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요일 밤부터 목요일 아침까지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여름 들어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고 혈관의 부종을 다스리는 2개의 링거를 맞고 집으로 돌아와 평소대로 10시 쯤 잠이 들었습니다. 물론 남편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지만 이제 편히 잘 잡니다. 남편은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죠. 내가 할 일은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지 가족을 챙기는 일이 아님을 잊지 않도록 늘 기도까지 한답니다.자다가 눈을 뜨니 12시 30분입니다. 왼쪽 어깨가 시리면서 이미 경험했던 통증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시작이구나. 잠은 다 잤네.'자리를 걷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통증이 처음 시작 된 것은 2달 쯤 전입니다. 그 날도 살포시 잠이 들었다가 비슷한 시각에 똑같이 왼쪽 어깨의 통증으로 잠이 깨어 밤새 고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왼쪽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은 오른쪽 어깨로 갔다가 배로 등으로 옆구리로 돌아다니며 정신을 어지럽혔습니다. 그 때는 딸이 화상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 내가 딸을 간호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몸살인가? 싶기도 했지만 몸살의 통증과는 종류가 달랐습니다.너무 아파서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깊은 밤이라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지만 낮이었다 해도 내 성격상 하루 정도는 통증과 씨름 했을 겁니다. 아무튼 각목에 뼈를 두들겨 맞는 것과 같은 아픔이라면 비슷할까? 병원 복도로 화장실로 휴게실로 아픈 몸을 끌고 돌아다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더 아팠으니까요. 창밖이 희뿌옇게 변하면 통증은 서서히 물러갔습니다.어느 날 잠결에 불쑥 찾아오는 아픔이 4번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통증이 올 거라고 예고했던 한의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 하지는 않았지만 아침까지 긴긴 시간이 걱정이었습니다. 문득 낙태 영가들을 위한 천도제를 교무님께 부탁 했는데 그날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골방으로 들어가 교전을 펼쳤습니다. 교전에 있는 천도법문을 찾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죄 없이 사라져간 생명들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흐르며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새벽 1시, 남편이 불쑥 방문을 열며 뭐하냐고 묻습니다."너무 아파.""너무 아파?"샤워를 하고 나오며 다시 방문을 열어 봅니다. 소리 내어 교전을 읽고 있는 나를 보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아 줍니다. 다시 집안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거실로 화장실로 골방으로... 통증이 가라앉을 듯해서 눈을 감으면 다시 시작되기를 새벽 4시까지. 뜨거운 물주머니가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 잠을 청해 보기로 하고 잠귀 밝은 남편이 깰까 봐 딸 방으로 들어가 누웠습니다. 하지만 통증의 여진이 계속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오늘은 통증이 오래 가네. 아들 놈 식사 때까지 1시간 반이 남았으니 어쩐다? 그래,목욕을 가자.'새벽 5시 반에 목욕탕엘 가니 카운터에 앉아 계시던 남자 분이 여탕에 들어 와 불을 켜 주십니다. 텅빈 목욕탕. 난생 처음 대중탕을 독탕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탕 안에 물은 가득했지만 별로 따듯하질 않아 뜨거운 물을 틀었습니다. "아~좋다. 차암~좋다."따끈한 물의 열감을 느끼며 좋다 소리를 연발합니다. 지금까지 통증으로 고생하던 몸은 사라지고 이젠 좋다고 노래를 합니다. 하지만 좋은 걸 어쩝니까?탕에 물이 넘치려고 합니다. 원하는 만큼 충분히 따듯해지기도 전에 아까운 물이 넘칠까봐 신경이 쓰입니다. 그만 끌까? 아니 쪼금 만 더 더... 물이 막 넘치고 있는 데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며 한 소리 하십니다."이렇게 큰 탕에 물이 넘치게 하시면 어떡해요.""미안해요.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하지만 때를 밀지는 않을 거니까 이해하세요. 곧 나갈 거거든요."아들 밥시간에 맞춰 목욕탕을 나서며"목욕 잘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했더니 아주머니도 기분이 풀린 듯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서 콧노래를 흥얼대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앞에서 골목 청소하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입에다 뽀뽀를 해주고 먼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아들아, 엄마가 오늘 기록 세웠다. 난생 처음 대중탕을 혼자 쓰고 왔다는 거 아니냐!""그래요?"잠이 덜 깬 채 밥을 먹으며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아들에게"엄마가 많이 아팠단다. 밤새 한 숨도 못 잤대." 남편이 하지 않아도 될 소릴 합니다."에효~"아들은 금방 땅이 꺼질 듯 한 숨을 쉽니다."아들아, 걱정마. 아파야 낫는 거야. 한의사도 그러셨어."화제를 돌리느라 남편을 바라보며 "참, 조윤주 선배가 나보고 존경스런 후배래"라고 했더니 "참, 존경스럽기도 하겠다. 뭐가 존경스럽다는거야?"라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존경스럽지 않으면 누가 존경스럽겠어~"라고 하니 "하하하..." 웃음 꽃이 핍니다. 아침 밥상이 금세 환해졌습니다.설거지 하는 내게 다가와 이번에는 남편이 뽀뽀를 해 주고 나갑니다. 순간순간의 삶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었던 오늘은 최고의 날입니다. 저는 매일 매일 최고로 삽니다. 지나간 일, 이미 저질러진 일에 마음이 메여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완전히 달라진 저의 모습이지요.예전에는 잘 보이려고 애쓰고 애쓴 만큼 인정받길 바라고 인정받지 못해서 우울하고 결국 상대를 원망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당연하고 못 가진 것은 불만이었던 시간 속에 인생을 허비했습니다. 마음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이 보입니다. 내가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소중하니 가족들도 더없이 소중합니다. 이웃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며 삶은 사랑만 하기에도 짧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얼씨구 좋다. 참~ 좋다~.무시로 찾아오는 통증은 내게 온전한 삶을 선물하고 갑니다.

#통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