 국수를 먹고 싶었는데, 못 먹은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팬티는 같은 종류의 캘빈클라인만 입는다. 혹시 편벽증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게 일종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중일 거야"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그게 또 예외가 있잖아. 한 여자만 집중적으로 좋아하면 얼마나 좋겠어". 다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 음악대학(64학번)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미8군에서 노래를 불렀고, 팝송을 부르다가 아예 대중가수가 됐다. 1968년 번안곡 '딜라이라'를 발표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연예계 생활 40년을 넘었다. 그는 "창피하다"고 말했다.

- 지난 일요일 <해피선데이>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화개장터'가 소개됐는데, 개인적으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인지?
"오, 노. 나는 가수 생활이 불운했어. 노래를 많이 만들지 못했어. 왜 불운하게 생각하냐면…."

2년 전 이틀 걸러 황금심과 고운봉의 장례가 가수장으로 치러졌다. 조문 온 후배 가수들이 모여 관을 앞에 두고 고인의 히트곡을 불렀다.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그는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 하니까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가수장 할 거 아뇨. 후배들이 내 관을 쳐다보면서 무슨 노래를 부르겠어. '딜라이라'는 너무 어렵지, '제비' 그것도 어렵지. 천상 이것들이 내 관 쳐다보면서 '구경 한번 와보세요~'. 그래서 죽기 전에 마추픽추 산골이나 아마존 이런 데 가서 잠적을 해서 장례식을 못 치르도록 하려고 고민하고 있어요(웃음)."

성악가의 길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 후회한 적은? 한 마디로 "전혀!"라고 대답했다.

"성악가를 했으면 지금쯤 어디 대학교 선생 하겠지. 서울대 출신이니까 잘하면 서울대 교수 정도? 그런데 내가 이름이 안 좋아. 내가 교수가 되어 봤자 만날 '조교수' 아니야? 안 하길 잘했어. 하하."

'친일 발언' 파동... "내게는 혁명적인 사건"

- 가수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힘든 게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내 인생에서는 문제고, 내 결함 중의 하나고. 나한테는 시련이 없었지. 그러다가 내가 '화개장터'라는 노래를 불러서 지역감정을 많이 완화시켰단 말이야. 또 화투라는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문화를 예술로 승화시켜서 화투가 나쁜 게 아니다, 20년간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서 성공시켰고. 나는 그런 거에 소질 있나 보다 생각했지."

언제 질문을 꺼낼까 고민했는데 그 스스로 '친일 발언' 파동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2005년 그는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선언>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냈고, 일본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이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는 결국 국민에게 공개 사과하고 모든 방송활동에서 물러나야 했다.

"2005년이 우리가 일본에 굴욕 당한 지 100년이 되더라고. 또 해방된 지 60년이 되고. 그래서 누군가는 한 번 '일본과의 나쁜 감정은 접자', 이런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둘러보니까 역사학자도 문화비평가도 그런 걸 거론 안 해. 혼나니까 위험하니까. 그런데 내가 광대 아니야. 광대가 뭐야. 응어리진 말을 터뜨려주는 게 광대 아니야. 그러면 내가 해야 되는가 보다, 친일은 말 그대로 일본하고 친하게 지내는 걸 의미하는데 친일이 매국으로 잘못 쓰여 왔으니까 이제 돌리자. 그걸 내 깐에 한 번 했다가 작살났지."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당시 책 제목처럼 정말 맞아 죽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사실은 맞아 죽었지. 그게 나한테는 혁명적인 사건이었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져지게 되고, 군더더기를 다 털어낼 수 있었고. 또 나의 본질을 나 스스로 알 수 있었고. 나는 내가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어. 9시 뉴스에 <오마이뉴스>에 사방에서 날 찾고 떠들고. 아, 내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구나. 막 천방지축으로 살아오다가 바로 서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낙관론자였다. 이 역시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맞아 죽을 뻔했는데 행운이라니? "옛날에 중세시대에는 불에 타 죽고 목을 치고 했는데, 내가 해방 이후에 태어난 것이 굉장히 럭키한 거지. 이제는 그런 형벌은 없잖아. 사람들이 손가락질만 하고 끝내지. 럭키해.".

- 문제 되는 발언을 안 하고 좀 무난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그건 개인의 취향 문제라고 생각해. 나는 뭔가 문제를 일으켜야 재밌어.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막 웃기거나 이래야 재미있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못 견뎌. 체 게바라가 지금 젊은이들한테 선풍적이잖아. 내가 체 게바라를 읽고 연구해보면, 그것도 그 사람 취향이야. 그 사람은 가만히 은행장, 재무장관은 재미없어. 취향이 아니야. 높은 산에 가서 총 들고 위험 무릅쓰고 숨어 다니고, 이게 취향이야."

또 가수 이장희가 100번 넘게 미국 LA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간 것도 취향이라고 했다. "나도 한번 따라가 봤지. 뜨거워서 죽는 줄 알았어. 기타 가지고 갔다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기타가 말라비틀어졌어. 취향의 문제야. 미술, 이건 내가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잘나고 못나고, 위대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야."

연예인 가운데 최고가의 집에 살게 된 사연

그의 '취향'은 지난 5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우즈베키스탄팀과 평가전에 앞선 국가 연주 때도 드러났다. 무반주로 '애국가'를 부르면서 박자와 곡조를 달리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나는 그럴 줄 알았지. 우리나라 관례가 너무 딱딱해. '애국가'는 자기 투대로 실력대로 부르면 되고, 거기 감동이 있을 거 아냐. 우리 주복순 할머니(집안일을 돌보고 있는 할머니)는 찬송가식으로 부르고, 아이들은 동요식으로 부르고, 그런다고 감동이 없는 건가. 그런데 우리는 공공장소에 전부 성악가들만 나와서 '동해물과~' 답답하다 이거지. 나는 가수니까 조영남 스타일로 부를 때가 됐다 판단하고 조금~ 고쳤을 뿐이야, 조금."

그는 가사를 바꿔 부르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가운데 1970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김시스터즈 귀국공연에 찬조 출연해 "신고산이 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라고 불렀다가, 다음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던 박정희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도피하다시피 군 입대를 한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 그의 거실 창밖으로는 한강과 영동대교가 내려다 보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와르르 무너진 와우아파트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지난 4월, 건설교통부 발표 공시지가 기준으로 연예인 가운데 가장 비싼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 청담동 상지 리츠빌 카일룸 2차. 187평, 요즘 정부 시책 도량형에 따르면 618평방미터. 공시지가로 40억4000만원, 시세로는 100억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부동산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건지?
"재수야. 내가 미국에 살 때 플로리다에서 신학대학을 다녔어. 플로리다가 반도 아냐. 플로리다에서 5년 살면서 물이 보이는 집과 물이 보이지 않는 집 사이에 어마어마한 집값 차이가 난다는 걸 배워 온 거야. 그래서 동부이촌동 아파트 얻었다가, 또 밤일 해서 강 보이는 동작동에 현대아파트, 분당 붐일 때 재수 좋게 몇백대 일인데 당첨됐어. 거기서 오면서 다시 한강 옆에. 요 자리가 한강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야. 그래서 사는데 아파트값은 올라가고 빌라는 다 값이 내려가는데 이 빌라만 내려가지 않는 거야. 원인은 나중에 알았어. 강이 보인다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빌라값을 잘 쳐준다며 팔고 나갔어. 난 안가고, 강 보니까 여기서 간신히 집값은 내고 있었는데 세상에 내가 1등이래. 그렇게 된 거야."

그는 '1등' 사실이 알려지자 "내가 1등이야? 신난다"고 일성을 터뜨렸다고 한다.

- 보통 연예인들이라면 사실을 언급하길 꺼려할 듯싶은데?
"왜 내가 이걸 부인해야 되나. 그러면 내가 이걸 거지같은 집이라고 해야 되나. 다들 그래. 집 자랑하지 말고, (사진) 찍지 말라고. 아, 언제까지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해? 왜 그렇게 살아야 해? 난 여기가 좋아서 기를 쓰고 아등바등 옮겨왔는데, 사람들한테 이 집 별거 아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해? 난 아직도 우리한테 그런 겁겁한 게… 그게 문화가 없어서 그래. 컬처(culture), 경작이 덜 된 상태지."

"내가 그 친구들한테 각하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고"

그는 범여권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과 대학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깊다. 지난해 손 전 지사의 '민심대장정'에 참여했고, 지난 5월 정 전 의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축가를 불렀다. 또 6월 말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의 양자회동 자리에선 조만간 그와 함께 3자가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과 소주 자리를 했는지?
"그걸 지금 언제 하느냐 전화를 하고 있어. 근데 이것들이… 대권이란 게 무시무시한가 봐. 옛날 같으면 '야 모이자' 하면 다 모였는데, 이제는 주위에서들 이것에 대한 문제를 엄청나게 토론하나 봐. 그래서 나는 일단 '니네끼리 알아서 해라, 너네 술 먹을 때 날 부르려면 부르고 말라면 마라'. 어떤 측에선 나더러 정운찬 정동영 손학규 다 친구니까 불러서 악수하고 이런 거 하래. 내가 무슨 정치하는 사람이냐. 지금 와 가지고 그걸 내가 왜 해야 하냐? 난 그런 거 개입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그 친구들한테 각하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고.(웃음)"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는 어느 한 신문 칼럼에서 손학규와 정동영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송창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윤형주를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윤형주를 좋아한다고 송창식을 미워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 범여권 후보로 한 명이 선정되면 캠프에 도움을 줄 생각은?
"노, 노우. 그 대신 누가 되어도 해방 이후에 근사한 대통령이 될 거 같아. 글로벌하고,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초유의 인물로 올라설 것 같아. 다들 짱구들이 좋으니까, 다들 특징들이 있고, 다들 누구한테 지지 않는 강점들이 있으니까. 둘이 일단 친하니까 개인적으로 선후배고, 최선의 결론을 내지 않을까? 적어도 한나라당 대표들의 싸움 같은 거는 안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희망사항이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두 후보에 대해 촌평을 부탁하자 누굴 먼저 할지 되물었다. 그냥 편한 대로 하라고 했더니, 다시 또 내게 선택하라고 했다. 결국 현재 여론조사의 지지율 순으로 하기로 했다.

"손학규는 추진력, 그 밀고 나가는 힘이 굉장하고. 무작정 무작위로 미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다 읽고 미는 힘이 손학규한테 있다고 생각해요. 정동영은 크게 볼 줄 아는, 큰 틀을 보고 깊게 보는, 우리 역사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의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해."

- 연예인들도 공개 지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왜 안 하느냐? 그러다 이명박씨나 박근혜씨가 되면 나는 개망신 아니여.(웃음) 내가 지지하고 나서잖아. 그러면 내 말의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냥 평상시처럼 내 친구 대하고 그래야 내 후배한테 '좀 신경 쓰고 그래라' 돕지 내가 진짜로 나서 정동영ㆍ손학규 완장 차고 그러면 내 말 듣겠어. 기술의 차이지. 테크닉의 차이라고 봐요."

- 두 후보 가운데 한 후보가 집권을 한다면 그때는 공개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그때는 공개적으로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조계남(노사모 회원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해온 배우 명계남의 이름을 빗대)이 되든가, 달리 불리겠지."

"죽기 전에 사랑이라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까"

그는 지난해 11월 MBC 표준 FM <지금은 라디오 시대>로 다시 방송에 복귀했다. 처음 라디오를 해보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매체인지 몰랐다"고 했다. 매일 출근하면서 "처음으로 요일의 개념도 생기고, 주말이 그렇게 좋은지도 이번에야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찍을 때는 카메라들이 무슨 마귀 눈깔처럼 팍 꽂고 있잖아. 늘 편하지가 않아요. 이거 제정신이 아니야. 재미있는 건 다 재미있는 척들 하는 거야. 유재석ㆍ강호동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하하' 하고 그러는 거지. 실제 걔네들 방송 끝나고 나면 딴 사람이 돼. 프로패셔널하게 자기를 몰아가는 거지. 그런데 라디오 매체는 정말 재밌어요. 카메라 비치지도 않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정말 재밌어요."

- 생방송인데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또 말실수라도 하면?
"나를 거기에 앉히며 높은 사람들이 제일 걱정한 게 자신들이 방송위원회에 얼마나 끌려가느냐였대. 믿거나 말거나 지금 7개월 지났는데 한 번도 경고 맞은 적이 없어. 사람들이 날 잘 몰라, 내가 얼마나 영악한 사람인 걸."

-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산 것 같은데?
"아 하고 어 다른데, 하고 싶은 걸 다 한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서 재밌겠다 싶은 걸 다 했지."

아직 못한 '재밌겠다 싶은 걸'로 기회가 된다면 시인 이상에 대해 재조명하는 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이상은 미술계의 백남준처럼 압도적으로 탁월해. 보들레르ㆍ랭보는 이상한테 무릎을 꿇어야 해. 다 언어 가지고 유희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번역한 거 보면 이해가 돼. 수가 읽히지. 유일하게 나한테 무궁무진한 천체 별자리 같은 걸 주는 건 이상 하나야. 이상을 다시 한 번 봐봐. 기가 막혀. 거의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이고, 난해함 그 자체야.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야. 그걸 파고들면 그 사람의 메타포 같은 거 어마어마해."

덧붙이는 말이 걸작이다. "자꾸 이렇게 뻥을 쳐놔야 (책을) 쓰게 된다니까."

▲ 인터뷰가 끝난 뒤 '애국가' 즉흥연주를 들려줬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꿈이 있다면?
"꿈은 일찍이 다 이뤘고, 하고 싶은 대로 했고. 그냥 죽기 전에 행여 사랑이라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 내 진심을 말하자면 그 정도 아닌가. 또 이것이 조영남 개인의 꿈만 아니라 모든 이의 꿈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입 밖으로 토로 안 했다 뿐이지 실제로 모든 인간이 해보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사랑 하는 거 아닌가. 나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 '아름다운 사랑'이란 어떤 사랑인지?
"사랑을 셰익스피어부터 에리히 프롬까지 다 정의를 한다고. (사랑에는) 정의라는 게 있을 수 없어. 사랑에 정의를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야. 시간 낭비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논리적으로 푸는 게 아니라 실제 내가 누구하고 동대문시장 같이 가서 티셔츠 하나 사느냐, 햄버거집에 가서 둘이 치즈버거 먹을 것이냐 치킨버거를 먹을 것이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고,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멀리 갈 필요없이…."

인터뷰를 끝내고 그의 집을 둘러봤다. 거실 건너편의 서재에는 책장 외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3면에 미술서적과 역사, 철학, 신학 관련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더니 자신이 편곡한 '애국가' 즉흥연주를 들려줬다. 그 옆에 그가 그린 비뚤한 '대한민국 태극기' 그림이 놓여 있었다.

조영남은 <현대미술>에서 백남준의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누군가 백남준에게 왜 예술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싱겁기 짝이 없는 세상살이에 양념 한 가지 치는 기분으로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조영남의 재미론과 사랑학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같은 '양념'도 세상의 맛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는 혹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양념'을 치느냐 안 치느냐는 각자 '취향'의 문제일 테고.

덧붙이는 글 |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출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 '화수(畵手) 조영남, 현대미술을 논하다' 강연회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07년 7월 19일(목) 
장소 : 신촌 아트레온 13층

신청방법 : hangilsa@hangilsa.co.kr 이메일 접수(연락처, 이름을 꼭 써주세요.)
 
이메일로 신청하시는 독자분 중 선착순으로 연락을 드립니다. 아울러 강연회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 5분을 추첨하여 '빛의 화가 모네' 전시회 티켓을 드립니다.(1인2매)


태그:#조영남, #현대미술, #현대인도 못알아먹는 현대미술, #백남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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